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창업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작년 5월이후 벤처기업의 수가 850개 가까이 줄었다. 정보기술(IT) 버블 사태가 벌어졌던 2002∼200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또 핵심 기술을 보유한 석ㆍ박사 출신 고급인력들의 고품질 벤처창업이 줄어 벤처창업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는 국내외 경제불안으로 창업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적인 도전정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우리사회에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31일 한국거래소와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현재 벤처기업의 수는 2만6148개로 사상 최대였다.
하지만 벤처창업 열기는 급속히 식고 있다.
작년 5월 283개가 줄어든 것을 시작으로 6월 400개, 9월 126개, 12월 228개 등 5월이후 848개가 순감했다. 작년 1∼4월까지만 해도 2351개나 늘어났던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이다.
작년 전체적으로도 벤처기업은 6.10% 증가에 그쳐 2004년(3.44%) 이후 최저수준을 나타냈다. 벤처기업의 증가율은 2005년 22.15%, 2006년 25.54%, 2007년 14.71%, 2008년 9.89%, 2009년 22.67%, 2010년 30.35% 등이었다. 리먼사태가 발생했던 2007년과 2008년을 제외하면 20% 이상을 줄곧 유지했다.
석ㆍ박사 출신들의 벤처창업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벤처기업협회가 작년 5∼7월 2개월간 2천여개 표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박사가 대표이사인 기업의 비중은 9.4%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2009년만 해도 13.0%에 달했다. 2010년에도 10.1%로 10%를 웃돌았다.
석사출신 대표이사 비중도 2009년 18.7%에서 2010년 18.5%, 2011년 18.2%로 점점 떨어졌다.
이는 벤처기업의 기술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2천여개 표본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력 제품에 국내 유일의 기술을 적용한 벤처기업의 비중이 2009년에는 17.9%였으나 지난해에는 12.7%로 급감했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의 비중도 같은 기간 6.7%에서 4.2%로 떨어졌다.
국내 금융 여건상 기술만으로 대출받기가 어렵고 중견 벤처기업 지원 제도가 없다는 것도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벤처기업의 '꿈'인 코스닥 상장도 부진하다.
2만6천여개 벤처기업중 코스닥 상장사는 현재 303개로 0.12%에 지나지 않는다. 신규상장도 2007년 52개에서 2011년에는 31개로 줄었다.
KAIST 배종태 테크노경영대학원교수는 "벤처기업의 절대적 수보다 벤처기업 창업의 질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면서 "이공계 석ㆍ박사 창업이 감소세를 보이는 등 고품질 벤처창업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실패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기존 사업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위험부담을 줄여주고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영구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장은 "사회분위기가 벤처창업을 위축시킨다"면서 "사회적으로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취업을 선호하니 창업이 위축된다. 벤처가 활성화되려면 기업가 정신의 붐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팀장은 또 "벤처기업의 핵심 인력들이 대기업으로 가다 보니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대기업이 상생차원에서 인력 빼가기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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