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연합뉴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연합뉴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연합뉴스> 기자들에게 들어보니…'소처럼 일하던 우리, 왜 파업하나'

▲지난 15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전국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연합뉴스 노동조합 제공
<연합뉴스>에서 '스타 기자'를 찾기란 힘들다. 방송을 화려하게 장식할 일이 없다. 독특한 문장력을 선보일 여유도 없다. 뉴스 소비 공간이 인터넷 포털 중심으로 변함에 따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긴 했지만, <연합뉴스>는 어디까지나 나랏돈을 받는 국가기간통신사, 곧 '언론사의 뉴스'다. 기자의 주관을 최소화한 문장으로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게 <연합뉴스>의 기본 목적이다. 이 언론사 기자들이 새벽부터 출입처 기자실 불을 밝히는 이유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가진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색무취'의 언론사였던 <연합뉴스>가 '찌라시' 소리를 들은 건 현 정부 들어서다. 친정부적인 기사가 연달아 나갔다. '닻 올린 4대강'이란 기획기사 시리즈에서 <연합뉴스>는 이 사업을 나라의 미래를 밝혀줄 장밋빛으로 색칠했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가 광주 5.18 묘지 참배에 갔다가 묘지 상석을 밟은 모습을 담았던 이 언론사의 특종 사진기사는 데스크로 송고된 지 3시간이 지난 오후 1시께에서야 겨우 발행됐다. 속보싸움을 하는 통신사에서 데스크로 넘어간 기사가 3시간이 지나서야 나간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소처럼 묵묵히 일만 하던' 이 회사 기자들이 23년 만에 파업에 나선 이유다. 기자들은 "더 이상 '찌라시 기자' 소리를 못 듣겠다"며 박정찬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섰다. 최근 두드러진 <연합뉴스>의 일그러진 보도태도의 원인이 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이었다는 지적이다. 박 사장 취임 기간 개국한 보도채널 뉴스Y는 기자들의 노동강도를 더 키웠다. 이 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양보하기 바쁘던 이 회사 기자들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졌다.

박 사장 연임 여부가 결정될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20일, 연합뉴스 신사옥의 노조사무실에서 이 회사 기자조합원 네 명을 만났다. 입사 11년차인 이율 기자(증권부), 6년차 김남권 기자(산업부), 3년차 민경락 기자(사회부 시청팀), 2년차 차지연 기자(사회부 사건팀)는 박 사장 재임 기간 겪었던 사내 민주주의의 붕괴, 서서히 진행된 '찌라시화'를 체험한 심경, 파업이 준 불안함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들이 겪은 지난 3년여 '박정찬 체제'를 정리했다.

"내 기사 못 믿겠다는 댓글이 '베스트'더라"

▲"막내일 때 들은 '연합 찌라시'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차지연 기자(사회부). ⓒ프레시안(최형락)
차지연 기자는 직접 데스크로부터 부당한 기사작성 지시를 받은 경험은 없다. 그는 대신 길거리 집회에서 <연합뉴스>의 참담한 오늘을 알게 됐다.

수습기자 시절 집회 취재가 잦았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간단한 코멘트를 받으려 인사를 하면 "<연합뉴스> 싫어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준비 끝에 서울 동자동의 쪽방촌을 한 달에 걸쳐 취재했다. 직접 그곳 쪽방촌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자부심을 갖고 뉴스에 달린 댓글을 살펴봤다. '베스트'에 오른 댓글은 충격적이었다. 누리꾼은 "연합 찌라시 기자가 한 달 동안 쪽방에서 살았을 리가 없다"고 했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연합뉴스>는 보수단체의 집회도, 진보단체의 집회도 '드라이하게' 쓴다. 그런데 진보 진영의 주장을 받아 적으면 사람들이 'MB 끈 떨어질 때 되니까 이런다'고 SNS에서 말했다. 차갑게 돌아선 사람들의 반응은 어느 쪽의 응원도, 욕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차 기자의 가슴을 때렸다. 어느새 그가 꿈꿨던 기자생활은 '정권 스피커'가 돼 버렸다.

