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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사회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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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사회민주주의

[남재희 칼럼]<22>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성숙을 기대하며

대화문화아카데미와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이 공동주최한 <한국사회와 사회민주주의> 주제의 토론이 지난 15일에 있었다. 에버트재단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의 재단이다. 사회민주주의를 테마로 한 토론회란 점도 신선했지만 많은 시민운동가·학자들이 참석하여 무게가 있었다.

주제발표에는 신진욱 교수(중앙대)와 주섭일 박사(언론인)가 나섰고, 중진 진보학자 이삼열 교수가 주재하였다.

신 교수는 수준 높은 이론을 전개한 끝에 "한국에선 노동 중심의 복지국가 전략만으로 19세기 유럽의 역사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승산이 없다. 낮은 조직률과 노동시장의 심각한 분절을 생각했을 때, 노조는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복지국가 운동에 참여할 때에만 지금보다 더 넓은 사회적 인정을 얻고 정부·정당에 대한 정치적 압력행사를 가능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에선 노동의 힘이 유럽만큼 강하지 않은 대신 한국사회 특유의 역사적 전통이 존재한다"면서 '시민적 사회참여, 정치참여의 전통'을 들고 그런 것이 "복지국가와 같은 사회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는 핵심적 동력"이라고 말했다. 노동세력보다는 '온·오프라인의 시민공동체'에 무게를 두는 이야기다.

나는 그 때 의견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평소 생각은 '온·오프라인의 시민공동체', 특히 '온라인의 시민공동체'의 힘은 물론 중요하지만 뜬 구름 비슷이 가변적인 것이고, 역시 암반과도 같은 노동세력, 그 밑받침 위의 정치세력이 더 중요하고, 또한 기초적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신 교수의 발표는 수긍하고 넘어갔는데 주 박사의 발언이나 발표문이 문제였다. 그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해 혹독한 비난을 한 것이다. 민노당을 '종북주의' '극좌파에다 주사파' 정당이라고 비판했고, 진보신당도 '공산교조주의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비난의 근거를 제시했으면 참고가 되었을 것인데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없으니 새로이 사민주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장기표 등의 이름을 예로 들었다.

▲ 1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연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프레시안(김봉규)

나는 중요한 논란점이 제시됐으니만큼 적극 토론에 나섰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얼마간 실례가 될 정도였다.

새로운 사민당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자리가 잡힌 민노당·진보신당의 변화를 유도하고 지켜보는 게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엄혹한 현실 속의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마르크시즘 등 극렬사상에 빠져든 것이 운동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난날의 현실이었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실제 정치에서 정책대안을 놓고 대결하다보면 자연히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냐, 그럴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기대이고 설명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런 기대를 걸고 설명을 했다고 해서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민노당의 북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비판적인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일부에는 죽산 조봉암의 진보당을 사민주의로 말하는 사람(정태영 등)이 있으나 그렇지가 않다. 그것은 일본의 동경제국대학 정치학과 출신인 이동화나 신도성이 정강정책을 입안하는 등 정책 참여역할을 하면서 가미한 것으로, 죽산 자신은 사회민주주의 운운을 자기 정치철학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측근 참모였던 이영근의 회고다.

나는 그 말을 그럴듯하다고 여긴다. 일제 식민지하의 독립투쟁, 해방, 친일파의 득세와 독재, 상스러운 자본주의의 발호…그런 가운데 서구 선진사회에서 통하던 사민주의 운운의 '점잖은'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죽산은 평화통일, 반독재, 민족경제, 수탈 없는 경제체제, 복지 등을 내세웠고 그것이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예를 들어 손문(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 조소앙의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제헌헌법에 이익균점조항 등도 있다(토론에서 우리 제헌헌법이 사민주의적이란 주장도 있었다).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노동운동가 전진한의 자유협동주의도 있다. 너무 사회민주주의 운운에 국척하여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그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사회민주주의란 이론 또는 개념을 다시금 음미해보게 된다. 사민주의는 용어만 놓고 볼 때는 독일에서 발달한 이론이지만 이제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그 사민주의가 각각 조금씩 다르다. 사민주의라 할 때 무지개처럼 많은 색깔이 있는 것이다. 나와 나의 친구들 경우는 대학시절에 사회민주주의란 말보다는 영국 페비안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의 페비아니즘(Fabianism)에 오히려 익숙하였다. 농담을 하나 소개하면, 그 무렵 사회민주주의냐 민주사회주의냐를 두고 카레 라이스냐 라이스 카레냐는 익살도 있었다(학술적으로는 둘을 구별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냥 진보, 또는 진보주의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편리하고도 또한 현실에 맞는 정확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말했다. 사회민주주의란 개념이 세계적 조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지만 꼭 그런 개념에 우리 몸을 억지로 맞추어 넣을 필요가 있겠는가 싶어서다. 영어에 스트레이트-자켓(strait-jacket, 拘束服)이란 표현이 있고 자주 쓰이고 있다. 사민주의가 구속복은 아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굳이 그 용어를 강요할 일은 아닐 것이다.

사민주의는 하나의 사고의 큰 틀이지, 그 안에 정책내용물이 기성품처럼 미리 담겨져 있는 게 아니다. 그 사고의 틀을 갖고 현실의 여러 난제들에 부닥치며 땀 흘려 씨름을 하고 정책이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결과물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나중에 이론가들이 거기에 무슨 무슨 주의라고 그럴듯하게 명명(命名)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대판 삼민주의 또는 삼균주의가 될 수도 있다(박정희주의, 김대중주의 등의 명명이 성립할 수도 있다는 맥락에서의 이야기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지금 외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특히 세계화·정보화 시대란 현실에 밀착하여서의 각고의 정책노력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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