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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본소득, 무슨 돈으로 하느냐고요?"

[99%를 위한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비전과 제2의 토지개혁

보편적 복지와 함께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데, 기본소득 이야기만 나오면 "좋긴 한데, 무슨 돈으로 그걸 하냐?", "기본소득을 당장 마련한다고 해도, 그것이 지속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뒤따라온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시스템은 결국 오래가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자체가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안이 있다. 그것은 기본소득의 선구자로 알려진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이 제시한 지대(land rent), 즉 토지 불로소득을 기본소득의 우선적인 재원으로 삼는 것이다. 토지 불로소득 환수는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성장과 고용에 크게 이바지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는 것 자체가 기본소득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선구자 토마스 페인과 토지 불로소득

토마스 페인은 자신의 저서 <토지정의>(Agrarian Justice)에서 토지를 단독 사용하는 사람은 토지가치인 지대만큼 사회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대는 세금으로 징수되어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페인에게 있어서 지대는 기본소득의 재원인 것이다(Marangos, John. 2008. "Thomas Paine(1737-1809) and Thomas Spence(1750-1814) on land ownership, land taxes and the provision of citizens' dividend."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Economics>. Volume 35, Issue 5 pp.313-325).

그런데 토마스 페인은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은, 토지는 인간이 만들지 않았고 어떤 인간도 토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어찌 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런데 토지는 단독 사용이 간편하고 효율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함께 농사짓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잦고, 주택이 깔고 있는 대지도 단독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안전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즉, 모두의 것인 토지를 단독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문제. 이 문제의 해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그것은 토지사용에서 발생하는 특별이익 지대(land rent)를 환수하면 된다. 페인이 '토지사용자는 공동체에 지대만큼 빚을 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토지제도는 토지가치인 지대를 개인이 소유하는 제도이다. 더구나 토지가치인 지대는 토지주인이 아닌 사회가 만든 가치인데도 말이다.

토지가치는 땅 주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토지가치가 발생하고 커지는 현상은 땅 주인의 노력과 무관하다. 모두가 알듯이 토지가치의 핵심은 '위치'이다. 교통이 편리한 좋은 위치의 토지는 비싸지만, 교통이 안 좋은 외진 곳의 땅값은 싸다. 그런데 위치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다. 사회경제적 변화 때문에 도로, 학교, 공원, 관공서 등을 설치하는 정부의 노력으로, 아니면 자연경관에 의해서 위치의 좋고 나쁨이 생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토지를 통해서 버는 소득 앞에다 '불로(不勞)'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제도는 토지 투기를 유발한다. 자동차와 같은 일반물자의 가격은 '과거'에 투입된 생산 원가를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는데 반해, 지가(land price)는 '미래'에 발생할 지대가 더해진(자본화된) 값을 중심으로 결정되고 자동차와 달리 가격이 점점 오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일반물자에는 투기가 잘 일어나지 않지만, 토지에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런 토지 투기는 빈부격차, 경제위기, 실업, 용산참사와 같은 수많은 사회갈등과 문제의 원인이 된다.

기본소득의 재원인 토지 불로소득을 얼마나 환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기본소득의 재원인 토지 불로소득을 어떻게 환수하면 좋을까? 토마스 페인이 말한 것처럼 지대를 100% 환수하는 방식을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라고 부르는데, 필자는 지대조세제보다 지대를 50%까지 환수한 후 지가의 원금과 이자만 보장하는 '이자 공제형 지대세' 도입 방식이 실현 가능성 면에서 더 낫다고 본다.

