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애플이 거둔 성공신화의 이면에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폭스콘의 위탁 제조가 없었다면 IT 기기의 혁신을 불렀다는 아이폰의 가격은 쉽게 지갑을 열수 없는 수준으로 책정됐을 것이다. 재고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공급망을 단순화한 애플의 경영 혁신도 위탁 제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지난 22일 또 다른 보도에서 애플이 디자인을 변경하자 폭스콘이 한밤중에 노동자 8000명을 깨워 단 며칠 만에 하루 1만 대의 새로운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든 사례를 소개했다. 가격과 공급망 혁신 뒤에는 중국의 낮은 노동 기준이 한 몫 했다는 것이다.
'애플의 값싼 아이폰에는 중국 노동자들의 희생이 포함되어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문제 제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애플 자신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의 주말판 <옵서버>는 29일(현지시간) 사설을 통해 시야를 보다 넓게 가지라고 주문했다. 애플 아이폰을 중심으로 논쟁이 커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계화가 불러온 노동자들의 비극을 상징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 애플 아이폰을 위탁 제조하는 대만기업 폭스콘의 중국 현지 공장. ⓒ로이터=뉴시스 |
신문은 세계 경제위기로 기존 자본주의 질서의 심각한 오류가 드러났음에도 권력을 쥔 이들이 시스템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불거진 점에 주목했다.
사설은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지 전까지 세계화에 대한 비판은 괴짜 비주류 이론으로 취급받았다"며 "서방의 지도자들이 자유무역의 혜택에 축배를 들 때, 반세계화 시위대는 시애틀에서 최루탄을 들이마시고 프라하에서 경찰봉에 두들겨 맞았다"고 설명했다.
사설은 또 1990년대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서방의 좌파 진영에서조차 고삐풀린 금융자본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대신 아시아의 후진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을 원인으로 삼았고, 2008년 서방에서 금융위기가 터진 후에도 규제 완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시스템을 이전으로 되돌리려고 시도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세계 경기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중 운동으로 인해 가로막혔다. 29일 막을 내린 세계경제포럼(WEF)이 경제적 불평등과 청년실업에 초점을 맞출 정도로 전 세계 지도자들도 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시점에서 노동 문제의 해결이 '시스템 개혁'의 한 측면이 될 수 있다고 사설은 제안했다.
사설은 "진실은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라는 약속을 지키는데 실패했다는 점에 있다"고 못박았다. 이어 "지난 20년 간 중국과 인도의 개방정책은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두 국가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부끄러운 수준"이라며 "동시에 주요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웃이 아닌 수천 마일 떨어진 국가의 노동자들과 경쟁하면서 실질임금이 감소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세계화 시스템이 소비자들의 지출을 위축시키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음으로써 오히려 경제 위기 극복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설은 "지난 20년간의 신용 거품은 미국과 유럽에서 실질임금이 감소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질을 떠받쳤다"면서도 "이 마술 트릭은 잠시 동안만 효과를 보였을 뿐 그 결과로 남겨진 빚더미를 청산하는 데에는 수년이 걸릴 것"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먼 곳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역경이 저렴한 상품의 실제 비용을 드러냈고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여건 개선을 지지하는 것은 전 세계 노동자에게 이로운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설은 "우리는 중국 노동자들 스스로가 그들의 곤경에 대해 불만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환영해야 한다"며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 조건은 런던이나 뉴욕에서 팔리는 아이팟 가격을 올릴 것이지만 중국의 경제 성장은 값싼 제품의 수출에 의존하는 대신 자국 내 소비 수요를 끌어올리고 중산층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설은 또 "중국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높아진 노동 기준은 서방에도 새로운 소비 시장을 제공할 것"이라며 "이제 맑스의 말을 귀담아 들어 전 세계 노동자들을 위해 일어설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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