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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의 시대, 그 불편한 진실

[이동연의 케이팝 오디세이] "케이팝 뜨니까 한국이 자랑스럽다고요?"

케이팝은 한국의 팝 음악, 특히 한국의 아이돌 팝 음악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음악적인 원천은 한국적인 것이 별로 없다. 케이팝의 음악은 대부분 힙합, 알앤비로 구성된 흑인 음악에 기반을 두고, 유럽의 일렉트로닉의 변형된 사운드에 기반 하기 때문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케이팝은 이미 한국이라는 지리적 국경을 뛰어 넘었다. 아시아 권역을 넘어 미국, 유럽, 남미에까지 확산된 아이돌 그룹들의 폭발적인 인기, 다양한 음악 장르들을 빠르게 흡수하는 혼종적인 음악 스타일, 영어로 도배가 된 가사의 후렴구, 일본 진출을 위해 별도로 녹음된 일본어 버전, 중국, 태국 출신의 다국적 멤버,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고 그들의 춤을 즐겁게 복제하는 다국적 팬덤. 이런 현상들을 떠올리면 케이팝은 분명 비영어권 국가의 대중문화에서 가장 초국적인 팝문화로 공인될 만하다.

그러나 면밀히 관찰해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달리 케이팝의 실체는 대단히 국민적임을 알 수 있다. 케이팝 제작 시스템의 국지적 독특함, 케이팝에 대한 미디어의 애국적인 관심, 케이팝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국민적 자부심, 케이팝 제작자들과 아이돌 스타들의 국위 선양에 대한 강한 믿음은 초국적 케이팝을 국민문화(national culture)로 번역하게 만드는 사례들이다. 케이팝은 '비틀즈'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불었던 브리티시 팝(British pop) 열풍과 1970-80년대 아시아 권역에서 인기를 누렸던 일본의 제이팝(J-pop), 그리고 제이팝에 이어 1990년대 말까지 아시아 팝문화를 지배했던 홍콩의 칸토 팝(Canto-pop)보다도 훨씬 국민문화적 성격을 갖고 있다.

케이팝은 한류라는 기표가 상상하는 것처럼 초국적 현상 안에 문화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한류(寒流)라는 단어는 중국이 1990년대 초기 개혁개방 시절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을 경계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당초 차가운 기류라는 의미를 가졌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번역했다. 한류(韓流)는 한류(寒流)를 국민문화로 번역한 것이다. 케이팝은 국민문화로서 한류의 한 영역에 해당되지만, 글로벌 언어로 표현되고, 글로벌 팝문화 지형 안에서 자기 규정적인 대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한류라는 기표보다도 초국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케이팝은 한편으로 더 애국적이면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문화로 불리길 원한다. 왜 그런가?


▲한국의 아이돌 팝은 보편성과 애국주의 정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진은 소녀시대의 공연 모습. ⓒ뉴시스

케이팝의 초국적 조건들

먼저 케이팝이 어떤 점에서 초국적이라 할 수 있을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케이팝의 초국적 현상은 크게 보아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케이팝의 음악적 스타일이다. 경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겠지만, 케이팝, 특히 아이돌 팝의 음악 스타일은 힙합과 일렉트로닉 팝을 혼용한다. 힙합이 미국 흑인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일렉트로닉 팝은 유럽의 백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이돌 팝의 음악은 이러한 힙합과 일렉트로닉 팝의 혼종성을 드러낸다. 이는 곡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부여받는 아이돌 특유의 시스템에서 엿볼 수 있다.

예컨대 대부분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는 '힙합 혹은 일렉트로닉 비트가 강한 인트로-소프트 한 유닛 멜로디-강한 메인 멜로디-랩핑-메인 멜로디-집단적 춤을 고려한 에필로그'의 순으로 만들어진다. 아이돌 그룹은 대체로 춤, 랩, 보컬의 장점을 각기 가진 멤버들로 구성된다. 아이돌 팝은 이미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글로벌한 음악 트렌드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국지적 음악 스타일이 갖는 거부감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서 유명 아이돌 그룹의 기획사들은 해외 유명 작곡가들의 곡들 받아서 편곡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지적 음악 스타일의 거리감을 사전에 없애고자 한다. 최근 전 세계에 동시 발매된 소녀시대의 <The Boys>는 과거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였던 테드 라일리(Teddy Riley)가 맡았는데, 이 곡의 사운드를 유심히 들어보면 멜로디보다는 비트가 강조된 전형적인 미국식 팝 트렌드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자국의 멜로디 라인과 비트를 중시하는 일본의 아이돌 그룹들의 유형과는 달리, 한국의 아이돌 팝은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는 동시대 음악 트렌드를 내재화하는 참고 체계를 갖고 있다.

