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보니 김종인 박사의 여러 말들이 인용되더군요. "보수 용어 삭제 논쟁만 해도 저렇게 반발이 심한데, 재벌개혁 등 더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건드릴 수 있느냐." "자본의 지배에 한나라당이 어떤 형태로든 태클을 걸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나 자세를 보면 말만 있지 그와는 동떨어져 있다." 거기다가 스스로의 진퇴도 생각한다는 관측도 있더군요.
우선은 한나라당 정강·정책에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란 내용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그것은 헌법에 있는 것이니 너무나 당연하고 그 구체적인 전개가 진짜 문제인 것입니다.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뉴시스 |
언론에 자세히 보도된 일이고 하니 긴 이야기를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김 박사는, 비상대책위는, 본격 과제에 부닥친 것입니다.
뒤늦게 멋모르고 따르던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소득은 그 양극화가 나날이 심화하고, 고용 사정은 악화일로이며, 재벌들이 동네 빵집까지 저인망으로 싹쓸이하듯 잡아먹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될 정도입니다. "대기업에 치이고, 재벌가 딸들에 받히고 … 동네 빵집이 11년새 70% 사라졌다." 그러기에 그 보수적인 <조선일보>의 논객마저 "폭발 직전의 화를 누르고 있는 인구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 드디어 초대형 폭발의 화산재가 활화산 꼭대기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고 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 박사는 "자유주의자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서까지 자본주의의 잘못이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지만, 다보스 이야기는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고 있는 셈입니다. 재산 16조 원을 갖고 있다는 조지 소로스까지 "미국 등 선진국에서 폭동이 날 가능성이 크다"며 "자본주의 위기를 못 넘으면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고 하였더군요. 참 소로스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카를 포퍼 밑에서 배우고 그를 따르는, 생각이 깊은 기업인이라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구독자가 많은 미국의 잡지 <타임>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동시에 자본주의가 당면한 어려운 고비를 특집으로 다룬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타임>의 "어떻게 자본주의를 구제할 것인가"란 6면에 걸친 기사와 <이코노미스트>의 "국가자본주의"란 15면에 걸친 특집을 읽어 보았지만, 한문에 '격화소양(隔靴搔癢)'이란 성구가 있듯이 신발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는 것과 같이 마음이 차지 않더군요. 다만 데이비드 로스코프의 "(기업들은) 법률의 제정에도 영향을 미쳐 힘의 균형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하고 있다"는, 기업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관심이 가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미국 사법부의 판결도 예로 들었습니다. 그 점은 김 박사가 오래 전부터 우려한 바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자본주의가 있어야 할 바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자본주의냐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일입니다. <타임>의 한 필자는 자본주의의 유형으로 '중국적 특성의 자본주의', '유럽 자본주의(사회민주주의 형태를 말하는 듯합니다)', '민주발전론적 자본주의(인도·브라질)', '소국가 기업형 자본주의(싱가포르·UAE·이스라엘)'를 들고 있습니다. 미국 등의 유형도 대전제로 하고 있는 듯 '시장에 맡겨라 자본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참, 공부가 부족한 나는 아담 스미스가 영국의 동인도회사란 대회사의 힘의 남용을 규탄하였다는 이야기를 로스코프의 글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대기업도, 재벌도 규탄받을 일은 규탄받아야 마땅하겠지요.
다시 문제는 김 박사도 걱정하고 있는 대기업, 재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경제의 민주화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는 김 박사가 헌법 제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자이기도 하여 전공이 아닙니까. 나도 그때 당과 국회의 헌법개정위원으로 동석하여 목격한 바입니다. 언론에서는 처음부터 김 박사를 재벌개혁론자라고 하며 기대를 걸어왔습니다. 기대만이 아니고 일부에서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나라당은 재벌 돈 차떼기의 역사도 있고 하여 친재벌당으로 많은 국민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재벌 그 자체가 들어가 있고, 비대위 측이 그 재벌 측과도 협상할 것을 촉구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또한, 친재벌 의원들이 많은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김 박사를 처음부터 경계한 사람들이 그쪽에 많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 이제 김 박사가 기다리던 격전장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곳이 어떻게 보면 우리 정치의 최전선입니다. 박근혜 씨의 중요한 테스트 케이스(試金石)의 하나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중요한 때이니까 친구로서, 어줍잖은 지식과 경험이지만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지요. 김 박사와 생각도 많이 같고, 또 막역한 사이인, 그리고 네오 케인지언의 대표적 학자로서 정평이 나 있는 정운찬 전 총리와 같은 인물들과 협력하십시오. 정운찬 씨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중소기업을 위한 일을 하며 이익공유제도 문제로 재벌들에게 많이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아니겠습니까.
▲카페 '아티제'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 26일 여론을 감안해 사업 철수를 결정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재벌가 총수 자녀들이 빵, 순대 등 일반 서민 자영업 상권에까지 침투하자, 축적됐던 재벌에 대한 불만도 강하게 터져나왔다. ⓒ뉴시스 |
범국민적 차원으로 논의를 발전시켜, 국민을 각성시키고 그 각성한 힘을 에너지로 하여 다시 비대위 등 정당 쪽을 압박하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 것이 정치운동의 방법 아닌가요. 이제까지 안 해보던 방법을 한번 시도해보자는 것입니다.
참, 김 박사도 잘 아는 유종일 교수가 최근에 <경제 119>라는 팸플릿을 냈더군요. 경제민주화를 위해 택해야 할 정책들을 열거하고 간단히 설명한 것인데, 김 박사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일반 국민의 계몽을 위해서는 시의적절하게 나온 책이라 생각합니다. 유 교수 말고도 경제민주화를 염원하고 이론을 전개하는 학자, 전문가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정운찬 씨를 필두로 하여 그런 분들을 대거 동원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민주화선언' 운동까지 초당적·범국민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좋겠습니다. 대대적인 선전전입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 측에서도 경제민주화특별위까지 만들어 열을 내고 있지요. 참, 유종일 교수가 그 위원장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여기서 그 운동이 어느 당의 것이냐, 어느 당의 이익이 되느냐를 계산하면 속이 한참 좁은 것입니다. 당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의 소망이고, 시대적인 과제입니다. 재벌의 힘이 너무 막강하고, 사회 각계각층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 사실 경제민주화 작업은 어느 한 당만의 노력으로 될 일도 아닙니다. 좌절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일만은 모두 합심하여 전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적 과제에 당의 꼬리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협량한 것입니다. 시대의 소명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당의 것이든 무슨 상관입니까. 시대의 과제인데 말입니다. 차라리 어떤 당이 더 좋은 성과를 내나 서로 경쟁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당이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인가로 판가름을 냅시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로 사실상의 협조를 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국민을 계몽·교육·조직하게 될 것이고, 시대를 한 단계 앞당길 것이고, 조용한 혁명, 즉 소로스가 걱정하는 '폭동'이 없는 조용한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김 박사에의 조언은 이런 것입니다. 뚱딴지 같은가요? 안 그럴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정치입니다. 새로운 시대입니다. 그것이 국민의 소망이며 시대의 요청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이란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는, 그런 범국민적인 에너지의 동원이 필요합니다.
SNS가 널리 퍼지고 수준이 높아지는 시대입니다. 경제민주화 등을 통해 우리가 살기 좋은 자본주의의 기틀을 추구하는 국민적 노력은 멈추지 않고 점차 드세어질 것입니다. 기분 나쁘다고, 속상한다고, 비대위를 뛰쳐나오지 말고, 인내에 또 인내를 하며 무언가를 꼭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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