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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의 부활? <철의 여인>이 외면한 신자유주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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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의 부활? <철의 여인>이 외면한 신자유주의의 비극

[해외시각] '페미니스트' 대처? 역사적 사실 왜곡

마가렛 대처가 돌아왔다. 그의 전기 영화 <철의 여인>(Iron Lady)이 지난 6일 영국에서 개봉하면서 극장가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대처 역을 맡은 배우 메릴 스트립이 골든글로브를 비롯해 각종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도 영화의 인기에 힘을 더했다.

한국에서도 2월 개봉 예정인 <철의 여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했던 여인'이라는 소개글에서도 보이듯 그의 정치 인생과 그 이면의 인간적인 고뇌를 다루고 있다. 대처에 대한 이런 접근은 2000년 개봉했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광산 파업을 배경으로 대처리즘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성공 이후 현재까지도 공연되는 같은 이름의 뮤지컬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이 음악을 맡았다. 그가 작곡한 <메리 크리스마스 메기 대처>에는 "우리는 모두 오늘을 축하해. 당신(대처)이 죽을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으니"라는 후렴구가 있다.

대처 집권 시절 무자비하게 추진됐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파업 광부들에 대한 양보 없는 태도, 공공지출의 대폭 삭감 등은 시장과 부유층의 지지를 받았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계급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됐음을 보여주는 노랫말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뮤지컬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관객들이 이제 영화 <철의 여인>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 역시 그에 대한 애정과 분노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재작년 정권을 탈환한 영국의 보수당 정부가 세계 경제 위기를 명분으로 복지 감축과 긴축 재정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다시 타오르고 있는 최근의 상황이 '철의 여인'이 집권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전 <BBC> 기사이자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쇼반 커트니는 17일(현지시간)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홈페이지에 실린 칼럼에서 자신이 <철의 여인>을 보면서 들었던 소감을 소개했다.

그는 영화 자체를 보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대처의 정치적 인생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배제한 채 대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편집됐다고 비판했다. 또 대처를 페미니스트의 영웅처럼 묘사한 장면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영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처리즘'(Thatcherism)이 궁금해 영화관을 찾는 이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줄 영화라는 것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원문 보기)

마가렛 대처가 돌아왔다

영국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삶을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이 개봉하면서 대처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려 인파가 붐비는 극장에서 겨우 마지막 남은 티켓을 건졌다. 대처를 좋아하건 혐오하건, 이 영화가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고 비난하는 이들은 없다.

▲ <철의 여인>(Iron Lady) 포스터
확실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한 메릴 스트립은 과거의 삶과 경력을 되돌아보는 86살의 치매 노인 대처를 연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현 영국 총리는 "시기를 달리 해 만들었다면 좋았을 영화"라며 개봉 시점을 지적했다. 그의 주장은 어느 정도 공정하다. 난 104분 분량의 이 영화가 실제 치매를 앓고 있는 대처를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점에 감탄했다. 그래서 대처 일가가 이 영화의 시사회 초청을 거절했을까? 당연히 대처의 가족이나 친척들에겐 불편한 장면일 것이다.

감상은 잠시 미뤄놓고, 극장을 걸어 나오면서 <철의 여인>이 정치적으로는 진정한 기회를 놓쳤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철의 여인>은 대처리즘이 지배하던 시절 영국을 다룬 영화가 아니었다. 끔직한 질병과 싸우는 여인이 소름끼칠 만큼 남성 중심적인 영국 정치계에서 국가를 다스리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렸던 과거를 회고하는 영화다. 이 점이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대처를 페미니스트 영웅으로 만들었을까? 결코 아니다. 글 말미에 이 점을 다시 얘기할 것이다.

영화는 정치적 위험을 회피했다

제작자들은 안전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정치가로서의 대처를 포클랜드 제도 침공 결정과 광산 파업, 1984년 아일랜드공화군국(IRA)이 저지른 브라이튼호텔 폭탄테러 당시 먼지를 뒤집어썼던 그와 남편 데니스 대처의 모습에만 집중한 것이다. <철의 여인>은 대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원맨쇼' 영화다.

그녀를 인간적으로 묘사하려는 영화의 의도가 명백한 가운데, 관객들은 대처가 자신의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 견해에 따라 내리는 '옳은 결정'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따라간다. 대처가 결단력 있는 인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옳은 결정'은 사실 전혀 옳지 않았다. 대처를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신념과 가치와 견해만을 따름으로써, 그가 의미하는 모든 점을 경멸하는 수백만 명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점은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대처가 내각을 괴롭히고 깎아내리는 장면, 결국 그를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한 결정을 번복하기를 거부하는 장면, 그가 도입한 인두세(poll tax)가 불러온 처참한 결과를 다룬 장면에서 언뜻 스쳐갈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인두세가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좁은 집에서 가족을 보살피는 가난한 주부가 자신의 광활한 영토를 누비는 백만장자와 같은 세금을 지불하는 것을 누가 정당화할까? 차라리 국가와 관계를 끊는 게 낫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만약 당신이 대처리즘이 궁금해 영화를 보고 싶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가 금융시장의 규제를 완화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 영화에 나오나? 브리티시 텔레콤을 포함한 20개의 국영기업을 민영화해 부자들에게 지분을 팔아 단기간에 돈을 벌게 해 준 것은? 언급이 없다. 필자가 눈을 깜박이다가 장면을 놓친 게 아니라면, 그런 건 영화에 없었다.