두 번째, 케이팝의 글로벌 마케팅이다. 케이팝은 수년 전만 해도 그 유명세에 비해 마케팅 수준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유튜브를 통한 음악의 자연스러운 소개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것을 글로벌한 차원에서 어떻게 배급하고 유통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과 노하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케이팝 뮤지션들이 아시아를 벗어나 미국이나 유럽의 현지 음반 레이블을 통해 공식적으로 음반을 발매하고 유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글로벌 마케팅 전략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케이팝 가수들이 아시아 시장뿐 아니라 미국 및 유럽 시장에 인지도를 높이면서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도 체계화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0년 LA에서 개최했던 'SM Town Live in LA'를 시작으로 2011년 6월 'SM Town Live in Paris', 같은 해 10월 'SM Town Live in New York'을 개최했다. 소녀시대의 <The Boys>는 유니버설 레코드 산하 배급사인 인터스코프 레코즈(Interscope Records)를 통해 미국에 발매되었다. 먼저 미국 진출에 성공했던 원더걸스는 소녀시대에 이어 싱글곡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를 내고 그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케이블 TV영화 <원더걸스 엣 더 아폴로>(Wondergirls at the Apollo)의 방영에 맞춰 내년 초 미국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유럽 팝 음악 시장에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YG패밀리 소속의 빅뱅과 2NE1도 본격적으로 유럽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빅뱅은 2011년 11월 초 북아일랜드에 있었던 유럽 MTV어워드에서 '월드 와이드 액트'상을 수상했고, 유럽 지역에 음반발매와 함께 YG 소속 가수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콘서트 개최를 기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케이팝의 초국적 팬덤 현상이다. 케이팝은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의 10대 팬들에게는 지배적인 팝문화로 각인되고, 미국과 유럽의 10대들에게도 가시적이면서 잠재적인 새로운 글로벌 팝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 230개국에서 케이팝을 유튜브로 감상하고 있다. 아쉽게도 불공정 계약문제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던 동방신기와 JYJ는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공식 팬덤을 보유하고 있고, 웬만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은 해외 팬들을 두텁게 갖고 있다. 세계 각 대륙에서 아이돌 그룹들의 히트곡과 춤을 따라하는 이른바 '커버댄스'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고 있고, 2011년 6월 SM엔터테인먼트의 파리 공연을 계기로 글로벌 팬들은 자국에서 케이팝 공연이 열리기를 희망하는 각종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f(x), 빅뱅, 2PM, 2NE1 등 아이돌 그룹 곡들의 유튜브 다운로드 횟수는 많게는 6000만 회에서 적어도1000만 회 이상에 달한다. 케이팝이 전 세계 청소년 혹은 청년세대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놀이문화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3의 국민문화로서의 케이팝의 형성

그렇다면 이처럼 초국적이고 상업적인 논리를 가진 케이팝을 어떤 점에서 국민문화의 한 형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케이팝은 가장 초국적이고 가장 상업적이기 때문에 국민문화의 형태를 갖는다. 이 역설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식민지 이후 한국 문화지형에서 국민문화가 표상했던 문화적 변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국민문화(national culture)의 역사적 형성은 크게 보아 세 가지 변형을 거쳤다. 하나는 '저항적 국민문화'로서 일본 식민지와 산업 근대화 시대를 겪으면서 외세와 독재에 저항했던 문화를 의미한다. 저항적 국민문화는 시대별로 각기 다른 저항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화라는 점에서 저항적인 보편성을 갖는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카프문학, 1970년대의 국민문화론, 1980년대 미술계의 '현실과 발언', 그리고 같은 시기에 결성되었던 민중문화운동연합, 민족예술인총연합, 노동자문화운동연합 등이 모두 저항적 국민문화의 유형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 한반도, 국민이라는 총체적인 대상을 설정하고 지배계급, 지배적 외세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외친다.

