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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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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카드

[한윤수의 '오랑캐꽃']<352>

축구 감독은 교체카드를 3장까지 쓸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3장을 다 쓰지 않고 마지막 카드 1장을 남겨둔다.
카드를 다 썼을 경우 골키퍼가 퇴장당하거나 다치면,
*골키퍼 없는 축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이지!

외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직장 이동 기회를 3번까지 쓸 수 있지만,
보통은 마지막 카드 1장을 남겨둔다.
카드를 다 쓰면, 마지막 직장이 무지하게 나빠도 *옮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인 동(가명)은 직장 이동 기회 3번을 다 썼다.
하지만 마지막 직장이 너무 힘들다.
재활용업체인데 먼지가 많이 나고 재료들이 굉장히 무거워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가 와서 물었다.
"저 한 번 더 옮길 수 있나요?"
"*경영상 해고로 나온 적이 있다면 가능하지."
"두 번째 직장 나올 때 회사 형편이 나빠져서 나왔거든요."
"그럼 어디 한번 확인해 보자구."

고용지원센터 외국인력팀에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두 번째 직장이요? '경영상 해고'가 아닌데요."
"그럼 뭘로 되어 있어요?"
"자진 퇴사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요. 근로자가 쓴 사직서도 있고요."
무슨 뜻인지 알겠다.
사장님이 '경영상 해고'로 처리하지 않고 '근로자의 자진 퇴사'로 처리한 것이다.
쓸 수 있는 외국인 정원을 죽이지 않으려고.

나는 동에게 말했다.
"더 이상 못 바꿔."
"왜요?"
"니가 사표 써서 안 돼."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화제를 바꿨다. 동남아 사람들도 축구는 좋아하니까.
"축구 좋아해?"
"예."
"축구 감독이 선수 3명 바꾸면 더 이상 못 바꿔. 알지?"
"알아요."
"너도 축구 감독하고 똑같아. 교체카드 3장 있는데 니가 다 쓴 거야."
"어? 한 장은 아닌데."
"니가 사표 썼잖아! 안 그래?"
"그래요."
"그럼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그러네요."
비로소 납득한 것 같다.

이제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직장에서 버텨야지 별 도리 없다.

*골키퍼 없는 축구 : 1997년 아시안클럽챔피언쉽 2차예선 울산 현대 vs 가시마 엔톨러스 경기에서 울산의 서동명 골키퍼가 퇴장당하여 일반 선수가 골키퍼 옷을 입고 골문을 지켰다. 결과는 1 : 5 로 울산의 참패.

*옮길 방법이 없기 때문 : 만일 마지막 직장애서 나오면 불법체류자가 된다.

*경영상 해고 :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회사측 사정 즉 '경영상 해고'로 옮긴 것은 직장 이동 횟수로 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근로자에겐 '경영상 해고'냐, 아니냐가 무지하게 중요하다.
반면에 사업주한테도 '경영상 해고'냐 아니냐가 무지하게 중요하다. 경영상 해고로 근로자를 내보내면 쓸 수 있는 외국인 정원이 하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장님들은 어떻게든 '경영상 해고'를 안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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