김남권 기자는 2007년 수습기자 시절의 경험을 먼저 얘기했다. 당시 특정매체의 기자가 '진영논리'로는 자사와 사이를 척진 단체를 취재하게 됐다. 그 기자는 취재 거부가 두려워 '<연합뉴스> 기자'라고 사칭했다. 김 기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금 그 기자가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연합뉴스> 기자를 사칭할 수 있을까요?" 선배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김 기자는 자신이 꿈꾸던 <연합뉴스>의 모습과 멀어진 현실을 절감하게 됐다.

김 기자가 사회부에서 일하던 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 기자는 '톤 다운(기사 보도 수위를 낮춤)'을 경험했다. 이처럼 큰 사건이 일어나면 <연합뉴스>와 같은 속보매체는 초싸움에 들어간다. 기사 비중이 있는 새로운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1보, 2보, 3보를 보도하고 종합기사를 쓰고, 그 다음에는 다시 박스기사를 쓴다. 뉴스 소비 공간이 포털로 변하면서 이런 경향은 점차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 부장급에서 직접 '영결식 기사가 많이 나갈 필요 없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사건의 중요도에 비해 기사량이 지나치게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이 봉화마을에서 검찰청까지 이동할 때 자사의 보도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이동하는 차량을 따라붙으면서까지 실시간 중계가 이어졌다. 물론 그 기사에는 '노무현은 나쁜 놈'이라는 문장이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이라면 누가 봐도 보도의 중립성을 잃은 상황이었다. 사내 공정보도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보도채널 선정을 앞둔 그 때

2009년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생긴 편집위원회의 초대 노조측 편집위원이었던 이율 기자는 회사가 '찌라시'로 전락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4대강 특집 기사, 반환점을 돈 이명박 정부에 대한 특집 기사가 찬양조로 질주할 때였다. 노조측 편집위원들은 관련 기사들의 공정성 상실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사측 위원인 편집상무, 편집국장, 정치부장, 사회부장 등은 기자들이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고의가 아니었다", "잠깐 자리를 비워서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는 식으로 눙쳤다. 진지한 개선의지를 찾기 어려웠다. 이 기자는 "공회전하는 느낌, 벽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만 남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돼 버렸다." 이율 기자(증권부). ⓒ프레시안(최형락)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시민단체들은 "<연합뉴스> 기자입니다"는 인사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자사의 보도태도가 달라지자 취재원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위급 인사의 인수위 시절 논란을 다룬 기사가 다른 매체에서 보도됐다. 그 사이에 <연합뉴스>는 침묵했다. 인수위 측에서 해명보도자료가 나오면, 그 후에야 관련 논란의 첫 보도가 인수위측 해명기사로 나갔다. 이처럼 '공회전하는' 자사의 보도태도는, 어느새 취재원들이 <연합뉴스>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청와대의 내곡동 사저 논란도 마찬가지였다. <연합뉴스>는 청와대측 해명 기사만 내보냈다.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고 지원을 받는 태생적 성격은 항상 정권의 입김에서 <연합뉴스>가 자유롭지 않았던 배경이었다. 뉴스Y 개국은 문제를 더 키웠다.

민경락 기자는 '기자 정체성에 의문이 드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보도채널 선정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 2011년 1월의 일이다. 당시 민 기자는 미디어과학부 소속이었고 방송통신위원회를 출입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통신장관회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는 자비를 들여 민 기자에게 출장을 지시했다. 당시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진출을 바라던 모든 언론사들이 '일단 기자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회사에서 내려온 지시가 이상했다. 기사 송고보다 정보보고(취재기자들이 현장에서 얻은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는 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최 위원장은 말레이시아에서도 매일 새벽 조깅을 했다. '조깅할 때도 따라 붙어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듣고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말하자면 민 기자는, 기자로서가 아니라 보도전문채널을 따내려는 회사의 사원으로서 그 곳에 간 건지도 모른다. "그 출장비를 다른 중요한 곳에 투입했다면 비용대비 더 좋은 기사가 나왔을 것"이라고 민 기자는 말했다.

"사장이 회사 망가뜨렸다"

민 기자의 출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찌됐든 뉴스Y는 개국했다. 개국 과정에서 사측은 기자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민 기자는 "굉장히 중요한 사업인데도 충분한 논의가 안 이뤄졌다. 내부적으로 우려가 적잖이 나왔으나, 사측은 '방송이 텍스트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밀어붙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뉴스Y는 40여 명의 취재인력으로 출발했다. 24시간 보도채널이 이 인력으로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연합뉴스> 기자들이 투입됐다. 새벽부터 출입처 불을 밝히던 통신사 기자들이, 갑자기 방송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게 됐다. 차지연 기자에 따르면, 준비는 엉망이었다.

