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북 안동의 한 여중생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면서 남긴 유서 내용이다. 해당 학생은 반에서 2~3등을 할 만큼 상위권이었다.
학생들이 학업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고등학생들이 겪던 입시 스트레스를 이제는 중학생 때부터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한 입시업체가 지난 2월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개최한 '특목고 및 일반고 선택전략 설명회'에는 초중학교 학부모 3000여 명이 몰렸다. 고등학교 학부모가 대입설명회를 찾아다니듯이 이제는 초중학교 학부모가 고입설명회를 찾아다니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김승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정책실장은 지난 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 들어 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고교서열 체제가 심화됐다"면서 "학부모들 사이에 최소한 자사고는 보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 안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입 자율화 정책은 이러한 경쟁을 더 부채질했다. 사실상 본고사 형태로 진행되는 상위권 논술전형에서는 교사도 풀기 어려운 난이도의 수학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고교 1년 범위에 해당하는 수학시험을 반편성고사로 보는 자사고도 있다. 이제 선행학습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필수'가 돼버렸다.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줄여줄 만한 해법은 없을까. 김 정책실장은 대선 후보에게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을 제안했다. 그는 "적어도 아동의 정서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어조기교육과 1~2년씩 앞선 수학 선행학습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절대평가제도나 쉬운 수능 기조와 같이 개별적으로 의미 있는 정책마저도 '대입 자율화 기조'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리면서 역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고교가 서열화된 상태에서 추진한 내신 절대평가는 오히려 고교 서열화에 더 기여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서울 용산구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전문. <편집자>
▲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실장 인터뷰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최근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 한 축에는 학교폭력이, 다른 한 축에 과도한 경쟁이 있다. 사교육 문제는 후자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린다. 그런데 정부는 '사교육'이 아니라 '사교육비'를 잡는다고 했다. 정부가 사교육 문제를 경제적인 비용의 문제로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발 양보해 경제적 문제로 보더라도 가계에서 느끼는 사교육비 부담이 크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을 평가하자면?
김승현 : 교육과학기술부 통계만 봐도 사교육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교과부는 지난해보다 사교육비 총액이 3.6%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같은 해 학생 수가 3.4% 줄었음을 고려하면 사교육비 부담은 여전하다. 과목별로는 사회, 과학에서 사교육이 줄었고 경쟁이 극심한 영어나 수학 부분은 오히려 부담이 늘었다. 개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그대로다. '사교육 없는 세상'이 '사부담 공교육비'라고 부르는 방과 후 수업비나 EBS 교재비도 늘었다. 사교육비로 집계되지 않는 어학연수 비용도 늘었다.
정부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요인에 대처하기보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비용을 줄이려는 정책을 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과 후 학교와 EBS 수업이다. 이러한 정책에는 사교육을 대체하는 효과가 일부 있지만 크지 않다. 오히려 국영수 중심의 문제풀이 수업을 강화함으로써 공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획일화시킨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사교육 문제는 학습 부담과 경쟁의 문제다. EBS 정책으로 부모 입장에서 사교육비는 일부 대체됐겠지만 학생의 학습 부담과 경쟁은 도리어 늘어났다. 교육의 질은 문제풀이로 획일화되고 그 내용은 영어 수학 중심으로 강화됐다. 총평하자면 정부 정책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논술 빙자한 본고사, 정부가 통제 못해
프레시안 : EBS수능연계 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대학들이 본고사 중심의 입시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전 정부는 기여입학제, 고교 등급제, 대학본고사를 금지하는 삼불정책을 폈다. 그러나 대학과 보수언론, 현 정부는 본고사 금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대학들은 논술을 빙자한 본고사라는 편법을 쓰고, 정부는 '대학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방치했다.
김승현 : 대학입시 정책만 놓고 보면 참여정부는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반대로 현 정부는 '대입 자율화'를 추진했다. 또 이전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교육 시행령을 통해 대입 기본방향을 발표했지만, 교과부는 2008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로 그 권한을 넘겼다. 사실상 대입제도에 대한 통제가 안 된다.