대처가 1970년대 교육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7세 이상 아동에 대한 우유 무료급식을 중단해 '우유 날치기범 대처'(Thatcher Thatcher, Milk Snatcher)라고 불렸던 것도 영화에선 찾아 볼 수 없다. 놀랍게도 '그의 가장 격렬한 국유화 정책 중 하나'로 불리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고지원 삭감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학들이 정부 지원 감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모교 출신 총리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왔던 옥스퍼드 대학이 대처에 대한 학위 수여를 거절하면서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명예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최초의 옥스퍼드 출신 총리가 됐다는 점도 언급되지 않는다.

대처에게 적대적이었던 노조에 대한 대처 본인의 경멸감은 영화에서 가볍게 다뤄진다. 사람들이 대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검정색 핸드백을 차로 잔뜩 싣고 와 거리 위에 높게 쌓인 쓰레기 더미 속으로 던질 때 대처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코에 뻣뻣하게 다려진 손수건을 갖다 대는 장면에서다.

'영국병'(British disease, 1970년대 경제침체를 겪던 영국에서 과도한 복지제도와 막강한 노조를 비난할 때 사용된 용어)을 걷어내겠다는 철의 여인의 투쟁이 시작됨을 상징하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통찰력과 세부적인 묘사는 철저히 실종됐다. 실제로는 대처는 그 싸움에 사납게 덤벼들었고 승리를 거뒀다.

1984년부터 1985년 사이 진행된 광산 파업으로 이동한 영화는 이 파업을 2차대전 후 가장 중요한 산업 갈등으로 묘사한다. 대처는 10년 동안 광부들과의 전쟁을 이어갔고, 석탄 산업의 문을 닫는데 성공한다. 영국의 산업을 구조적으로 파괴하고, 영국 전체에 걸쳐 수백만 명의 노동자 계급의 삶을 부수고 무너뜨린데 대해 오늘날까지 분노를 품고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그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대처의 통치 기간 동안 실업자가 360만 명에 육박했고, 금리가 17%까지 뛰었으며, 공공주택을 매매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수천 명이 집을 잃었다는 사실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공공주택을 매매할 수 있게 한 결정은 옳았나? 그 정책은 공동체를 분열시켰고 공공주택의 총량을 감소시켰다.

지방의회에 지원되던 국고 보조금을 삭감하고 공공서비스를 위한 재정을 감축한 점도 언급되지 않는다. 내각도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기 시작했지만 철의 여인은 녹이 슬지 않았다. 그는 1980년 영국 보수당의 회의에서 가진 연설에서 진정한 철의 여인의 스타일로 응대했다. "이 숙녀는 돌아가지 않는다."(The lady's not for turning)

▲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영화 <철의 여인>에서 그를 연기한 배우 메릴 스트립. ⓒ로이터=뉴시스

페미니스트로 묘사된 대처

대처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필자의 정의를 내리자면, 여성에 대해 관심을 쏟고 사회 각 계층에 있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며, 다른 여성들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람이다. 대처는 이러한 정의 중 아무 데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가 마음먹은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분명 두드러졌지만, 그것은 그가 남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를 일종의 페미니스트 영웅으로 그려내려는 영화의 시도는 터무니없다.

대처는 기회의 평등을 상징하는 인물의 사례로 그려져서는 안 된다. 다른 여성을 대신해 성차별, 계급 차원의 고정관념과 싸워온 인물의 예로도 묘사되어는 안 된다. 대처는 "나는 여성 해방에 신세진 게 없다"(I owe nothing to Women's Lib)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았고, 권력을 사랑했으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권력을 가진 남성에 추파를 던졌다. 그는 여성들이 아닌, 남성들을 사랑했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의 속을 정말 뒤집은 장면은 그가 하원 의회에 갈 준비를 할 때였다. 그의 아이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리고, 차의 창문 너머로 쉴 새 없이 떠들고,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 대처는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로 차의 기어를 넣고 흐느끼는 아이들을 남겨둔 채 출발했다. 실제 철의 여인은 조수석에 있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차 사물함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거울을 보며 립스틱이 잘 발라져있는지 확인한다.

대처의 전기를 쓴 찰스 무어는 "여성에 대해 말하자면, 대처는 여성에 관심이 정말 적었다"고 말했다. 무어는 심지어 "전반적으로 대처와 잘 지내는 여성은 비서나 의상 담당, 개인 조수와 같이 그에게 필요한 보조 인력들이었다"라고 인정했다. 대처는 그런 폭로가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 인용문을 봤을 때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대처는 자신이 뜻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남성'을 세심히 지켜봤다. 그리고 '큰 남성이 웅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때, 난 그의 길을 가로막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여성'을 세심히 지켜보는 건 어떤가? 내각 안에서 당신을 지지하는 '다른 여성'들이 있었나? 아무도 없었다. 만약 그가 애써 다른 여성을 지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이었다면, '웅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큰 여성'의 길을 결코 가로막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영화는 대처가 사생활에서 여성보다 남성에 더 충성심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게 모르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대처와 그의 모친과의 관계는 부친에 비해 냉랭하고 동떨어진 것으로 그려진다. 대처는 실제 알려지기로도 자신의 부친을 영웅으로 우상화했다. 대처는 딸 캐롤이 모친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려고 했을 때 쌀쌀맞게 대했다. 하지만 아들 마크에게는 집에 들르라고 요청했고, 그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못 갈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대처는 실망하지 않은 척 했다.

대처의 가장 페미니스트답지 않은 어록 중 하나는 "사회 같은 건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라는 말이다. 영국에서 사회가 없이는 우리에게 공동체 의식도, 도덕도, 가치도 없다. "자신이 나무가 자랄 때까지 살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노인들이 나무를 심을 때 사회는 발전한다"라는 그리스 속담처럼, 사회 없이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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