수습교육을 끝낸 후 회사에서 방송리포트 교육을 두 차례에 걸쳐서 진행했다. 단 나흘 간 기자들이 방송 리포트 교육을 받았다. 교육의 중심은 맞춤법 강의였다. 이게 전부였다.

▲"최시중에게서 나온 정보를 보고했다. 기사 작성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더라." 민경락 기자(사회부). ⓒ프레시안(최형락)
기사를 송고하면 가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기사를 쓴 김에 촬영도 해라'는 주문이 끝이었다. 방송뉴스는 생각 외로 업무량이 많다. 리포트를 제작하고, 화면을 구성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그 사이에 데스크에서는 종합기사 주문이 들어왔다. 종합기사를 다시 붙들면 방송준비는 언제 되느냐는 독촉이 이어졌다. 일은 고된데 보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취재영역이 넓은 지방 주재기자들의 업무 부담이 상당했다. 민 기자는 "단순히 일이 많아져서 기자들이 폭발한 게 아니"라며 "제대로 기사를 쓰는 환경마저 무너지면서, 통신기자로서의 자부심마저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시민들에게 받던 괄시, 기자로서의 무력감이 기자들의 '파견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 업무 부담이 컸던 젊은 기자들부터 차례대로 성명을 발표했다. 공채 28기부터 31기(3년차 기자) 기자 56명이 지난해 12월 2일 성명서를 내 뉴스Y와 <연합뉴스>의 협업시스템이 가진 문제점, 그간 왜곡돼 온 회사의 보도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후배들의 자극에 선배들도 성명서로 화답했다. 민 기자는 선배들이 연달아 내놓는 성명서에서 공정보도에 대한 갈증이 더 선명히 부각됨을 느꼈다. 그간 희미하게 느꼈던 불안함을 자신만 가진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아마도 조합원들 대다수가 이 연이어지는 성명서를 통해 중대한 연대의식을 갖게 됐으리라. '올바른 기자의 삶'에 대한 갈증을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느꼈던 셈이다.

이 성명서를 계기로 연합뉴스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일선 기자들의 설명대로 '(제대로 사측에 대들지도 않고) 소처럼 일할 줄만 알던' 순진한 기자들이 노트북을 덮고, 차가운 광장에서 민중가요를 불렀다.

차 기자는 지금도 수시로 출입처의 전화를 받는다. 메일함에는 '어디서 무슨 사건이 발생했다'는 내용의 소식이 쌓여 있다. 방금도 출입처의 전화를 받았다. "파업 중입니다"는 말을 하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차 기자는 기자의 꿈을 꿀 때처럼 그저 기사를 마음껏 쓰고 싶을 뿐이다.

먼저 입사한 대학선배들의 권유로 <연합뉴스>를 꿈꿨다는 김 기자는 "대학 후배들에게 우리 회사 입사를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그가 "어떤 일이 있어도 파업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후배들에게 <연합뉴스> 입사를 권장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김남권 기자(산업부). ⓒ프레시안(최형락)
이 기자는 사실 파업이 부담스럽다. 당장 월급이 끊기고,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처지를 볼 때마다 드는 자괴감을 그대로 안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상식이 짓밟힌 상황"에 "후배들이 들불처럼 일어나는데, 당장은 창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민 기자는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임을 절감하고 있다. 기자들의 목소리를 사측은 듣지 않는다. 노조가 경영실패의 책임을 진 사장에게 중도 퇴진을 요구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임기가 만료됐으니 다시 돌아오지만 마라는 게 노조의 요구다. 그러나 박 사장은 이번에도 단독 사장 후보자로 선출됐다.

23년 전, <연합뉴스>의 첫 파업 때 머리띠를 둘러맸던 사장은, 이제 다시 파업에 나선 후배들의 싸늘한 눈길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주주총회는, 후배들의 물음에 대한 박 사장의 대답이 될 것이다. '이제 선배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는 후배들은, 박 사장이 정답을 선택하길 원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