실제로 지난달에 사교육 없는 세상이 서울의 주요 11개 대학의 입학전형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학별 고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시험은 본고사 형태로 넘어갔으며, 난도는 고교 교육과정을 뛰어넘었다. 서울대는 논술이 아니라 칠판에 직접 문제를 푸는 구술시험 형식을 채택했는데, 문제가 어려워 과학고 학생조차도 수시대비 전문학원에 다닐 정도다. 난도가 심각하게 높지만 정부가 구조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입시에서 핵심전형 자료로 쓰이는 수능 성적이나 학생부 자료는 국가가 관리하는 교육과정과 시험을 통해 운영된다. 학생부와 수능제도에는 다시 학생과 학부모, 고등학교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대학-학생-학부모-고등학교-정부 간에 균형 잡인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 주도권이 완전히 대학으로 쏠렸다. 대학들은 고교정상화나 학습부담 감소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신입생 입학 점수 경쟁에 골몰하는 대학들, 아이들만 죽어난다"
프레시안 :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우수하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김승현 : 양식 있는 대학 관계자는 "진로와 전공의 연관성,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금 대학이 신입생을 제대로 뽑는다고 볼 수 없다"고 고백한다. 서울대의 경우 인문계를 뽑는데도 수리영역에 가중치를 준다. 국문과에 가려고 해도 수학을 잘해야 한다. 수학이 제일 변별력이 높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인문계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으로 수학 1등급과 언어 또는 외국어 둘 중에 하나 1등급을 요구했는데, 요구사항이 반대로 뒤집혔다. 인문계라면 언어와 외국어가 필수고 수학점수는 선택이어야 하는데, 수학점수를 더 요구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일례로 대학들은 수시 논술전형을 실시하는 시점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결국 연세대는 수능 전에 고려대는 수능 후에 논술전형을 실시했는데, 전자가 더 유리하다고 판명 났다. 수능 후에 논술을 치렀더니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서울대 등으로 빠져나간 탓이다. 그러자 고려대는 올해부터 수능 전에 논술을 보겠다고 신청했고, 대교협은 급작스럽게 전형을 변화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려대도 수능 전에 논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보수 정권이라서 가능했던 개혁
프레시안 : 사교육의 메카인 강남에서 요즘 학원 매물이 많이 나온다더라. 심지어 권리금 없이 나오는 매물도 있다. 사교육은 번창하는데 막상 사교육 1번지인 강남의 학원은 이전보다 쇠퇴했다. 강남으로 전입하는 인구도 조금씩 줄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김승현 : 중소형 보습학원과 특목고 전문학원이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우선 현 정부가 과감하게 10시 이후 교습을 금지했다. 그러자 수업시간이 줄어든 전 과목 대비 보습학원이 타격을 받았다. 학원가에서도 가장 큰 쇠퇴 원인이 10시 규제(학원 심야교습 금지)였다고 할 정도였다. 진보정권이 시도했으면 이런저런 공격에 시달릴 정책을 보수정권이라 추진할 수 있는 면이 컸다.
둘째로 고교입시제도가 전 과목 보습학원에 불리하게 변했다. 예전에는 고교입시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점수를 모두 반영했기에 초중학생들은 전 과목 내신대비학원에 다니곤 했다. 그런데 특목고가 영어와 수학 점수만 입시에 반영하자, 수학전문학원 비율은 늘고 보습학원 비율은 줄었다. 특목고 전문학원도 영어, 수학 단과학원에 밀렸다.
갓 들어온 신입생에게 1년 범위 수학 시험 보는 자사고
프레시안 : 이른바 상위권 학생들이 자사고나 특목고로 빠져나가서 일반고가 게토화됐다. 과거에는 꼭 특목고에 안 가도 된다는 마인드가 있었는데, 요즘은 인식이 바뀌어서 중학교 단계에서부터 경쟁이 심해졌다. 고교입시 전형 변화가 맞물려 복합적인 효과가 생겼다.
김승현 : 특목고 입시가 일부 개선되면서 고교 진입단계에서의 사교육 유발요소는 줄어들었다. 대신 고교간 서열 경쟁이 심해져서 중학생이 느끼는 부담은 커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아니라 들어간 뒤의 경쟁을 생각해야 한다. 이미 고교 서열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상위서열인 과고, 외고뿐만 아니라 최소한 자사고는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 안에서 경쟁은 일반고보다 훨씬 치열하다. 1년에 끝내야 하는 수학과정을 1학기에 몰아서 끝내는 자사고가 서울 23개 자사고 중에 절반이 넘더라. 자사고는 신입생을 수준별로 반편성할 때, 고등학교 1년치 과정을 시험범위로 낸다. 자사고에 가려면 최소한 1년 이상 선행학습을 마치고 가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 결과가 월평균 사교육비로 드러났다. 중학교 사교육에서 국어, 사회, 과학은 비중이 줄고 영어, 수학은 늘어났다.
