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관련, 민주·평화·복지 포럼 이부영 상임대표가 5.16 쿠데타 50년을 맞는 소회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지금도 그치지 않는 파시즘을 향한 향수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3월 초순은 아직 추위가 덜 풀렸지만 대학가는 갓 입학한 새내기들의 싱싱한 숨결로 뜨거웠다. 아직 4월 혁명의 열기가 뜨거워서 낮에는 선배들 따라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2대 악법 폐지하라!!' 등등의 펼침 막을 들고 거리 시위에 참여했고 저녁에는 대학가의 막걸리 집에 둘러 앉아 설익은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다. 며칠 전까지 입시공부 하느라고 지쳤던 신입생들에게는 대학의 그런 분위기가 정말 자유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출구로 보였다.
저녁노을처럼 강열했던 푸른 자유의 추억은 두 달 만에 끝났다. 어느 날 군사혁명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자고 일어나니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대학 정문에는 기관총좌가 버티어 섰고 신입생들은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증을 '혁명' 붉은 완장을 찬 군인에게 보여야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만발하여 진동하는 라일락 향기는 오히려 죽음의 냄새를 닮은 듯했다. 영문 모르는 신입생들은 선생님들이, 선배들이 왜 사라졌는지 모르고 저희들끼리 모여 웅성거리기만 했다.
우리들의 대학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뒤 내 자신이 군복무를 했어도 군복은 언제나 5.16 첫날 느꼈던 그 먼 것, 가까이 하기 두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 세대 대다수에게는 그 뒤 박정희 시대와의 불화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학 생활은 군정반대, 6.3학생운동, 한비밀수규탄으로 이어졌고 졸업 뒤 언론계로 취업한 사람들에겐 언론자유와 그 수호운동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관계나 재계 그리고 학계로 나아간 인사들은 오래 계속된 군부통치에 그럭저럭 적응했고 출세한 인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 세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5.16쿠데타에 대한 거부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의 현대사는 4.19와 5.16의 양대 산맥으로 굽이쳐 왔다. 우리의 모든 가치와 현실은 양대 산맥으로 나뉘어왔다. 때로는 서로 대립·충돌하면서, 때로는 뒤엉키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일궈냈다. 그러나 5.16은 힘으로 4.19를 제압해왔고 4.19는 5.16에 저항해왔다. 친일적이고 극우적인 박정희 군부독재는 18년여에 걸친 장기독재를 펴는 동안, 정치·경제·문화·종교·언론 등 광범한 동조세력을 형성하고 학생·지식인들의 저항을 억압하면서 노동자·농민·도시서민들을 희생시켜 재벌특권경제를 구축했다. 그에 대한 가장 극적인 저항이 1970년에 있었던 전태일의 분신 항거였다. 군부와 재벌은 지역, 계층, 이념적으로 철저한 벽을 쌓은 양극구조를 구축했다. 박정희 독재는 10·26으로 무너졌지만 박정희 개인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강력한 구조물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32년이나 계속되었다. 물론 그 32년 동안 반 유신운동,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항쟁이 이어졌다.
90년대 들어서 박정희 시대의 유산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도가 밀려들면서 양극화-격차사회로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를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것은 이런 양극화-격차사회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탄압과 독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성장이 되었고 잘 살게 되었다"느니 "한국 사람들은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두들겨 패야한다"는 야만적이고 자기모멸적인 의식을 조장하고 있다. 친일·극우적인 박정희 시대가 대물림한 일제식민지 잔재이다. 이런 세력은 끊임없이 독재회귀, 분단대결, 지역차별, 노동천시의 성향을 드러내곤 한다. 2012년에 <박정희 시대>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그 성향은 끊임없이 파시즘을 향한 충동으로 몸을 떨고 있다. 최근에도 박정희 시대의 민주주의, 인권 탄압으로 사형당하고 고문당하고 징역살이한 사람들에 대한 판결이 무죄선고되고 긴급조치들이 줄줄이 위헌판결이 나고 있는데도 독재를 향한 향수, 파시즘을 향한 충동은 그칠 줄 모른다.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5.16쿠데타 50년' 학술대회는 <박정희 시대>의 실상과 왜곡된 그 허상을 점검하여 내일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해 보자는 뜻으로 열린다.
반세기 전의 그 비극이 다시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다. 50년 전의 총칼과 탱크가 아니라 돈과 신문·TV·SNS를 가지고 청년과 노년을 가리지 않고 설득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 때문에 잘 살게 되었으니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자고. 우리가 무관심하고 잊고 있는 동안에 말이다.
오는 14일 민주·평화·복지 포럼이 주최하는 '5.16, 우리에게 무엇인가' 학술대회는 총 4부로 진행된다. 진보진영 학자들과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까지 두루 참여, 열띤 토론이 예상된다.<편집자> ■ 일시 : 2011년 3월 14일(월) 오전 10시 ■ 장소 :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20층) ■ 제1부(10:30~12:00) : 한국군부통치의 정치사적 평가(박정희 시대를 중심으로) - 사회 : 박은정(서울대) - 발표 : 박명림(연세대) - 토론 : 조국(서울대), 김재홍(민포럼 정책홍보위원장, 경기대), 전상인(서울대) ■ 제2부(13:30~15:00) : 박정희 시대 개발독재와 근대화의 해석 - 사회 : 장상환(경상대) - 발표 : 임혁백(고려대) - 토론 : 김동춘(성공회대), 박효종(서울대), 우석훈(2.1연구소 소장) ■ 제3부(15:00~16:30) : 박정희 시대의 사회통제와 저항 - 사회 : 임현진(서울대) - 발표 : 정근식(서울대, 한국 민주주의 연구소장 - 토론 : 김호기(연세대),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신계륜(민포럼 서울지회장, 전 국회의원), 최민희(민주언론시민연합 전 상임대표 ■ 제4부(16:50~18:30) : 종합토론 - 사회 :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 토론 : 임현진, 장상환, 박명림, 임혁백, 정근식, 전상인, 김동춘, 박효종, 김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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