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 차이퐁(가명)이 A사를 그만둔 건 1. *백줴 안 받던 기숙사비를 2만 5천원씩 받았고 2. 빨간 날에 일 시켜놓고 휴일수당을 안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는 게 나을 뻔했다. 왜냐하면 그 정도 기숙사비는 가벼운 수준이고, 빨간 날에 안 준 수당은 퇴직 후 얼마든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A사는 상당히 *괜찮은 회사였다!
어쨌든 그는 참지 못하고 기숙사비도 안 받고, 빨간 날 수당도 주는 B사로 옮겼다. 그곳은 종업원이 단 하나 뿐인 고물상이었다. 이런 고물상은 견디기 힘들다.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야 하니까. 4대 보험도 없었다. 하지만 차이퐁은 사장님이 빨간 날 수당을 준다는 바람에 얼른 계약을 해버렸다. 그것도 2년 계약을! 하지만 곧 후회했다. 한국인 종업원도 나가버리고, 빌려 쓰던 지게차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로 고철을 나르고 자르는 일을 했다. 되게 힘들었다. 허리가 휠 정도! 하지만 육체는 힘들어도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자유! 간섭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자유는 언제라도 깨질 가능성이 있었다.
파국은 혹한기에 찾아왔다. 수도가 얼었다. 사장님이 물차를 불러 드럼통 3개에 물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는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목욕하느라 그 물을 다 써버렸다. 사장님이 화가 났다. "임마, 너 물귀신이야? 도라무통 세 개를 하루에 다 쓰게. 벙어리처럼 말도 못하는 게 우습지도 않네." 졸지에 물귀신에 벙어리가 되자 정신이 버쩍 났다.
사장님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국인 하나를 다시 고용했다. 태국인은 자연히 한국인 눈치를 보게 되었고, 행동에 부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젠 출근카드도 마음 놓고 찍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은 6시에 일을 마치고 6시 반에 카드를 찍어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건만, 이제는 모든 게 기계처럼 정확해졌다. 그는 부자유를 느끼면서 서서히 소외되었다. 그러자 참았던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진짜로 아팠다. 허리고 어깨고 다리고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너무나 아파서 그만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는 그만둘 방법이 없었다. 사장님이 사인해줄 리 없으니까. 더구나 2년 계약을 했으므로 희망이 안 보였다. 앞으로도 1년 2개월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가 발안으로 찾아온 건 초봄이었다.
(12일 계속)
*백줴 : 백주에, 뜬금없이
*괜찮은 회사 : A사는 아직도 그에게 친정 같다. 여전히 A사의 잠바를 입고 다니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서 자는 곳도 A사의 기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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