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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언론인 영부인', 위험한 관계?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언론인 퍼스트 레이디' 탄생의 의미

5월 16일 취임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지향하는 모델은 '보통' 대통령이다. 튀는 행동으로 뉴스의 각광을 받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원수의 역할을 조용하게, 충실히 수행하는 눈에 안 띠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랑드가 '보통' 대통령이 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본인 탓이 아니라 동반자인 퍼스트 레이디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러(Valerie Trierweiler) 때문이다.

엘리제궁의 안주인이 된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러는 영부인이 된 다음에도 의식에 얽매이는 답답한 대통령 부인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22년째 일해 온 언론인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주간지 <파리마치> 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지난 주 '언론인 퍼스트 레이디'로서 첫 기사를 잡지에 실었다. 언론인으로서 자기 생각을 발표하고 싶은 지식인의 욕구와 세 자녀의 생계비를 올랑드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트리에르바일러가 언론인 생활을 지속하게끔 한 주요 동기로 보인다. 대통령 부부의 십대 세 자녀는 트리에르바일러와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랍신문 <알 하야트(Al-Hayat)>의 여성 언론인 바드리야 알-비슈르는 트리에르바일러의 이 같은 독립 정신은 남편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치에 탐닉하고 부정축재에 여념이 없는 아랍 독재자 아내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며 프랑스 새 영부인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긴 글을 아랍 신문에 실었다. 기사에서 알-비슈르는 작년 '아랍의 봄' 폭풍으로 실각한 튀니지의 벤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아내의 방탕한 생활을 비난했다.

새 영부인은 2005년부터 올랑드와 동거하는 사이지만 퍼스트 레이디가 된 다음에도 관저인 엘리제궁에 들어가 살기를 거부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파리 15구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대통령 경호실에서 아파트 들어가는 골목이 좁아 경호에 어려움이 있고 경호 때문에 아파트 주변 주민들이 불평하게 될 것이니 엘리제궁으로 들어오라고 간청해도 막무가내다. '보통'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 트리에르바일러라는데 본인은 보통 영부인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영부인으로 엘리제궁에 들어와 살기를 거부한 것은 트리에르바일러가 처음은 아니다. 미테랑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도 엘리제궁에서 살지 않고 파리 6구의 셍제르맹 데 프레(Saint Germain des Pres)의 아파트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사르코지의 새 부인 카를라 브루니도 엘리제보다는 부자들이 사는 파리 16구의 몽모랑시 저택을 선호했다. 사르코지의 전처 세실리아는 엘리제궁의 악취가 싫다며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창문을 전부 열어놓게 했다. 엘리제궁 탓만은 아니겠지만 세실리아는 결국 사르코지와 헤어져 엘리제궁 안주인으로 이혼한 최초의 여인이라는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프랑수아 올랑드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러. ⓒ<누벨 옵세르봐테르> 기사에서 캡처.

퍼스트 레이디-언론인의 첫 기사, 엘리노어 루즈벨트 전기 서평

퍼스트 레이디-언론인이 지난 주 <파리마치>에 발표한 첫 글은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 전기에 대한 서평이었다. 글에서 트리에르바일러는 "자 보세요. 퍼스트 레이디 언론인은 새로운 것도 아니예요. 대서양 건너편을 보면 대단한 일처럼 소리칠 필요가 없어요"라고 강조한다.

클로드-카트린 키에즈만이 저술해 '시의적절하게 출판된' 이 전기 <엘리노어 루즈벨트, 퍼스트 레이디이며 반항의 여인>를 소개하면서 언론인 영부인은 저자가 "이 비범한 퍼스트 레이디가 어떤 면에서 남편에게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는지를 설명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남편이 1932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쉬워하면서" 자신의 정치활동을 접는다. 그러나 <여성 민주 뉴스(Women's Democratic News)>에 논설을 싣고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는 차별을 반대하고 여성의 자립을 권장했다"고 트리에르바일러는 강조한다. 또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여성잡지의 주필직을 수락하고 자신의 생애를 바꿀 칼럼 '나의 하루'에서 매일 백악관에서의 생활을 전했"으며 "정치·사회 등 모든 문제에 관해 터부를 거부했고, 특히 2차 세계대전 전야에는 국제문제에 관해서도 글을 썼다"고 트리에르바일러는 소개한다.

