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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의 케이팝, 롤리타에 지배당하는 섹시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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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안의 케이팝, 롤리타에 지배당하는 섹시 코드

[이동연의 케이팝 오디세이] 케이팝과 제이팝 아이돌 전쟁

인터넷 유튜브에 접속해서 케이팝과 제이팝을 검색하면 팬들이 많든 흥미로운 동영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케이팝과 제이팝을 비교하는 동영상을 보면 대부분 아이돌 그룹들을 비교하는 것들이고, 각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교차되는 동영상에는 같지만 다른 차이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 동영상들이 아주 객관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양국의 아이돌 그룹 음악의 수준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케이팝과 제이팝 기획사가 만들어 내는 아이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각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양국에서 아이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아이돌이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본격적으로는 한국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라고 불리는 H.O.T.가 데뷔하면서부터다. 이른바 아이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하나는 데뷔 시점이 10대이어야하고, 다른 하나는 아이돌 제작에 필요한 돈과 기획노하우가 포함된 제작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한국 대중음악이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이다.

반면 일본 대중음악에서 아이돌은 한국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쓰인 용어다. 일본 아이돌 그룹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자니스사무소(ジャニーズ事務所)의 첫 번째 아이돌 그룹인 '자니스'가 데뷔한 해는 1964년이고, 1970년대에는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1980년대는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가 제이팝에서 대표적인 아이돌 그룹이었다. 자니스사무소는 1972년 고 히로미(郷ひろみ), 1980년 콘도 마사히코(近藤真彦) 등 최고의 아이돌 스타를 배출하면서 50년 동안 남자 아이돌 그룹의 산파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아이돌을 제작하는 방식의 차이다. 케이팝이나 제이팝이나 아이돌을 제작하는 기본 포맷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디션을 통해 10대들을 연습생으로 선발해서 팀을 만들고 장기간 연습 끝에 데뷔시키는 방식은 양국 모두 유사하다. '오디션-연습생' 시스템은 제이팝이 케이팝보다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세밀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아이돌의 제작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케이팝에서 아이돌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퍼포먼스를 추구하도록 강한 훈련을 받는다. 인위적인 가창훈련, 비-보이(B-boy)에 버금가는 안무, 신체단련, 외국어 학습, 성형, 매너 훈련에 이르기까지 아이돌은 데뷔 전에 완벽하게 학습 받는다. 케이팝의 아이돌에게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반면 제이팝에서 아이돌은 완벽한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오히려 음악팬과 대중 모두 아이돌에게서 완벽한 모습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비어있지만,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원한다. 예를 들어 제이팝에서 걸그룹의 이미지가 케이팝처럼 가창, 춤, 체형에서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어설프고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중이 원하는 걸 그룹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녀시대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이미지라면, AKB48은 모자라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이미지이다.

아이돌을 제작하는 기획사의 운영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케이팝에서 아이돌 기획사는 빅4를 포함해 수많은 회사들이 난립하는 대신, 제이팝에서 아이돌 기획사는 소수다. 다만 남성 그룹의 경우 자니스사무소가 독점하고 있는 반면, 여성 아이돌 그룹은 다소 난립한다. 예를 들어 '모닝구무스메'(モーニング娘。)의 소속사는 UFA이고, '큐트'(℃-ute)와 베리즈코보(Berryz工房)는 하로프로젝트, AKB48은 멤버별로 각기 다른 기획사를 갖고 있다. 제이팝의 아이돌 기획사가 케이팝에 비해 적은 이유는 일본 대중음악 제작사의 전형이 전문적 영역을 개척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팝이 유행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일단 제작사부터 차리는 한국의 방식과 달리 일본의 제작사들은 마치 일본의 근대 공방들이 그러하듯 전문적인 영역을 오래 유지하는 문화적 관습에 익숙하다. 아이돌 팝을 제작하는 기획사가 전문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케이팝은 유행에 민감하고, 제이팝은 장르 음악에 충실하다

케이팝의 아이돌은 주로 그룹 중심으로 제작되고 음악도 대부분 힙합과 일렉트로닉이 결합된 댄스음악이 지배적이다. 그룹이나 기획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음악의 기본 포맷은 강렬하고 빠른 일렉트로닉 비트에 랩과 멜로디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또한 곡이 처음에 만들어질 때도 곡 자체의 완결성뿐 아니라, 춤을 추는 데 얼마나 적합한지를 고려한다. 케이팝 가수들의 노래를 듣다보면 신나고 흥겨운 리듬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그만큼 곡들이 서로 유사해서 누가 불러도 비슷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동방신기 노래가 슈퍼주니어와 비슷하고, 슈퍼주니어 노래가 f(x) 노래와 비슷하다. 여자 아이돌은 모두 날씬하거나, 귀여운 캐릭터로 무장해서 남성 팬들을 유혹하고, 남자 아이돌은 대부분 검은 양복에 식스팩, 깡마른 체형을 유지한 채 랩을 하고 춤을 춘다. 케이팝 아이돌의 곡들이 안무와 랩에 적합한 곡이어야 하고, 최신 유행하는 음악 트렌드에 몰리다보니, 곡들이 엇비슷할 수밖에 없다.

