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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는 왜 실패했나?

[이태경의 고공비행] 종부세의 좌절에서 배워야 할 것들

복지가 시대정신이 되다 보니 당연히 이를 뒷받침할 증세에 대한 논의가 무성할 수 밖에 없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에 따라 필요한 재정 규모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증세의 대상과 세율, 누진율 등에 대해서도 생각이 상이할 수 밖에 없다. 주목할 대목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그룹 등을 필두로 한 진보, 개혁 진영의 재정 분야 전문가들이 대체로 소득세 위주의 증세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소득세 위주의 증세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유를 거칠게 말하면 법인세는 전 세계적으로 인하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만 끌어올리기 어렵고, 자산에 대한 과세는 OECD평균에 가깝기 때문에 자산세를 대폭 인상하기 곤란한데 비해, 소득세는 OECD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므로 소득세 위주의 증세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와 논거는 매끄럽고 무난해 보인다. 다만 자산에 대한 대대적인 증세에 소극적인 진보, 개혁 진영 재정 전문가들의 태도가 반드시 대한민국의 자산세 규모가 OECD평균에 수렴되기 때문인지는 미심쩍다. 혹시 참여정부 당시 도입됐다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으며, 이제는 형체만 남은 종부세(봉합부동산세)의 실패경험이 토지를 비롯한 자산 더 정확히 말하면 자산의 소유 및 처분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강하게 과세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데 심리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종부세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들은?

기실 진보. 개혁 진영의 정치가나 학자들이 종부세에 대해 지닌 상처는 심대한 것 같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종부세의 설계 및 집행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정부 밖에서 종부세를 견결히 지지했던 사람들의 내상은 매우 커서 '트라우마' 수준이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느껴진다. 이들은 간난신고 끝에 만들어진 종부세가 조중동에 의해 세금폭탄으로 낙인찍힌 후 결국 한나라당과 헌법재판소의 손에 침몰당하는 과정을 참담한 심경으로 지켜봤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조세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로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이들이 했을 법도 하다. 심지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종부세가 노무현 정부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지경이다.

확실히 세금, 그것도 한국사회 주류의 물적 토대가 되는 부동산(토지)에 대한 보유과세는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종부세의 실패(?)를 보유세의 좌절과 등치시키고, 한국사회에서 보유세제 위주의 조세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건 성급하다는 판단이다. 다른 모든 정책들이 그러하겠지만, 종부세의 성패에 대한 평가 역시 종부세가 놓였던 정치.사회.경제적 맥락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고, 종부세 자체의 정책적 장단점들을 감안해 내려지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종부세가 도입되고 집행되던 기간 종부세를 둘러싼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은 종부세에 매우 적대적이고 불리했다. 종부세를 도입한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었고, 참여정부가 입안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옥석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전면적이었으며, 종부세를 졸지에 '세금폭탄'으로 만든 조중동의 막강한 의제설정능력은 종부세의 정책효과를 가볍게 제압할 정도였고, 낙수효과에 쇄뇌된 일부 서민들은 부동산 부자들이 낼 종부세를 근심하며 종부세에 반감을 가졌다. 당정청 사이의 통일성이나 일사불란함은 찾아볼 길이 없었고, 지지자들은 사분오열 끝에 대부분 이탈했으며, 참여정부는 섬처럼 고립됐다.

또한 전세계적 과잉유동성에 더해 국민의 정부가 펼친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말미암아 국내 부동산 시장은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상황이었다. 본디 투기라는 것이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기승을 부리는 것이어서 투기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에는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 아래서는 종부세가 가진 정책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

종부세가 내장한 정책적 난점들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종부세는 본격적인 도입이 늦어 실기한 측면이 있다. 정책이라는 것이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몹시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퍽 아쉬운 대목이다. 아울러 종부세는 보유세의 이상을 충분히 구현한 세금은 아니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종부세는 토지가 아닌 건물에도 과세했으며, 비례세가 아닌 누진세 구조였다. 토지만을 대상으로 할 경우 과세기준과 대상이 현저히 낮아지고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 보유세에 대한 광범위한 조세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종부세에서 배우자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여건이 극히 나빴고, 정책적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종부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줄곧 60%를 웃돌았다. 물론 부유세 성격의 종부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국민들이 보유세를 강력히 지지하며 토지보유세 위주의 세제개편을 적극 찬성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종부세가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 참여정부가 종부세 때문에 몰락했다고 평가하는 것, 종부세의 경착륙이 보유세의 파산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고 균형감각을 잃은 분석이라고 여겨진다. 사정이 이렇다면 종부세 더 나아가 보유세 트라우마도 근거와 정체가 모호한 것일지 모른다.

진보,개혁 진영은 종부세가 걸어온 궤적을 복기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 교훈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지층을 결속시키고 무당파들의 지지까지 끌어내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효과가 반감된다는 것, 집권 전에 올바른 철학과 가치에 기반한 국가발전모델을 수립하고 이를 가능케 할 정책패키지를 설계하며 개혁의 청사진과 로드맵을 마련해 집권 후 지체 없이 이를 집행해야 한다는 것, 유능한 진보.개혁 성향의 엘리트들로 당정청을 채우고 일사불란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수구진영의 지배담론-예컨대 성장제일주의, 적하효과 같은-을 제압할 대안담론의 생산 및 유통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종부세는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거둔 빛나는 성취 가운데 하나다. 종부세는 대표적인 불로소득인 토지 불로소득에 과세함으로써 추상적 정의를 정책적 차원에서 시현한 드문 예다. 그런 종부세가 지금은 누더기 신세가 됐다. 종부세의 좌절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진보, 개혁 진영이 집권 후 내놓는 정책들도 종부세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 2008년 11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에 관한 선고를 위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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