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광우병(소 해면뇌상증, BSE)이 발생했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검역을 중단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고조됐던 지난 2008년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배치되는 결정이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8일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는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걱정하는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하여 국민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것", "수입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즉각 조사단을 미국에 보내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4년 전의 약속을 깼다. 수입 중단보다 수위가 낮은 검역 중단마저 하지 않겠다는 것.
농림수산식품부는 25일 "<블룸버그> 통신에서 한국 정부가 검역중단 조치를 한다는 보도가 나갔는데 사실이 아니다. 미국에서 소 해면뇌상증(BSE)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검역중단 조치를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BSE가 사료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자연 발생인지를 파악하려고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조율하는 단계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필요한 조치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국 농무부는 24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중부 목장에서 사육된 젖소 한 마리에서 광우병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광우병이 미국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한국 정부는 2003년 12월 미국에서 최초로 광우병이 발생하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으며 2006년 미국 측과 30개월 이하 월령 쇠고기에 대해 수입을 재개했다. 2008년에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수출·수입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수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2008년 상반기,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고조되자 정부는 수입위생조건을 재개정하며 부칙을 추가했다. 미국에 광우병이 추가적으로 발생한 경우, "한국 정부는 가트(GATT) 제20조 및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SPS) 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내용이다. 당시 이런 부칙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경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결국 공염불에 불과했다. 한국 정부는 이미 확보한 권리마저 스스로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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