제이팝의 아이돌 역시 음악적으로 서로 차별성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룹별로 추구하는 음악적 경향이 비교적인 다양하다. 일본 최고의 남성 아이돌 그룹 아라시(Arashi)는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펑키한 디스코 리듬, 밴드형 로큰롤 사운드와 같은 비교적 전통적인 음악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데뷔곡 'A.RA.Shi'(1999)에서부터 'Love So Sweet'(2007), '새로운 세계가 부르고 있어'(まだ見ぬ世界, 2011)까지 아라시는 최신 음악 트렌드를 반영하기보다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펑키한 전통적인 아이돌 사운드를 유지한다. 아라시와 함께 오랫동안 정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맙(SMAP) 역시 데뷔 초기에 보여준 멜로딕한 펑키사운드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제이팝에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퍼퓸(perfume)은 디스코 레이브 음악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그룹이고, 2006년에 데뷔한 카툰(Kat Tun)과 2007년에 데뷔한 AAA은 각각 일렉트로닉 팝에 가깝다.

제이팝의 아이돌 음악이 케이팝보다 장르음악에 더 충실한 이유는 팀이 일정한 스타일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이돌 팝은 수시로 변하는 트렌드를 좇아간다. 1990년대 H.O.T.와 젝스키스의 노래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슈퍼주니어와 2PM의 노래와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동방신기와 샤이니의 음악만 놓고 보더라도 아이돌 팝을 지배하는 유행 형식에서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예컨대 2005~7년 사이 동방신기의 음악은 리듬 위주의 곡이 강한 반면, 2010년 샤이니의 음악은 비트 위주의 곡이 강한 편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아이돌 팝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다. 케이팝의 음악처럼 힙합적인 비트와 랩핑은 많지 않고, 여전히 복고적인 디스코, 블레이크, 펑키 사운드가 지배한다. 케이팝이 비트중심이라면 제이팝은 멜로디 중심이다. 제이팝이 케이팝에 비해 글로벌한 음악 시장에서 해외 팬들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들의 음악적 사운드가 오랫동안 구축된 일본 특유의 전통적인 멜로디가 강조되기 때문이다.


▲2005년 결성된 AKB48은 모닝구 무스메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손꼽힌다. 40여명에 이르는 멤버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팀을 꾸리며, 귀여움으로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일본 아이돌의 전형을 보인다. 아키하바라의 전용극장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자매 유닛으로 그룹 'SDN48', 'SKE48', 'NMB48' 등이 있다. ⓒ뉴시스

한일 걸 그룹의 이미지: 섹시와 큐트

케이팝과 제이팝을 비교할 때 흥미로운 부분이 걸그룹의 이미지이다. 케이팝과 제이팝 걸그룹의 이미지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한 마디로, 케이팝 걸그룹의 이미지가 섹시하다면 제이팝의 이미지는 큐트하다. 날씬한 다리, 스키니한 패션, 짧은 치마, 관능적인 안무, 육감적인 눈빛이 케이팝 걸그룹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라면, 스쿨룩, 루즈 삭스, 뭉뚝한 다리, 엣된 표정, 상기된 볼, 어색하지만 열심히 하는 안무는 제이팝 걸그룹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다. 케이팝의 걸그룹은 일반적으로 10대의 상큼 발랄한 이미지보다는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성인 쇼걸의 이미지를 선호한다.

케이팝의 걸그룹과는 달리, 제이팝의 걸그룹은 귀여운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이는 제이팝 여성 걸그룹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일관된 이미지다. 제이팝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 스쿨 룩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여중생, 여고생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함이다. 일본인들에게 걸그룹은 항상 2% 부족해 보이는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들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일본 아이돌 음악 팬들은 걸그룹에 완벽한 몸매, 완벽한 노래, 완벽한 퍼포먼스를 원하지 않는다.

