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정치지형의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며 제19대 총선이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방송사의 정치종속 불식을 위해 파업에 나섰던 노조들로서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총선 성적표다. 총선 결과만 놓고 보면 방송사 파업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한층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방송사 노조들의 파업 명분은 낙하산 사장 퇴진이었다. 그러나 제19대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함에 따라 이 요구를 MB정권이나 새누리당이 전격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만약 총선 결과가 야당의 승리였다면 정권 차원에서 타협안의 일환으로 KBS, MBC, YTN 사장들을 교체하거나 또는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겠지만, 현재로서는 낙하산 사장들을 교체할 정치적 명분이 약해졌다. 그러므로 집권 여당의 과반수 차지라는 결과가 주요 방송사 노조들에 상심을 안긴 것만큼은 틀림없다.
이제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파업의 동력까지 완전히 상실됐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 오히려 총선 결과로 인해 노조들의 파업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다. MB정권의 낙하산 사장 퇴임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운 만큼 여기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파업을 접는다는 것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파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MBC노조는 이미 제19대 총선 결과와는 무관하게 낙하산 사장의 퇴출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며 그 강도를 높인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총선 이전에는 총선이 파업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로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그것도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의 복귀다. 그렇다면 방송사 노조들의 파업 타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치다. 언론 파업과 관련해 중요한 일정은 6월초로 예정된 제19대 국회 개원, 8월과 9월의 KBS, MBC, EBS 이사진 교체, 12월 중순 대통령 선거, 이 세가지다.
우선 6월 5일 제19대 국회가 개원하면 해당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이 예상된다. 이때 핵심은 해당 상임위의 위원장을 어느 쪽이 차지하는가와 소속 상임위의 여야 배분 숫자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여야의 기싸움은 8월과 9월로 예정된 KBS, MBC, EBS의 사장 임명을 담당하는 이사진의 선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공영방송 사장의 거취뿐 아니라 사장의 정치적 중립성에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결코 한쪽의 양보를 기대하기 힘들다.
방송사 파업은 여야 대립구도의 핵심 사안
이번 총선에서 방송사들의 파업 때문에,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던 민간인 불법사찰 이슈가 수면 아래 가라앉고 막말 파문이나 논문표절 같은 개별적 사안만 부각됨으로써 파업이 여당의 총선 승리에 일조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파업이 없었더라도 낙하산 사장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기대 자체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이번 총선은 올 연말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방송사 파업이 총선 결과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향후 방송계의 정치적 풍향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는 제19대 국회 개원 이후 방송사 파업이 노사의 사내 대립구도에서 여야의 대립구도로 옮겨가 정치적 핵심 사안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주요 방송사들의 파업은 내부의 타협이나 절충으로 해결을 기대하기는 더욱 요원해진다.
이제 방송사 파업의 해결은 정치권의 몫이다. 제19대 국회가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의 퇴출에 나서도록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 해결사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 같은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 뿐이다.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소유 문제도 있는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박위원장의 결단이 요구된다. 특히 이번 방송사 파업 문제의 해결은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들에게 있어 국정 관리능력을 평가받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대권주자들 중 누군가가 나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때가 파업 종료 시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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