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남북한 사이에 전쟁 분위기까지 자아낸 천안함 사건은, 미국ㆍ중국이 해상권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터졌다. 앞으로 미국ㆍ중국 사이의 '해상권력 갈등'이 깊어지면 동중국해ㆍ남중국해에서 천안함 사건과 같은 일이 터질지 모른다.
동중국해ㆍ남중국해의 해상 교통로(sea lane)를 통제해온 미국에 중국이 도전장을 낸 상태이므로, 해상교통로를 에워싼 눈에 보이지 않는 파고가 미국ㆍ중국 사이에서 높아져 가고 있다. 여기에서 분쟁지향적인 해상교통로를 평화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변환시키는 일이 중요한데, 이와 관련된 필자의 대안을 소개한다.
1. 해상 교통로
첫째, 아시아[동아시아]의 분쟁ㆍ전쟁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를 평화 지향적인 자원 수송로로 전환시켜야 한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원 수송로는 원유 수송로<중동→아라비아 해→인도양→말라카 해협→남중국해→동중국해→일본 ‧ 한국으로 이어지는 해상 교통로(Sea Lane)>이다. 그런데 이 해상 교통로를 미국의 군사력이 지켜주고 있는 게 문제이다. 최근 일본도 유사법제 등을 통해 이 해상 교통로를 독자적으로 지킬 뜻을 비치고 있어서 우려를 더한다. 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 10만 명의 제1의 임무가 이 해상 교통로를 중국 등으로부터 지키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이 미 ‧ 일의 해상 교통로 강화 움직임에 맞서는 해양전략을 가다듬고 있는데 있다. 중국은 2001년 1월 新 해양전략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방어선을 기존의 G라인(Green Line; 중국의 연안ㆍ대만 방어선)에서 B라인(Blue Line; 쿠릴 열도-마리아나 군도-파푸아 뉴기니)으로 확장한다는 내용이다. B라인은 미 ‧ 일 군사동맹의 해상 교통로와 중첩되므로 첨예한 갈등을 예고한다. B라인 등 아시아의 해상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한 '미 ‧ 일 동맹-중국 사이의 예고된 갈등'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미-일 동맹군의 중국 ‧ 북한 포위망을 거두어 내고, 그 대안으로 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하나의 동아리로 엮는 '평화 지향적인 새로운 자원 수송로'를 만들지 않으면 한반도의 통일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가 요원하다. 한반도의 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해양 세력(미국 ‧ 일본)과 대륙 세력(중국 ‧ 러시아)을 잇는 '평화의 실크로드'를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해양국가 영국과 유럽대륙의 2대 강국인 프랑스 ‧ 독일 사이에 끼어 고전하던 베네룩스 3국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아우르며 유럽의 평화에 기여한 점을 모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둘째, 아시아의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다툼을 화해시킬 공동 안전보장 틀이 긴요하다. 이 틀은, '아시아 경제권[아시아의 자원 수송로를 포함한 經濟圈]'을 '평화의 힘'으로 엄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세력내의 안보 관계를 평화 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선 해양세력의 군사동맹(한-미-일 군사 공동체)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고 대륙 세력의 군사적 관계(북-러 우호관계, 북-중 우호관계)에도 평화의 훈풍이 불도록 해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평화동맹으로 대체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시아 주둔 미군 10만 명 체제이다. 즉 '미군 없는 아시아'를 만들지 않고서는 아시아인의 평화를 위한 공동 안전보장 틀, 동북 아시아의 비핵지대화 등을 안전하게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이 유럽의 안전보장 틀(CSCE)과 다른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 경제권과 해양세력-대륙세력의 평화공존 구도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생명선이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한은 해양세력과의 동맹-중동원유 수송로를 생명선으로, 북한은 대륙세력(중국 ‧ 러시아)과의 우호관계를 생명선으로 여기며 지내왔다. 여기에서 남북한의 생명선의 차이가 분단의 강화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한 생명선의 통합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을 모색해야하는데, 남북한 생명선 통합의 방편 중의 하나가 '철의 실크로드'이다.(김승국, 2008, 236-237)
2. 유라시안
철의 실크로드가 달리는 유라시안은 남북한 통일의 배후지이다. 미ㆍ일 동맹이라는 해양세력과 제휴한 남한과 중국ㆍ러시아라는 대륙세력과 제휴한 북한이 통일하려면, 양쪽(해양세력ㆍ대륙세력)의 의견을 경청하며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립화 통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남한의 국민ㆍ시민들의 대부분은 해양세력에 관심이 있지, 대륙세력의 생활공간인 유라시아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해양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남한 사람들에게 유라시아는 생활공간이 아니라, 시베리아 철도 정도를 연상하는 지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베리아 철도의 출발점이 부산인 점, 남한 땅은 (부산에서 평양이나 원산을 경유하지 않으면 남한 사람들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없는) 섬이라는 점, 통일된 이후에 접하게 될 대륙세력의 생존무대가 유라시아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통일을 말할 때 단순하게 남북한만의 영토 통합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의 경계가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점, 통일된 한반도의 북쪽 경계가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점을 알고 지금부터 유라시아 대륙과 평화롭게 교섭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의 접경지대가 될 동북 3성(만주)ㆍ극동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와 평화로운 관계맺기 연습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 이러한 연습에 대비하여, 유라시아 대륙에 관한 브레진스키의 지정학적인 관점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한다.
1) 브레진스키의 유라시아 대륙론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미국의 잠재적 도전국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유라시아를 꼽는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두 단계에 걸쳐 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레진스키는 유라시아의 지도 위에서 적어도 다섯 개의 지정 전략적 게임 참가자들과 다섯 개의 지정학적 추축들이 존재한다고 본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인도 등이 역동적인 게임 참가자들이고,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남한, 터키, 그리고 이란 등이 중요한 추축들이다.(한국 정치학회, 95~96)
유라시아는 세계 일등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이며, 그 투쟁은 지정학적 이익을 전략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지정학적 전략(geostrategy)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남한은 극동 지역의 지정학적 추축이다. 남한이 미국과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는 미군이 일본에 대규모로 주둔하지 않고서도 일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 주며, 따라서 일본이 독립적인 군사 강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통일 혹은 중국 영향권으로의 편입 등으로 말미암아 남한의 지위가 변화하면, 극동에서 미국의 지위 역시 크게 변화할 것이고 일본의 지위도 마찬가지로 크게 변화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남한의 증대된 경제력으로 인해 남한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공간'이 되었고, 남한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값진 것이 되었다.
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미국이 극동 지역에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아시아 본토로부터 자진해서 철수하거나 축출당한다면 이러한 필요성은 충족될 수 없다.
오늘날 미국은 유라시아의 거중 조정자이며, 미국의 참여 없이 혹은 미국의 이익에 반해서는 유라시아의 어떠한 쟁점도 해결될 수 없다. 미국이 어떻게 유라시아의 체스판 위에 존재하는 지정 전략적 행위자들을 조종하고 순응시키느냐 하는 것과 어떻게 유라시아의 주요한 지정학적 추축들을 관리하느냐 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 일등적 지위의 지속과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브레진스키, 16ㆍ72ㆍ199ㆍ249ㆍ250)
브레진스키는 이와 같이 '유라시아라는 세계 패권의 경락지대를 분할통치(divide and rule)하면서 21세기에도 미국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인용 자료>
* 김승국<한반도의 평화 로드맵>(파주, 한국학술정보, 2008)
* 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옮김<거대한 체스판>(서울, 삼인, 2000)
* 한국정치학회 엮음<정치학 이해의 길잡이 (5)>(파주, 법문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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