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미국은 이라크에 남아있던 병력을 최종 철수시키면서 9년에 걸친 전쟁을 공식 종결시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어 세계는 이 전쟁을 거치며 '질서가 없는(disorder)' 상태가 됐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소련 붕괴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논의가 유행이 된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서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새로운 안보 질서를 고민하기 보다 민주주의 촉진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군사력을 동쪽으로 확장하는 것에만 주력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서방의 이러한 행동에는 소련이 사라진 후 '새로운 적'을 찾아다니던 군산복합체의 역할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사설은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후 군산복합체들은 다시 돈을 벌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며 "알카에다는 세계 어디에서나 튀어나올 수 있고, 현존하는 적이었으며, 이데올로기에 의해 움직이고, 협상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에 잠시 동안이지만 공산주의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시절의 선제공격 독트린이나 외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자국의 안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사설은 지적했다.
▲ 이라크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군 부대인 미 육군 1기갑사단 3여단소속 부대원들이 18일(현지시간) 중무장 차량에 탑승해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사설은 이어 "그러나 알카에다 역시 (미국처럼) 실패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며,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폭격 혹은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알카에다 식의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데올로기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알카에다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이집트다. 이집트는 빈라덴 사후 알카에다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출생지이지만,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무바라크 독재를 끝내기 위해 봉기에 나섰을 때 알카에다가 원하는 것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설은 "이슬람은 지금 이집트에서 승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군사적인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인 승리"라며 이집트의 이슬람 세력은 '이교도'들과도 손을 잡고 서구식 민주주의와 법치를 공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설은 "알카에다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이유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라는 서방의 대응 또한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서방이 실패한 이유는 알카에다가 신출귀몰한 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개입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서방군의 임무는 초기에 (이라크와 아프간의) 민주주의 촉진에서 국가 건설로, 나중에는 어떤 비용을 치러서라도 철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미군이 떠난 이라크 국민들의 삶의 질은 철군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그러면서 이라크전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의식을 치르는 미국의 모습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서 드러나는 북한의 현실 인식과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설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며 "지금은 '자기 파괴적(self-defeating)인 군사적 개입'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이어 "군사력으로 이라크에서 독재자(사담 후세인)을 없애고 '실패한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적인 국가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시도는 고전적인 의미의 '적'에 의해 좌절된 게 아니다"라며 "미국은 안에서 폭발했고 자폭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설은 "능력을 넘어서는 군사적 팽창과 지속적인 경제 위기는 능력 밖의 일들과 싸워야 하는 지도자들의 세대를 남겨 놓았다"며 그러한 지도자들은 세계 질서를 만들기 보다는 자국을 방어하기에 급급함으로써 오늘날에는 보호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은 더이상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힘을 합치는 곳이 아니며, 미국은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함으로써 미국의 지도국가적 지위는 사라졌다고 사설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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