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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대한 근원적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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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대한 근원적 대책

[이정전 칼럼] "학교폭력 대책, 국민 스트레스만 키운다"

동물사회에도 엄연히 위계질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위계질서를 둘러싼 다툼도 있고 괴롭힘도 있다. 서열 높은 녀석이 서열 낮은 녀석을 괴롭히는 장면을 동물원이나 텔레비전에서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지위가 높은 녀석한테 얻어맞은 아래 것들은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 이 녀석들은 자기보다 지위가 더 낮은 녀석에게 화풀이함으로써 그 스트레스를 푼다. 과학자들은 폭력이 스트레스를 푸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임을 혈액 및 호르몬검사를 통해서 밝혀냈다. 근래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학교폭력을 보면, 왠지 이런 과학자들의 연구를 연상하게 된다.

학교에 왜 폭력이 만연할까? 우리 학생들이 각종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다는 것, 그리고 치열한 입시경쟁이 그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나 그 경쟁은 창조적이지도, 건설적지이도 못하다. 입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우리 학교의 입시경쟁은 경쟁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지식을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지를 놓고 벌어지는 치사하고 소모적인 경쟁이다. 학생들에게는 그런 경쟁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 마땅한 방법도 없다. 현재 우리 학생들이 처한 교육여건을 보면, 스트레스 풀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자들은 게임중독이 학교 폭력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게임의 내용이 대부분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여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자연히 게임하는 학생들의 성향도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열린 게임 심포지엄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나왔다. 게임몰입이 학교폭력의 원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에 연루된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게임 과몰입을 방치할 수는 없다. 사실,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업계의 자율에 맡겼다가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다음에야 비로소 과학적 근거가 밝혀지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환경오염피해가 그 대표적인 예다. 게임이 인지능력을 높이고 대인관계의 기술을 가르친다는 주장도 있지만, 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이 배울 대인관계 기술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기술일 뿐, 온정적 인간관계나 공익정신 등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반론도 있다. 게임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왠지 게임업계의 이익을 은연중에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게임 과몰입이 과연 학교폭력의 직접적 원인인지 아닌지를 놓고 입씨름하기에 앞서 우리 어린 학생들이 왜 게임에 과몰입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폭력과 함께 게임 역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아직 판단력과 자제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게임에 과몰입하기 쉽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나쁜 법이다. 학부모들이 진정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게임 과몰입이 어린 학생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미칠 악영향이다. 게임심포지엄에서 나온 학자들의 주장은 게임업계를 즐겁게 할망정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결국, 학교폭력에 대한 근원적 대책은 학생들의 과중한 스트레스를 줄여줌과 동시에 그 스트레스를 건전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학생들로 하여금 예술 활동과 운동을 좀 더 마음껏 즐길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예술 활동과 운동이 정서적 능력(EQ)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 어울리면서 신나게 놀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찮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시간이라도 더 뛰어놀게 하자.

그런데, 학교폭력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떤가? 이제까지 발표된 대책의 골자는, 학교폭력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들을 엄벌에 처하며, 학교폭력에 대하여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 교사, 학부모들은 입시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해서 이제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말하자면,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는 꼴이다.

비단,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문제에 대한 보수성향 정부의 대책이 대체로 이런 식이다. 고학력 청년실업자들은 못나고 게으른 녀석들이기 때문에 따끔한 교훈을 주어 정신 차리게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하고 나태한 사람들이니 가난의 쓴 맛을 보게 해야 하고, 경쟁력 없는 동네 구멍가게에게는 마땅히 퇴출의 철퇴를 가해야 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인데, 흑백논리에 입각한 정부의 이런 식의 대응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안긴다. 선거철을 앞두고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얘기가 정치권에서 무성한데, 스트레스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그런 방법으로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를 일구어낼 수 있을까?

물론, 폭력학생에 대한 엄격한 제재는 필요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공동책임을 강화할 필요성도 인정한다. 허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방법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욱이나, 지나친 스트레스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침으로써 우리의 행복을 좀 먹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출세하고 소득수준이 높아진들, 이 과정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로 우리가 불행해진다면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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