2006년에 헬로 루키 프로젝트로 데뷔한 큐트(℃-ute)는 헤어스타일, 의상, 액세서리 코드, 메이크업, 멜로디, 가사 모두에서 미소녀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큐트와 같이 헬로 루키 프로젝트에서 발탁된 베리즈코보(Berryz Koubou) 역시 주된 코드는 귀여움이다. 롤리타 신드롬을 일으켰던 AKB48의 멤버들 역시 데뷔 시점이 10대 초·중반으로 핫미니스커트의 교복과 앙증맞은 표정, 미성의 목소리가 트렌드마크다. 일본 걸그룹의 주된 코디네이션이 교복과 삐삐머리, 약간 상기된 볼 메이크업과 발목 위로 올라온 루즈 삭스인 이유다. 간혹 나타나는 <물랑루즈>의 주인공 샤틴의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도발적 의상조차도 한국 걸그룹의 섹시 코드와는 다르게 성적으로 과잉된 미소녀의 이미지를 유지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케이팝과 제이팝 걸그룹 이미지의 차이는 사실 페티시즘이라는 동일한 욕망을 공유한다. 케이팝은 섹시하고 제이팝의 큐트한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제이팝 걸그룹들의 퍼포먼스를 자세히 보면 한국 걸그룹의 섹시 코드와 동일하게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한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국 걸그룹의 섹시 코드가 직설적이고 날것 그대로라면, 일본의 큐티 코드는 간접적이고 비밀스럽다. 일본 걸그룹의 의상에 교복과 루즈 삭스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순수함의 재현이라기보다는 페티시즘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가령 AKB48의 노래 중 'Happy Rotation'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이 란제리를 입고 노는 장면들을 다양한 각도와 위치에서 보여주는데, 한국의 걸그룹이 아무리 섹시한 자태를 보여주어도 이런 식의 노골적인 성적 표현은 불가능하다. AKB48의 멤버 중에는 성인화보를 찍는 경우도 있고, 소속사 사장과 성 스캔들이 난 경우도 있다. 결국 케이팝의 섹시함과 제이팝의 큐트함은 외형적인 표현은, 다르지만 동일하다.


▲카라의 일본진출 성공을 케이팝의 승리로만 묘사 가능할까. ⓒ뉴시스

케이팝: 제이팝의 대안인가, 시장으로의 흡수인가?

일본에서 소녀시대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한국 걸그룹으로 등극한 카라가 2011년에 올린 매출액이 732억 원이다. 이는 일본 전체 가수를 통틀어 네 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카라에 앞선 일본 뮤지션은 AKB48, 아라시, Exile이 유일하다. 카라의 뒤를 이어 소녀시대가 601억 원으로 다섯 번째 고수익 뮤지션이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일본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이 곧 케이팝 제작사의 매출액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밀히 말해 일본에서의 매출액은 제이팝 시장의 매출액이지, 케이팝 시장의 매출액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케이팝 제작사들은 계약에 따라 전체 매출액에서 일정한 비율만 가져갈 수 있다.

이른바 '코리아 인베이전'이라고도 불리는 케이팝의 일본 시장 진출이 따지고 보면, 제이팝의 시장 확대에 기여한다는 얘기다. 제이팝 시장이 왜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수용할까? 일본의 개방적인 문화태도 때문인가? 식민지 시대 정치적, 역사적 고통을 준 것에 대한 문화적 속죄의 뜻인가? 아니면 일본 국민들이 너무도 케이팝에 열광해서일까? 제이팝의 시장 논리로만 보면, 케이팝의 일본 진출은 전적으로 일본의 팝시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케이팝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체 매출액 중 제이팝 시장으로 포함되는 비율은 어림잡아도 75% 이상이다. SM과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AVEX는 자신들의 콘텐츠가 아닌 한국 아이돌 그룹의 콘텐츠를 유통해서 SM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 시장이 한류를 받아들이는 이유도 돈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케이팝의 일본 열풍은 문화자본의 논리로 보면 케이팝의 제이팝 시장 내 흡수라는 역설로 해석될 수 있다. 제이팝이 케이팝 안에서 상호작용적인 교류의 균형을 맞추지 않는 이상, 케이팝이 제이팝을 접수했다기보다, 제이팝이 케이팝을 흡수했다는 말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본 음악 시장에 진출하려는 케이팝은 자칫 제이팝의 시장을 채워주는 식민화된 원산지 팝으로 굳어질 소지가 있다. 케이팝은 제이팝의 대안이 아니라 그것의 구성 요소로 기능하는 제이팝의 숙주로 전락할 수 있다. 시장성이 없다면 일본의 음악산업은 곧바로 케이팝을 삭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도 케이팝 안에서의 자생성과 독립성 다양성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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