프레시안 : 서울시교육청이 요즘 선행학습 금지 캠페인을 진행한다. 선행학습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김승현 : 우리는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예전에도 상위권 학생들이 고1 겨울방학 때 2학년 수학을 공부하는 식의 예습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1,2년 뒤 교육과정을 미리 배우는 관행이 생긴 것은 2000년대 초반 특목고 열풍과 관계가 있다. 특목고 입시시험에서 수학이 중학교 단계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토플, 토익,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성적 등을 반영하면서 선행학습을 하려는 경향이 늘었다. 심지어 대학논술에서도 선행학습 없이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온다.
심화된 고교 서열화 체제도 선행학습을 부추겼다. 예전에도 진도를 약간 빨리 나가는 경향은 있었지만, 자사고를 중심으로 고교체제에 서열이 생기면서 그 속도가 빨라졌다.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생겨난 것이다. 학원은 그러한 제도적인 요인을 이용했다. 선행학습은 지난 몇 년 동안 학원에 돈을 벌어준 효자 상품이었다.
학원들이 '심화학습' 대신 '선행학습' 하는 이유
김승현 : 사실 사교육이 의미 있으려면 보충 또는 심화교육을 해야 한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에게는 보충을, 잘하는 학생에게 심화수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원은 비용이 많이 드는 개별화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반면에 선행학습은 상위권이든 하위권이든 어렵게 느끼고, 대규모 강의실에서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학부모들은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을 끊거나 옮기는데, 선행학습을 하면 학원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진다.
극소수의 영재교육 대상을 제외하면, 상위권 학생일지라도 선행학습보다는 심화학습이 효과가 있다. 1년 앞서 진도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배우는 단원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히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는 다른 학부모들이 "우리 애는 6학년인데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면 불안해한다. 그런 심리에서 모두가 선행학습 경쟁에 뛰어들면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거둘 것인가? 학부모들이 학원 마케팅에 휩쓸린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선행학습은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다.
외국에서는 굳이 법으로 금지하지 않아도 선행학습이 문화적으로 금지됐다. 선행학습은 불공정 경쟁이자 반칙이며, 학교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교란시키고,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국 학부모는 외국에서 선행학습을 시켰다가 학교에 불려가서 "선행학습은 반칙이고 교육권 침해이므로 시키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 없기에 법으로 막고 제도적인 요인을 같이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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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선행학습이 효과가 있다고 믿으니 시키는 것 아닌가. 선행학습은 과연 해로운가?
김승현 : 교육적으로 해롭다. 구소련의 한 영재교육기관이 "진도를 미리 당길 필요 없다. 지금 배우는 것을 깊게 배우면 된다"고 밝혔다. 선행학습은 영재 교육차원에서도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대학 과정을 미리 배울 필요도 없다.
다만 선행학습을 소화한 극소수의 아이들이 입시경쟁에서 이기는 경우가 있다. 교사들도 풀기 어렵게 낸 대학입시 수리논술 문제를 학생들이 풀어서 통과한다. 서울대 특기자전형에선 과학고 학생들이 1/3 이상 붙더라. 일반고에서는 사교육과열지역 출신 학생들이 붙는다. 반면 강북의 평범한 일반고에 진학하면 특기자전형으로 붙기 힘들다.
학부모는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일단 학원에 보낸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경쟁하는 것은 자녀에게 정서적으로도 좋지 않은 경험이다. 먼저 배운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경쟁에서 성공하는 소수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학습노동을 감내하며 들러리를 섰고, 학원은 돈을 벌었다. 성공한 학생은 극소수지만, 학부모는 내 자녀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행학습에 뛰어든다. 초등학교 5,6학년 때 자녀의 능력이 판단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어유치원 10곳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 생긴다"
프레시안 :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에 대한 두 가지 우려가 있다. 하나는 위헌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효성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보나?
김승현 :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위헌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위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명박 정부가 '학원 심야교습 규제'를 했을 때도, 반대쪽에서는 학습권, 자녀교육권, 영업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권리보다 학생의 건강권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과외금지법이 위헌 결정을 받긴 했지만, 그 이유는 과외금지가 불가능하거나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천 금지' 조항이 너무 과도한 규제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결정문을 읽어보면, 과외금지의 취지 자체는 여전히 인정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선행학습 금지법은 모든 선행학습이 아니라 선행학습형 사교육 가운데 특히 문제가 심각한 일부만 금지하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본다. 선행학습의 종류가 워낙 다양한 만큼, 규제할 때는 실효성 있는 범위로 제한하하는 게 옳다.
요즘 학원가에서 횡행하는 선행학습에서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게 수학이다. 최소한 과도한 수학 선행학습은 금지할 것이다. 영어는 범위가 애매해서 선행학습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영어유치원을 중심으로 한 조기영어교육은 규제할 것이다. 6~7세 어린 아동들에게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하게 하는 것은 폭력에 가깝고, 아동의 정상적인 정서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아정신과 의사들 사이에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이 생긴다"는 말이 돌 정도다.
