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는 패스터 의원처럼 백만장자가 된 의원들이 상하 양원 535명 중 거의 절반에 이르는 250명에 달한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양극화와 경제 위기가 겹친 미국에서 정치인와 유권자 사이의 자산 격차는 빠르게 벌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의회는 실업급여 연장과 식료품 쿠폰 지급, 부유세 신설 등의 논란에서 쉽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패스터 의원은 <뉴욕타임스>에 자신은 주말마다 복권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그의 자산이 전체 의원의 순자산 중간값인 91만3000달러(약 10억5725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미국인의 순자산 중간값은 10만 달러에 불과하고, 2004년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패스터와 같은 의원들은 '귀족'이라고 불릴만 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의원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도 자산이 계속 증가하면서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19세기 후반 남북전쟁 이전의 농장주부터 20세기 초반 산업 자본가들, 그리고 현재 월가와 IT 기업 출신 사업가까지 미국의 정치는 언제나 부자들의 전유물이었고, 구겐하임·허스트·케네디·록펠러 등 명문가는 대를 이어 정치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게 역사적인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의원들과 유권자 사이의 자산 격차가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는 것이다.
▲ 지난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한 노동자 급여세 감면 방안 거부를 밝히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 23일 공화당은 차가운 여론을 의식해 2개월 감면 연장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1년 연장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안이었다. ⓒAP=연합뉴스 |
의원들과 유권자 사이의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하는 이들의 경우 출마 단계에서부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자산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이 밖에도 윤리 의식의 실종, 주식·부동산 투자·감세·상속과 더불어 부유한 배우자를 맞는 것까지도 자산 증가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신문은 평균적인 미국인들뿐 아니라 다른 부자들과 비교해도 의원들의 자산 증가는 도드라진다고 지적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의원들의 순자산은 15% 뛰었는데, 같은 기간 자산 상위 10%안에 드는 이들은 재산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전체 미국인의 자산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같은 기간 8% 하락했다. 더 과거로 가면 의원들의 재산은 물가를 반영해 1984년부터 2009까지 약 2.5배 늘어났지만 전체 미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되레 감소했다.
당선에 성공한 상원의원의 선거 비용이 평균 1000만 달러, 하원의원이 14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한다는 통계에서 보듯 돈이 없으면 의회에 입성하지 못하는 추세도 이에 한몫한다. <타임>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106명의 순자산 중간값은 86만4000달러(약 10억 원)로 2004년보다 26% 증가했다. 의원직 자체가 주는 혜택도 일반 미국인들은 쉽게 누릴 수 없다. 미 하원의원들이 한해 받는 봉급은 2004년보다 10% 증가한 17만4000달러(약 2억149만 원)이며 건강보험과 연금 혜택까지 누린다.
백만장자를 넘어 몇몇 의원들은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라 있다. 자동경보 시스템 업계의 거물인 대럴 이사 공화당 하원의원의 재산은 최소 1억9500만 달러에서 최대 7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렇게 막대한 부는 종종 문제를 초래하는데, 대럴 이사 의원의 경우 자신의 투자 활동이 의정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는지 조사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지역구에서 투자 목적으로 구입한 부동산 인근의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연방 예산 80만 달러를 받아냈다는 비난도 샀다.
이밖에도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700만 달러까지 요트를 자신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곳에 정박시켜 세금을 탈루했다는 비난을 받고 뒤늦게 밀린 세금을 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재산은 1억9600만 달러 이상인데, 그와 반대로 46만4000달러의 순부채를 안고 있는 같은 당의 로라 리처드슨 하원의원은 의원 봉급을 동결시키려는 펠로시 대표에게 격렬히 반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가 휴가 중인 1명을 제외한 534명의 상·하원 의원에게 최근 지인 중 실직하거나 집을 잃은 이들이 있느냐고 물어본 결과 18명 만이 답장을 보냈다. 응답자의 절반이 집을 잃은 지인이 있다고 답했고, 나머지 절반은 그런 처지의 유권자들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밝혔다. 실직한 지인의 소식을 들은 이들은 3명 중 2명 꼴이었다.
응답자 중 한면인 애나 에슈 민주당 하원의원은 "직업을 잃고 다른 일도 찾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실업급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백만장자 의원들은 인생을 (일반인들과) 다른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라고 지적했다.
의원들의 자산이 경제위기와 관계없이 늘어남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들이 기밀사항을 이용해 불법적인 소득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앨런 지오브로스키 주지아주립대 교수는 하원 의원들이 한해 동안 주식으로 올린 이익이 6%, 상원 의원들의 이익은 12%에 달했다며 이들이 기업의 기밀을 이용해 투자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지난해 예일대와 메사추세츠대가 각각 진행한 연구 결과 의원들의 평균 주식투자 이익은 일반적인 투자자의 이익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들의 재산 증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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