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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의 땀방울이 불편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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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라의 땀방울이 불편했던 이유

[기자의 눈] 아이돌, 병든 한국사회의 창

지난해 유난히 아쉬움이 남는 기삿거리가 있었다. 아이돌 열풍에 맞춰 기획사 오디션을 준비하는 젊은 친구들을 취재했다. 안타깝게도 현재 기획사에 소속돼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을 취재하지 못했다. 기획사 소속 연습생 인터뷰 없이는 '기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받은 충격은 강하게 남아 있다. 섬에서 올라온 스물세살 처녀는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디션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다. 인생을 가수 데뷔에 건 셈이다. 연습생 중에도 대형 무대에 데뷔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손에 꼽을 정도의 가수들이 일년에 내는 음반만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바늘구멍을 뚫는데 인생을 걸었다.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응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해맑은 그의 표정에서 공포를 느꼈다.

잊고 있던 기억은 얼마 전 화제가 된 연예뉴스를 통해 되살아났다. 인기그룹 티아라 멤버들은 하루에 많이 자 봤자 두 시간을 채우기 힘들다고 얘기했다. 해맑게 웃으며. 우리는 이런 사례를 많이 안다. 잊을 만하면 뜨는 연예뉴스는 '인기 아이돌 OOO가 탈진으로(혹은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진다'는 내용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람의 삶인가. 산업혁명 초기 십대 노예노동을 연상케 한다. 하다못해 그 힘들다는 경찰출입기자도 티아라처럼 "못 잘 때는 30분을 자"는 수준은 아니다. 인권착취고, 노동법 위반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며, 그 물렁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마련한 표준전속계약서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태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다. 아버지 세대마저 보편적 인권을 빼앗기는 자녀뻘 스타에 열광한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이돌에 관한 두 번째 충격이다.

십대들은 그러나, 이런 사실을 훤히 알고도 아이돌 스타를 꿈꾼다. <케이팝스타>가 화제가 되는 이유고, <슈퍼스타케이>가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존재하는 근거다. 미국에서 십대를 대상으로 한 기획형 음악이 성공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기획형 아이돌 스타가 생산되는 곳은 사실상 한국과 일본이 유이하며, 이 중에서 세계 팝 무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래, 성공한다. 꿈꾸는 십대의 극히 일부는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꿈에 매몰된다. 성공하면? 잠을 못 자고,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연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기획사의 요구에 따라 춤 연습을 하고, 후배 연습생의 데뷔가 다가오면 연기자 수업을 받아야 하고, 유효성이 다하면 소리 없이 잊혀진다.

▲아이돌 그룹은 청소년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아이들의 영웅은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기획사로부터 노동을 착취당한다. 걸그룹 티아라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덱스에서 열린 '2011 SBS 가요대전'에 참석,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아이들의 모습은 IMF 체제 이후 신음하는 어른들의 삶을 고스란히 빼닮았다. 1997년 말 한국에 상륙한 신자유주의 모델은 지난 십여 년 간 한국의 어른 상당수를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모든 직업의 비정규직화가 진행되고, 이 경쟁에서 도태된 자는 생존의 위기에 노출된다. 성공한 극소수는 거대한 부를 누리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를 감내해야 한다.

다행히 그 비정한 신자유주의 모델은 이제 종말을 맞고 있다. 부인하려야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들도 다보스 포럼에서 신자유주의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이 느리디느린 한국을 사는 어른의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 이후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마저 좌클릭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을 열광케하는 아이돌 산업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으로의 안착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아이돌 시스템을 살펴보자. '국내외 작곡가의 곡 생산-국내 하청 연습실의 춤 강습과 몸매 관리-국내 대형 기획사의 상품화' 라인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글로벌 생산 시스템이며 수직적 하도급 구조다. 미디어는 마치 재벌그룹 홍보기사를 쏟아내듯 아이돌 시스템을 집중 지원사격하고, 이러한 홍보를 타고 증권시장을 통해 거대화된 기획사로 돈이 몰리며,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돌 상품은 지구적인 유통망을 통해 팔려나간다.

성공한 극소수의 스타는 거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지만 그 성공은 수백수천대 일의 경쟁률에 질식당한 다른 이의 꿈 위에 세워져 있다. 개척초기 국내 시장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외시장부터 진출한 후, 대형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 성공을 누리는 것은 국내 재벌기업의 성공사를 닮았다. 완벽한 신자유주의 모델이 한국의 아이돌 팝 시스템에 구현돼 있음을 웅변한다.

우리 사회의 잔인한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나가떨어진 이 체제를 순수한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이 게임의 룰은 승자독식의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어른이 만들었고, 그 룰의 꼭두각시는 '아이돌 스타' 이외에는 꿈조차 꾸지 못할만큼 비참한 미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이용해 불공정계약을 맺고, 그렇게 만든 상품으로 아이들의 주머니를 턴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들이 만든 환상 동화의 세계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일방적인 착취-피착취 구도 아래에서 가장 성공한 아이마저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휴대폰을 압수당하고, 연애마저 통제당한 채 비참한 성인식을 맞이한다.

이건, 사상 최악의 공포물이다.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며, 아이돌 스타의 순수한 눈망울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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