지난 주말에 스페인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하루도 채 가지 못했다. 경제위기의 정도를 알려주는 스페인 국채금리가 구제금융 발표 이후 첫 개장일인 11일 불과 4시간 40분 만에 하락에서 상승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시장은 아주 스마트했다. 구제금융은 단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위기를 다룬 여러 분석기사의 공통점은, 위기의 원인이 국가 재정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은행권 등 민간 부채 부실화라고 지목한 점이다. 그런데 국가가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을 책임지게 되면서 민간부채가 국가부채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역시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가계부채 부실화를 중심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이를 도식화하면 [( ? ) → 부동산 거품 붕괴 → 가계부채 부실화 → 은행 부실채권 증가 → 은행권 구제금융에 따른 국가부채 증가 → 국가 부도위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각종 매체가 이런 분석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메커니즘에서 부동산 거품 붕괴 이전에 부동산투기의 본질인 토지투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문가들 역시 위기의 근원에 토지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의 출발은 부동산 거품 붕괴에서 시작하지만 토지가 아닌 금융 부채를 주범으로 지목한다. 그래서인지 유럽연합의 문제가 국내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국내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거래 활성화를 문제 해결책으로 인식하고, 오히려 취득세 감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기준금리 인하,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 등 얼토당토 하지도 않는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17번에 걸쳐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효과는 얻지 못한 채 4년 동안 가계부채만 무려 48.9%나 증가하였다.
토지 가격은 자동차 가격과 다르다
중고 자동차 가격은 급격히 하락하지도 않을뿐더러 하락한다고 해서 개인이나 금융권은 물론 국가가 위기에 빠지는 일은 없다. 자동차 가격이 생산원가에 기초하면서 감가상각 및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을 적용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확한 실질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고 자동차 가격은 '과거 가치'에 기초한 것이다. 문제는 토지다. 토지의 가격결정 방식은 자동차와는 달리 미래에 발생하는 지대(토지임대료)를 현재 가치로 전환하여 모두 더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 가치'다. 누가 미래 가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가? 권위를 가진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이 1년 후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했을 때 얼마나 정확했나? 1년 앞의 경제성장률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인간의 지혜로 토지의 수십 년 후의 미래 가치를 알 수 있나? 상황이 그러한데도 사람들은 토지의 미래 가치를 알고 있으며 동시에 계속 오를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그 화폐가격인 지가를 기준으로 용감하게 거래한다. 그리고 이 지가를 기준으로 대출도 한다.
과거 가치에 기초한 중고자동차 담보대출과 미래 가치에 기초한 토지 담보대출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담보대출을 통해 시장에 흘러나오는 통화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중고 자동차 시장에서 막대한 거품이 발생하고 꺼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가격 및 담보대출의 성격상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토지는 그렇지 않다. 미래 가치를 담보로 대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가는 '휘발성'이 너무나도 강하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토지투기로 인해 주기적인 거품 발생 및 붕괴(Boom and Bust)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팩트(facts)다.
우리나라 역시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11년도 기준, 포괄적인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훨씬 넘어섰고, 포괄적인 국가부채 역시 1100조원을 넘어섰다(포괄적인 가계부채는 통계 총액인 911조 4000억원에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되돌려줘야 하는 보증금 259조원과 개인 자영업자 대출액 108조원을 더한 것이다. 또한 포괄적인 국가부채는 국가부채 420.7조원, 공무원과 군인연금 부채 342조원, 국가 공기업 부채 363.8조원을 모두 더한 것이다.). 가계부채가 은행부실을 통해 국가부채로 전환한다는 '스페인 모델'이 적용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우리나라의 재정 능력은 가계부채 및 은행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상황이 이러한대도 현 정부는 22조원을 들여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국가부채 증가를 부추겼고 앞으로도 15조원이 넘는 추가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할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토지투기(부동산투기)로 인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 세대 및 다음 세대의 시민들이 지게 된다. 그런데 가계 부채 문제가 은행을 거쳐 국가로 확산되는 경우에도 결국 그 부담은 조세부담 형식으로 시민들이 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구조에서 누가 이익을 볼까? 먼저는 부동산투기에 성공한 이들과 이들로부터 이자를 받는 은행권이다. 그리고 국가가 경기회복을 위해 추진하는 각종 사업에 참여하는 토건기업들도 빼놓을 수 없다. 결국 개인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원자화된 경제 주체들의 무분별한 토지투기로 인해 소수만이 이익을 보았을 뿐 대다수의 경제 주체들은 손해를 보게 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도 손해가 커지는 '네거티브 섬 게임'(negative-sum game)이 펼쳐졌던 것이다.
이제 이 게임을 중단시켜야 한다
지금 어느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재원이 중요한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복지재원을 논하기도 전에 이미 가계 및 은행권과 국가의 막대한 부채가 복지재원 확보의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어떻게 이 거대한 구조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는 "부채경제"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 버렸다. 이제 이 게임을 중단시켜야 한다!
▲ 스페인의 귄도스 경제장관이 지난 9일(현지시간)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AP=연합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