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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천사라도 악마로 변해 있을 수밖에…"

[김대중을 생각한다]<15> 우리의 자랑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걸쳐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인물이라고 하겠다. 한국과 동북아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그의 탁월한 식견과 논리, 끈질긴 노력과 활동, 그래서 이룩한 업적과 공헌에 대해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공감하고 지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국제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그분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아직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아마 우리 현대사에서 김대중 대통령만큼 서로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 인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 평가의 편차는 극과 극이어서 좀처럼 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지경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측으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의 사람들로부터도 인색하게 혹평을 받거나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그는 그가 지향하는 이상과 원칙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그 이상과 원칙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지극히 실현가능한 현실적 방법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리만을 탐하는 속물들로부터는 고집스런 원칙주의자로 타도의 대상이 되고, 이상주의자의 눈에는 현실과 타협하는 수정주의자로 오해되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물론 여기에도 편견과 악의가 깃들어 있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김대중의 역사적 소임은 원칙을 굽혀서도 안 되고, 무책임하게 말만으로 그쳐서도 안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는 데서 오는 고뇌를 안고 살았으리라.

또 하나는, 아예 의도적으로 김대중이라는 존재를 우리 사회와 역사에서 제거하기 위한 음모들이 오랜 세월 조직적으로 자행된 때문이다. 1980년대에 어떤 분이 김대중에 관한 세간의 악평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수십년 간을 막대한 힘을 가진 국가권력이 김대중 하나를 없애려고 갖은 모략과 수단방법을 다했는데, 아마 천사라도 악마로 변해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도 동감이다. 역사에서 악의와 편견은 벗겨져야 한다. 진실이 묻히고 정의가 무너진 사회와 역사는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진면목이 국민들 가운데 바르게 드러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김대중 개인을 위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고, 나라가 바르게 되는 길이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프레시안(손문상)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감옥살이를 함께 하면서였다. 1976년의 '3.1민주구국선언사건'과 1980년의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각각 연루되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공범으로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함께 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대면하게 된 것도 감옥행의 도상이었다. 1976년 3월 10일로 기억한다. 그날 새벽 2시경 당시 서소문에 있었던 검찰청 대기실에서였다.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과정에서였던 것이다. 그 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30년이 훨씬 넘도록 나는 그 분과 동지적 삶을 살아왔다. 고락(苦樂)을 같이한 사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사이를 가장 밀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낙(樂)보다는 고(苦)인 것 같다. 나는 감옥을 함께 삶으로써 그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더 깊게 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나의 느낌은 대략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었다.
마음이 고운 분이었다. 눈물도 많고 정감이 넘치는 분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의로써 대하며,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세심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유머감각도 뛰어나서 좌중을 웃기고 평안하게 해 주는 분이었다.

둘째, 모든 부문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춘 분이었다.
'3.1민주구국선언사건' 관련자들 가운데는 석학들이 많았다. 그분들과 같이 나누는 김 전 대통령의 대화에는 거침이 없었다. 정치나 경제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철학이나 신학에 있어서도, 특히 역사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은 정말 놀라왔다. 그 분의 지식은 단편적인 얄팍한 지식이 아니라 매우 학구적이고 각 부면의 지식을 상호 연결 지어 분석하고 종합해낼 수 있는 산 지식의 소유자라고 판단되었다.

우리 민족이 이 분만큼 국정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르게 미래를 전망하고 설계하여 백성을 잘 섬길 수 있는 대통령을 다시 맞을 수 있을까 싶다.

셋째, 돈독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학구적인 그의 지성과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 농축되어 삶으로 나타난 행동하는 신앙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다 알다시피 그분은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특히 일본 납치시의 생환 경험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개입이었다고 고백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돌아가시던 해인 2009년 1월 15일자 일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 생이 있는 한 이 길을 갈 것이다."

그분의 인권과 정의에 대한 지극한 관심,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민족 간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에 대한 불굴의 집념, 그리고 이것들을 민족사에서 이루어내기 위해 온갖 박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살아낸 그 용기는 그분의 깊은 신앙에 뿌리하고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민족과 역사의 큰 자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역사에 끼친 그의 공적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가 근대입헌국가로 출범한 1948년에서부터 '국민의 정부'가 수립된 1998년에 이르기까지 장장 50 여 년 동안 우리국민은 독재의 사슬에서 신음했다. 정권연장과 정권탈취, 독재강화와 영구집권을 위해 변칙적인 불법과 폭력이 난무했고, 국민들은 그 초법적인 국가폭력에 의한 탈법 무법 악법의 악순환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시달려야만 했다. 정의롭게 살려는 젊은이들과 양심을 지키려는 지성인들이 감옥으로 끌려가야만 했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악순환의 매듭을 끊은 것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우리가 쟁취한 1998년의 평화적 정권교체인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진면목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외형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론 그 외형 자체만으로도 우리 역사에서 엄청난 일이었지만 김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수립된 국민의 정부는 명실 공히 민주정부로서의 속살을 채워 넣었다. 구체적인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첫째,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신장되었으며 역사에 진실을 세우려고 힘썼다.
헌법적 가치인 집회 결사의 자유가 김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의 정부로 말미암아 마침내 허용되고 확보되었다. 민주노총이 합법화 되었고, 전교조도 합법화 되었다. 거리에서 최루탄이 사라지고 시위가 자유로워짐으로써 합법적인 시위문화가 향상되었다.