영어유치원에 갔다가 정서적, 인격적 발달에 지장을 받은 아동의 사례를 모아서 소송도 검토 중이다.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가장 나쁜 대학에 '선행학습 부추김상'을 수여하는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프레시안 : 영어 조기교육과 수학 선행학습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수학은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배우지만, 영어는 유아부터 대학생, 직장인까지 모두 배운다. 영어 사교육 시장이 훨씬 클 것 같다.
김승현 : <수학이 대학을 결정하고 영어가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책이 있다. 교과부 통계를 보면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그 전에는 영어 사교육비, 이후에는 수학 사교육비 지출이 많다. 영어전문학원 시장은 대학생, 성인 부분이 크고, 중2~고3 학생들은 영어전문학원보다는 주로 수능대비학원에서 영어를 배운다. 영어 사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조기 부문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사립초등학교 교육과정 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10군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교육을 시켰다. 초등학교 1학년이 6교시 수업을 받으면서 1년에 277시간, 매일 2시간씩 영어를 배운다. 그런데 사립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상대로 수준별로 반 편성할 때 상위클래스는 영어유치원 출신이다. 영어유치원과 초등학교 1~2학년의 영어교육을 규제해야 한다.
프레시안 : 올해 7개 대학의 수시모집 전형에 활용되는 국가영어평가시험은 사교육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김승현 : 사교육은 현 정부 들어 악재를 겼었다. 유일하게 학원들이 호재로 보는 것이 국가영어평가시험이다. 영어전문학원뿐만 아니라 보습학원도 마찬가지다. 수능 대비하듯이 대비해줄 수 있다.
국가영어평가시험에서 말하기, 쓰기 영역이 어려워지면 심각한 문제다. 외고 입시는 토익, 토플 등을 반영하면서 영어유치원과 사교육을 부채질했다. 대학입시에서 말하기, 쓰기를 도입하면 중고등학교 시장뿐 아니라 유아시장부터 흔들린다. 듣기평가 대비는 학원에서 테이프 틀어주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말하기, 쓰기는 학원에서 선생님이 해줄 게 있다. 말하기, 쓰기가 어려워지면 고비용에 특화된 전문학원이 생기고, 쉬우면 새로운 시장에 보습학원도 뛰어들 수 있다.
국가영어평가시험에 강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물론 말하기, 쓰기를 국가가 평가할 수는 있는데, 국가영어평가시험이 수능을 대체하면 위험하다. 올해 말에 그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는데, 섣불리 결정하기보다는 도입 후 최소한 몇 년은 지켜봤으면 한다.
"고려대는 왜 일반고 전교10등 대신 외고 중간 학생을 뽑을까"
프레시안 : 연세대나 고려대가 사교육을 부추기는 입시전형을 도입한 이유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아니라 부잣집 학생을 뽑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교수들도 있다.
김승현 : 데이터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얘기다. 그런 목적으로 일종의 네트워크 형성 차원에서 특목고를 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고, 외고를 우대하는 전형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 고려대는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하면서까지 왜 일반고 전교 10등을 안 뽑고 외고 중간 학생을 뽑을까? 두 학생 간에 실력 차이가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메가스터디가 어떤 대입 전형이 부잣집 학생에게 유리한지 통계를 냈다. 상위권 대학의 논술전형은 서울 부자 동네로 집중된다. 서울대는 기회균형선발제도가 있어서 비교적 비난을 피해갔지만, 특기자전형으로 뽑는 비율이 수시에서 50%가 넘는다. 기회균형선발로 비난을 피하면서 다른 한편에는 특목고 학생들을 뽑을 만큼 뽑고 있는 셈이다. 상위권 대학은 학생부 성적으로 뽑는 비율이 평균 30% 미만으로, 논술전형 비율보다 적다. 정시도 내신이 빠지는 만큼 외고가 더 유리하다. 대입전형 외고나 과학고 학생에게 유리한 전형이 많고, 수시에서 학생부를 반영하는 30% 전형을 일반고 학생들이 나눠 갖는 모양새다. 그리고 일부 학생이 정시에서 특목고 학생과 경쟁해서 들어온다.