두 번째는 억압적 혹은 지배적 국민문화로서 권력의 정당화를 위해 국민을 동원하려는 문화전략을 의미한다. 국민문화에서 '국민', 혹은 '민족'은 다른 어떤 지배의 논리로 환원되기 위한 상상된 기표로 작동해왔다. 억압적 국민문화는 민족의 이름으로 국민을 호명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민족을 지배의 도구로 환원시킨다. 그런 논리로 억압적 국민문화는 저항적 국민문화를 반민족, 반국민 문화로 규정한다. 억압적 국민문화는 반공, 안보의 이름으로 저항적 국민문화를 무력화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사용했던 국민경제론은 민족과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종속시켰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국민의 빈곤탈피,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 이념의 수호는 국민들을 이러한 통치의 사명 아래 굴복시키는 것을 지배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주지하듯이 억압적 국민문화는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아시아 주변부 축구대회 '박스컵'과 1981년 전두환 정권 초기에 관 주도로 이루어진 '국풍81'이 대표적이다. '박스컵'은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제 축구대회로서, 산업근대화의 사명에 일로매진하던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이벤트로 마련되었다. '국풍81'은 국운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정권의 핵심이 주도한 전국민적 관제 문화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문화제에 국민문화, 전통문화의 형식들이 모두 동원되었다는 점이다. 저항적 국민문화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전통문화의 형식들은 '국풍81'의 이벤트에서는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대중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이 자행되었던 1970년대의 유신문화, 스포츠, 스크린, 섹스의 탈정치적 효과를 노렸던 1980년대의 '3S 정책'들은 모두 국민개조, 국민정화의 슬로건을 걸고 당대 문화를 억압하거나, 통제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민문화는 이러한 저항적, 억압적 국민문화의 이항대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제3의 국민문화로서 근대적 저항-억압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난다. 제3의 국민문화는 문화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초국적 국민문화다. 저항적 국민문화가 '국민'의 의미를 '민중', '민족'으로 번역하고, 억압적 국민문화가 '반공', '애국'으로 번역했다면 초국적 국민문화는 '자본'과 '경쟁력'으로 번역한다. 주지하듯이 초국적 국민문화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민적, 국가적 관심 속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 대중문화의 글로벌 지위를 명명하는 '한류'와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국제적 부상을 명명하는 '케이팝'이 초국적 국민문화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초국적 국민문화는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두 가지 형태의 국민문화와 다르다. 그것은 또한 국가 대 국민과의 관계가 아닌, 국지적 문화와 글로벌 문화의 관계를 전제한다. 국민문화 형성의 근원은 역설적이게도 초국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국풍81'이 대표하듯, 통치를 위해 대중문화를 이용했다. 과거 대중을 통치하는 데 활용되던 억압적 국민문화 기제는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자본의 통치로 대체됐다.

케이팝, 그 불편한 진실

신자유주의 시대 새로운 국민문화의 형성이라는 권위를 부여받은 케이팝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초국적 국민문화를 통해 문화 자본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것이다. 케이팝의 초국적 국민주의의 실제 시나리오는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제작된 케이팝의 초국적 스타일이 국민주의라는 뜨거운 용광로에 용해되어 다시 초국적 문화자본으로 재탄생하는 것. 케이팝의 초국적 국민문화의 실체는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자본의 논리이다. 말하자면 자본이 국가와 국민을 이용한다. 케이팝은 그 자체로 성공한 새로운 문화자본이지만, 국민주의의 확성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훨씬 더 강력한 상징적 문화자본 형태로 시장을 독점한다. 국민문화는 케이팝 문화자본의 확장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국지적 효소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한미 FTA의 국민주의적 망상, 삼성과 현대의 글로벌 국민자본의 허위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케이팝은 '한미 FTA'와 '삼성의 글로벌 국민자본'의 형태보다는 순진하지만, 포괄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 국민주의가 작용하는 문화적 메커니즘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실제 아이돌 그룹을 위시해서 케이팝을 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자본은 자신들의 자본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국민주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케이팝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며, 자신들이 그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다는 공공연한 발언들의 기저에는 새로운 국민주의의 형성을 통해 문화자본의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전략이 들어있다. 국민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 만큼, SM과 YG의 주식은 수직상승했다. 초국적 국민주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케이팝은 우리에게 신자유주의 시대 국민주의의 작동 주체는 국가나 시민이 아닌 자본 그 자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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