"미국 언론 전체는 퍼스트 레이디의 글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죽을 때까지 쓴 이 칼럼 덕분에 아주 인기가 높았다"며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의 초상화를 읽을 수 있다고 프랑스의 퍼스트 레이디는 밝혔다. <AFP> 통신은 <파리마치>에서 22년 간 글을 써 온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러가 "공화국 대통령의 동반자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계속 언론인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적어도 대통령 영부인으로 있는 한 정치 기사는 쓰지 않고 문화 관련 글을 쓰게 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트리에르바일러는 원래 정치문제 기자였다. 2005년 사회당을 출입하면서 올랑드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동료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잡지사에서는 기사의 공정성에 관해 독자의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 트리에르바일러에게 정치 기사 대신 문학·문화 관련 글을 쓰도록 했다. 지난 주 중도촤파의 지성지 <누벨 옵세르봐퇴르>가 표제 제목으로 강조한 것처럼 "여성 기자와 남성 정치인 간의 위험한 관계"가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예방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인 중에 부인이 저명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부부가 많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960년대에 인기가 높았던 주간지 <엑스프레스>의 편집인 프랑수와즈 지루(Francoise Giroud)가 여성 기자를 많이 스카우트하면서 시작된 현상이다. 여성의 매력으로 스쿠프(scoop, 경쟁지에 앞서 보도한 중요한 기사나 경쟁지가 생각지 못한 특수한 기사)를 많이 캐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원로 여기자 카트린 네이(Catherine Nay)는 자신도 "당시 하원에 출입할 때 미니 스커트를 입고 긴 부츠를 신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네이는 한 하원의원과 가까운 사이가 됐는데 그가 나중에 장관이 되면서 경제 관련 스쿠프를 많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네이는 당시 이 때문에 이해의 충돌을 우려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정치와 언론 관계도 변했다. 올랑드 대통령 외에도 사회당 정부의 장관 세 사람이 여성 언론인을 부인으로 두고 있다. 노동고용장관 미셸 사팽의 아내 발레리 드 센느빌(Valerie de Senneville)은 경제지 <레제코(Les Echos)> 기자이고 생산회복장관 아르노 몽트부르의 부인은 저명한 방송기자 <오드레이 퓔바르(Audrey Pulvar)>이다. 교육장관 뱅상 페용(Vincent Peillon)의 부인 나탈리 방사엘(Nathalie Benshel)은 <누벨 옵세르봐퇴르> 기자다. 이 밖에 작년에 뉴욕 호텔에서 청소부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던 국제통화기금(IMF) 전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의 부인 안 싱클레어(Anne Sinclaire)는 유명한 방송 진행자였는데, 스트로스-칸이 장관이 되면서 방송을 떠났다가 금년 초 프랑스 판 <허핑턴 포스트>를 창간한 언론인이다. 사르코지 정부의 외무장관을 지낸 알랭 쥐페와 베르나르 쿠슈네르, 그리고 또 한 사람의 각료 장-루이 보를루의 아내도 언론인이다. 그래서 한 때 프랑스에서는 "정치적으로 성공하려면 언론인 아내를 둬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돌았다.

정치인 남편과 언론인 부인 사이에 '위험한 관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직업적인 윤리와 개인적인 이해를 구분할 수 있다며 일률적으로 단죄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이해가 충돌할 때 "왜 여성만을 희생 대상으로 삼는지" 항의하고 그럴 때 "언론인 아내가 아니라 정치인 남편이 자리를 그만 두도록 하는 것"은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는 여성들의 항의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54%의 프랑스 사람이 정치인과 함께 사는 정치 담당 언론인은 그들의 직책을 계속 지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의 선거운동 참모를 공영방송의 장으로 임명한 MB정권이 참고할 타산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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