"MB 정부, 좋은 개별정책도 신자유주의 기조 때문에 역효과만"
프레시안 : 부모가 부자이거나 고학력이면 자식도 고학력일 가능성 높다. 학력이나 학벌의 대물림을 낳는 기제가 사교육이다. 그래서 사회 양극화, 계층 고착화를 우려하는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사교육 이슈를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역대 정부의 사교육 대책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김승현 : 참여정부는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학벌주의나 지방대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현 정부는 그렇지 않다. 학벌주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 적도 없고, 서울과 비(非)서울 간의 격차를 해소하려고 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서울 집중 현상이 강화됐다. 일각에서는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교육의 다양화와 자율화를 기조로 1995년에 추진된 교육개혁안 <편집자>) 이후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도입됐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보기에 지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고교평준화와 3불정책을 유지하는 기조라도 있었다. 신자유주의 철학이 전면화된 것은 이 정부 들어서다.
개별 교육 정책으로 보면 일부 긍정적인 요인은 있다. 특목고 입시 개선과 학원 대책이 대표적이다. 현 정부가 학원비를 카드로 결제하도록 하면서 학원 예산이 투명해졌다. 방과 후 학교나 EBS수능 연계의 사교육 대처 효과도 인정할 수 있다. 또 수시에서 논술을 잡겠다고 했다. 고교 교육과정이 나오는 중학교 수학시험 문제도 개선한다고 했다. 작은 문제를 때려잡는 것은 이 정부가 잘 한다.
문제는 정부가 그와 동시에 고교서열화, 학업성취도 평가 도입 등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요소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의 소소한 개선이 큰 정책 기조에서는 어긋날 때가 있다. 대학은 "정부가 대입 자율화해준다고 해놓고 여전히 간섭한다"고 불만이다. 정부가 논술전형을 줄이라고 대학을 협박하자, 대학들이 전형 개수를 줄이는 등 형식적인 액션을 취했다.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학원을 자율화한다던 정부 스스로 모순되는 정책을 쓴 격이다.
정부의 근본적인 기조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있고 '서열화'를 부추기다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절대평가', '쉬운 수능' 등과 같이 의미 있는 개별정책도 큰 기조 때문에 역효과를 낸다. (2014년부터 고교 내신은 현행 9등급 상대평가 방식에서 A-B-C-D-E-(F)의 6단계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된다. 성적표에는 석차를 표시하지 않고 원점수와 과목평균만 표기한다.<편집자>)
고교가 서열화된 상태에서 추진한 절대평가는 고교서열화를 심화하는 데 기여한다. 개별정책으로 보면 절대평가가 가진 교육적 타당성이 있는데, 지금 구조에선 의미 있는 정책마저 부정적인 효과로 극대화된다. 사교육은 경쟁의 문제이자 공평한 기회 보장의 문제라는 것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
입학사정관 전형 자체는 우려했던 것처럼 사교육을 유발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입학사정관 전형이 비(非)교과 중심이어서는 안 된다. 고교 교육 정상화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추천서나 소개서에 정규 교육 과정의 경험을 쓰도록 해야 한다. 밖에서 해온 것을 학교장이 인정하는 식이 아니라, 학교의 수업과 평가 속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도록 대학이 한정해줘야 한다. 정부의 몫이자 동시에 개별대학의 몫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 격차에 따른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
"대선 후보에게 선행학습 금지 특별법을 제안한다"
프레시안 :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정책들은 무엇인가?
김승현 : 선행학습 금지가 처음엔 얼마나 이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호응이 좋다. 사교육 피로도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어떤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 고교평준화를 실시했다"면서 찬성하고, 또 다른 분은 "현 정부 들어 고등학교가 서열화됐다"며 찬성하더라. 보수단체 또한 선행학습 금지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보부터 보수까지 다 찬성하는 정책이다. 하나 걸리는 것은 학원의 반발이다. 학원은 "우리가 공교육을 보완한다. 몰아세우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려면 학원도 정상화돼야 한다. 학원이 제대로 된 보충과 심화학습을 제공하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학원 업자와 가족들의 절대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선주자들이 이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 :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 수가 많은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운동이 학원들의 항의를 받을 때도 있겠다.
김승현 : <아깝다 학원비>를 발간했을 때부터 항의전화를 받았다. <아깝다 영어 헛고생>을 발간하니 학원연합회가 우리 논리에 대응하는 책을 크기, 형식까지 같게 해서 냈더라. 하지만 <아깝다 영어 헛고생>만 해도 30여 차례의 토론과 강연, 연구를 통해 나온 성과물이다. 우리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으로 별로 허점이 없다고 자부한다. 학원계에서도 논리로 시비는 못 건다.
다만 사교육 산업 종사자의 퇴로를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가 요즘 고민이다. 학생 수를 줄이고 교원 수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사교육 산업 종사자의 퇴로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남아 있는 사교육의 역할도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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