이렇게 환수할 수 있는 지대는 얼마나 될까? 2011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바로는 2010년 전국의 공시지가는 공공용지를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3,000조 원이 넘는데, 지가를 지대로 환산하는 비율을 연 5% 정도로 잡으면 지대는 150조 원이 된다(공시지가는 시가의 60~70%밖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걸 참작하면 실제 지대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지대를 세금으로 얼마나 환수하고 있을까? 국세청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 추산해보면 2010년에 건물을 제외한 토지보유세를 통해서 환수한 액수는 약 7조 2천억 원쯤 된다. 그러니까 전체 지대의 4.8% 정도만 환수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필자는 지대 환수비율을 50%까지 점진적으로 끌어올린 후, 지가를 고정시키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땅값이 고정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어서 잠시 설명해본다. 예컨대 땅값이 2억 원인 토지에서 지대의 50%를 환수하면 지가는 1억 원이 된다. 왜냐하면, 지가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지대를 현재 가치로 계산해서 다 더한 값인데, 그 지대 중에 절반을 환수하면 소유자는 나머지 절반만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지가 1억 원의 이자에 해당하는 부분인 500만 원(= '1억 원×0.05', 이자율 5%로 가정)만 개인에게 귀속되고 50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은 정부가 환수한다면 앞으로 그 토지를 통해서는 매년 500만 원의 이익만 생기므로 지가는 1억 원(=500만 원/0.05)으로 고정된다. 이것은 현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 놓으면 매년 500만 원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되면 매매차익을 노리는 토지 투기는 발붙이지 못하게 되고 토지 가치는 계속 증가하므로, 즉 기본소득의 재원은 더 많이 쌓이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지대의 50%는 2010년을 기준으로 따지면 75조 원가량이 된다. 이 액수는 국민 1인당 매년 150만 원(='75조 원/5천만 명') 꼴이며, 2011년 최저생계비가 4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1,700만 원이 조금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4인 가구당 연간 2천만 원씩 나누어준다고 가정하면, 375만 가구(='75조 원/2,000만 원')에게 나눌 수 있는 상당한 금액이다.

토지 불로소득 환수의 예상 효과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렇게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면 토지로 말미암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다시 말해서 토지문제가 초래한 엄청난 사회경제적 폐단이 시정된다는 것이다.

먼저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성장과 고용에 미치는 효과를 생각해보자.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 토지 불로소득을 노리고 저사용(under-use)되거나 방치되었던 토지가 생산에 이용됨으로 GDP가 증가하고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할 것은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신규기업과 중소기업에는 매우 유리하고 요지의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과 재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토지 불로소득 환수비율 강화는 지가라는 거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 바로 이것이 신규기업과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토지 불로소득을 독점했던 대기업과 재벌들의 힘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횡포는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다음으로 분배에 미치는 효과를 생각해보자.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화된 가장 큰 이유가 부동산, 더 정확히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이란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면 부동산이 초래한 빈부격차는 사라진다. 즉 토지에 짓눌렸던 하위계층의 삶은 좋아지고, 토지를 통해서 부를 누렸던 상위계층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이것은 하위계층을 가장 괴롭혔던 주거문제가 해결되는 것만 생각해봐도 그 효과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토지 불로소득 환수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과 소득분배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는데, 놀라운 것은 이런 효과는 토지가치 상승을 낳고 그것은 다시 기본소득의 재원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기본소득을 제공하게 되면 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결국 기본소득의 재원마저 고갈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은, 토지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삼게 되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제2의 토지개혁'의 만남을 위하여

이렇게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것을 일컬어 필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단행된 제1의 토지개혁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제2의 토지개혁'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주지하듯이 대한민국이 그나마 이 정도의 공업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1950년 이승만 정권기에 단행된 제1의 토지개혁, 즉 농지개혁이다(필자는, 성공적인 농지개혁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사람은 대통령 이승만이 아니라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조봉암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1의 토지개혁은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 정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올라가면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정신, 즉 토지는 모두의 것이라는 사상과 맞닿아 있다(전강수. 2009. "조봉암과 농지개혁." 조봉암50주기 기념토론회. 7/29).

그러나 제1의 토지개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도시화와 함께 새로운 신흥지주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뚜렷한 개혁이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주기적인 불황에 시달렸고, 빈부격차가 심해졌으며, 한쪽에서는 땅과 집으로 불로소득 향연을 벌이는 반면 ― 이 불로소득의 상당 부분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다른 한편에서는 전세금 올려줄 돈이 없어서 자살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는 제1의 토지개혁 정신을 계승하되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2의 토지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그것은 토지를 골고루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고, 이를 통해서 토지 투기를 완전히 뿌리 뽑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더는 땅과 집으로 돈 벌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생산적인 투자를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고, 땅값을 낮춰서 신규기업들도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환수한 토지 불로소득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기본소득의 재원이 점점 풍부해지고, 한국 사회는 더이상 토지문제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제2의 토지개혁과 기본소득의 만남이 가져올 수 있는 놀라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의회 권력과 대통령을 교체하는 선거의 해이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사회를 열 수 있느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느냐, 하는 것이 올해의 선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과 토지 불로소득의 완전 환수를 핵심으로 하는 제2의 토지개혁과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본소득과 제2의 토지개혁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통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된 삶의 기반을 제공하는 동시에, 토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서 역동적인 시장을 만드는 상상. 갑자기 "인류가 이룬 모든 업적은 소망의 산물"이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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