국제기준에 맞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제정되어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적 기구로 설립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와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민주 인권국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등이 제정 시행되어 반세기에 걸친 독재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고 고통 받은 많은 국민들의 한을 풀어줌으로써 역사에 진실과 정의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이렇듯 김대중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기본권이 신장되고 감추어졌던 역사의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우리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참 맛을 비로소 맛 볼 수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요즘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의 기틀은 국민의 정부에 의해 이미 놓여졌다고 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 같은 것은 보편적 복지의 단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사회복지를 결코 시혜로 보지 않았다. 복지는 곧 천부적 인권이라는 신앙적인 안목과 철학을 가지셨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일종의 천부적 권리다. 사람의 건강권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마땅히 사회적 돌봄이 필요하고 장애를 가진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철학과 신념으로 김 대통령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을 완성하여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지금까지도 그 안전망이 국민들의 삶의 틀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남북의 화해협력과 민족의 평화통일에의 진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달리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고, 전 세계가 공인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약관 20대에 정치를 시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무려 60 여 년 동안의 정치생활에서 변하지 않고 초지일관 추구한 이상과 목표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온전한 민주주의의 실현이고, 또 하나는 분단된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이다. 이 두 가지는 어떠한 극한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꺾인 적이 없다. 특히 평화통일에 관한 그의 주장은 줄곧 독재권력과 극우 보수세력에 의해 좌익분자로 매도당했고, 그만큼 집권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 겪어야만 했다. 한길사가 출판한 김 대통령의 강연집 "나의 길, 나의 사상" 서문에 보면 이 점에 관해 본인이 직접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유신체제 하에서는 공산당에 대해서 멸공밖에 없었고 통일은 멸공통일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때에 북한과 평화공존하면서 평화통일을 하자는 나의 정책은 완전히 공산주의에 대한 하나의 협박으로 간주되고 매도되었다. 급기야 1980년에 나는 그러한 통일정책을 이유로 해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민족에 대한 나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971년에도 그랬지만 1987년과 1992년 선거 때마다 나는 용공시비로 시달렸고, 이로 인해 당락이 좌우될 만큼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까지를 참고 이겨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피범벅이 되어있는 우리의 민족사와 정치사에서 보복적 악순환의 매듭을 끊은 위대한 대통령이다.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과 그에게 위해를 가한 모든 사람들을 다 용서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정치적 보복을 하신 일이 없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가히 성자 수준에 이른 분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위에서 거론한 세 부분 외에도 나라경제가 거덜 난 IMF사태를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기에 해결한 경제적 성과나, IT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정보강국으로 만드는 등 많은 일들을 이룩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김 대통령이 이룬 성과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있을 것이다. 얼키고설킨 인간사에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다. 미진함도 있을 것이고 부족함도 있기 마련이다. 본래 민주주의란 완성된 기성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과정이요 무한히 발전해가야 할 미완성의 삶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1998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본다. 따라서 그가 이룬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업적을 오늘의 퇴행을 극복하고 내일을 바르게 가꾸는 자산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 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해 그의 온 삶을 바쳐 치열하게 추구한 가치는 세 가지 개념으로 집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자유, 정의, 평화이다. 이것들은 성서적 가치의 핵심들로서 전 세계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들이다. 그 분이 실현하려고 평생을 바쳐 애썼던 올바른 민주주의, 복지국가, 국민과 남북 간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 등은 결국 우리들의 삶 가운데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온전하게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아니,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 정의 평등평화의 세상맛을 김대중 대통령으로 말미암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듯 김대중 대통령이 이룬 업적들과 온 삶을 바쳐서 추구한 가치들은 우리 민족과 역사의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 가치들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역주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각성해서 역주행을 막고, 김대중의 가치를 회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라와 민족이 살게 된다.

한 학자는 "역사를 망각한 사람은 치매에 걸린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망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없어져 남편이나 아내, 아들딸들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모든 일에 사리분별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곧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기상실, 이것이 치매의 심각성이고 비극성이다.

사람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억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다. 개인이나 사회공동체의 삶의 방향과 질은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역사의식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오늘을 고쳐 살고, 그 바른 삶을 내일에 이어주는 것이 개인과 세상을 바르게 만들고 지탱시키는 힘이다. 기억과 회상과 전수라는 삶의 틀이 우리들의 실생활에서 바르게 작동할 때 바른 삶과 바른 세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다. 자유 정의 복지 즉 민주주의의 역사이고, 민족공생과 평화 즉, 민족평화통일에의 역사다. 우리민족이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위대한 역사다.

* 필자 이해동은 1934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한신대를 졸업하고 1970~84년 한빛교회 목사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두 번의 수감생활을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했으며 2009년 김 대통령 서거 당시 하관식의 예배를 맡았다. 덕성학원 이사장, 군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장 등을 지냈고 '행동하는 양심' 이사장, 청암언론문화재단 이사장,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 <프레시안>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한 독자 여러분의 글을 널리 구합니다. 김대중의 정치적 유산 중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과제 등에 관한 진솔한 생각을 담아 webmaster@pressian.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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