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의 모태인 부일장학회가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해 헌납됐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그러나 시효가 지난 탓에 반환 청구는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이날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故) 김지태 씨 유가족들이 정수장학회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강제 헌납된 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부산일보 주식을 돌려달라"며 낸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주식을 기부하기에 앞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 권총을 차고와 겁을 주고, 관세법 위반 등으로 군검찰이 구속기소했다가 기부승낙서에 날인한 뒤 공소를 취소한 사실 등을 들어 "김 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ㆍ16장학회에 주식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강박의 정도가 김 씨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할 만큼 증여 행위를 아예 무효로 할 정도로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강박에 따른 의사표시에 대한 취소권은 그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행사해야 하는데, 증여가 이뤄진 1962년 6월20일로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제척기간이 지나 취소권이 소멸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국가도 과거 군사정부가 자행한 강압적 위법행위에 대해 김 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김 씨가 구속됐다가 석방된 1962년 6월22일로부터 10년이 지났기에 역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부산지역 기업인으로 2,3대 민의원을 지낸 고(故) 김지태 씨는 1962년 부정축재처리법 위반 등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부산일보,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주식과 토지 10만평을 국가에 기부하기로 했고, 이 재산을 기반으로 5ㆍ16장학회가 설립됐다. 5ㆍ16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 자씩 따 정수장학회로 바뀌었으며 현재 문화방송 주식 30%와 부산일보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
고(故) 김지태 씨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부정축재자로 몰렸다며 "각서는 중앙정보부 지하 조사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강제로 포기각서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승인에 따라 토지와 언론사 주식을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했다"며 국가가 토지와 주식을 반환하거나 손해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과거사위의 권고에 따라 고인의 장남 영구(74) 씨 등은 2010년 6월 "정수장학회는 강제헌납받은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곤란하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냈다.
선고 직후, 유족 측은 "사법부가 옛 대법원 판결에 얽매어 기각했다"며 "사법부의 기각은 실망이지만 좌절하지 않겠다"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 측은 "선친께서 50여 년 전에 당시 돈 1억6천만원을 지급해 만든 부일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한 재산이다. 다만 학생들이 누구의 돈을 받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며 "선친의 명예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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