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원전 54기 중 현재 유일하게 가동 중인 훗카이도전력의 도마리(泊) 원전 3호기는 5~6일 사이 가동을 완전히 멈출 예정이다. 도마리 3호기는 지난달 28일부터 정기점검을 위한 가동중단 절차에 들어갔으며, 5일 오후 원자로에 제어봉이 투입돼 밤 11시경 발전을 멈추게 된다. 원전이 완전히 멈추는 시각은 6일 오전 2시로 예고되어 있다.
도마리 원전이 멈추면 일본은 1966년 첫 원전을 가동한 후 1970년 당시 2기였던 원전 모두가 정기점검 때문에 가동을 중단한 이후 처음으로 원전 없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 원자력 발전이 일본 전력 생산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이후로 치면 처음 있는 일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3월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후 당시 일본 내에서 가동 중이던 37개의 원전은 점검을 위해 멈춘 뒤 재가동되지 못했다.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책, 책임자 처벌 등에서 일본 정부가 우왕좌왕하면서 원전 지역 주민들의 재가동 반대가 강력했고, 근본적으로는 원전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난 1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반원전 시위. ⓒAP=연합뉴스 |
"화석연료 의존하는 일본, 무역적자·온실가스 부담 늘 것"
일본 언론과 주요 외신들은 무(無) 원전 시대를 맞은 일본이 지불해야 할 추가 비용을 계산하기 바쁘다. 3일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1조4963억 엔(약 21조1142억 원)의 적자를 봤던 일본의 9개 전력회사의 올해 적자폭이 2조6765억 엔(약 37조7680억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전력회사들이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모자라는 전력을 채우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나 석유 등 화력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일본의 무역적자도 심화됐다. 일본의 지난해 무역적자는 4조4100억 엔(약 62조2286억 원)으로 역대 최악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일본이 원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하면 하루 450만 배럴의 원유가 추가로 필요하게 되고 이는 매일 1억 달러를 더 쓰는 꼴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이 매일 추가로 필요한 원유 450만 배럴은 에콰도르의 1일 원유생산량과 맞먹으며, 일부 석유 사업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대 하루 800만 배럴까지 추가 수입해야 한다면 이는 카타르의 1일 생산량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의 무역적자를 늘리는 것은 물론 국제 원유시장과 동아시아의 천연가스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거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가디언>은 일본의 늘어난 화력발전 수요는 일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절약 운동을 펼쳐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35% 수준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신문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투자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마저도 재생에너지가 일본의 에너지 산업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꼼짝않은 日 반원전 여론
일본 정부는 이같은 비용 문제 등을 명분으로 재가동에 필요한 행정절차가 끝난 후쿠이(福井)현의 간사이전력 산하 오이(大飯) 원전 3, 4호기의 재가동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두 원전을 재가동하지 못하면 올해 여름 간사이(關西) 지방 전력공급이 15% 부족해지고 도쿄(東京) 등 수도권도 13%의 전력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압박했다.
<뉴욕타임스>는 3일 여름철 전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 일본 내 많은 공장들이 폐쇄되거나 해외로 이전할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재계도 정부와 발을 맞춰 전력부족 사태를 우려하고 나섰다. 일본의 경제단체연합인 게이단렌(經團連)은 최근 조사에서 제조업자 71%가 전력공급이 발생하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4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건설장비 제조업체인 고마스(小松) 전기산업의 사카네 마사히로(坂根正弘) 회장은 지난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본에서 제품을 만들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 반원전 여론은 이러한 정부와 재계의 '협박'이 잘 통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가져다준 막대한 피해,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함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교도통신>의 지난달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이 원전의 재가동에 반대하는 이들은 59.5%에 달한 반면 찬성은 26.7%에 그쳤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의 지지율은 26.4%로 주저앉은 반면 반원전 여론의 선봉에 선 차세대 정치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이 속한 지방정당 '오사카신우회'의 중앙 정치무대 진출에 기대를 표명한 이들은 62.5%에 달했다.
이같은 여론의 힘은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해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다 정부가 재가동을 밀어붙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자칫하면 정권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름철 전력 부족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면 정부도 원전 재가동을 위해 여론몰이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완전 가동 중단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은 '원전 0' 맞는데 한국은 대통령이 원전 기공식 참석
후쿠시마 사고 이후 활기를 얻은 반원전 진영에서는 일본에서 사실상 최초인 '원전 없는 날'을 새로운 전기로 삼고 있다. 국제 반핵단체인 그린피스는 5일을 "일본 국민들이 요구하는 지속가능 에너지의 미래로 나아가는데 큰 기회이자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과 최상급의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은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를 점차 줄어나가고 쉽게 재생에너지 선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일본의 원전 완전 중단은 고리원전 사고 등 원자력 산업의 위험성과 안이한 관리 문제가 드러난 한국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에너지정의행동은 3일 성명에서 "일본 정부의 재가동 움직임을 끈질기게 계속 감시하면서 지금까지 재가동을 저지해온 일본 시민들의 노력에 경의를 보낸다"면서도 "한국 국민도 일본 정부가 핵발전소 재가동을 포기하고 하루라도 빨리 탈핵선언을 발표해 핵발전소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일본 시민의 양심적인 염원에 부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4일 "일본이 5일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모두 멈추는 '원전 제로' 상태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4일 신울진원자력발전소 1·2호기 기공식을 진행한 것은 매우 역설적"이라며 "수만 명의 사람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의 교훈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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