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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이의 손맛과 심성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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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금이의 손맛과 심성을 닮은

[안병권의 고향보따리] <32> 횡성 오영자 장아찌

사람이 살아가는 형편이나 상태를 나타낼 때 말머리에 '속'이란 말을 붙여 쓴다. 우리 몸의 '안' 과 '바깥' 중에서 '안'과 비슷한 개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속'이 한층 더 복합적이고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뜻을 담는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아휴! 속상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면 "속이 끓는다 끓어" 혹은 "속이 터진다 터져!"
자식새끼 고생하는 것 보면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고 이야기한다.
또 막혔던 일이 탁 풀려나가는 순간 "야! 속이 후련해 진다"라 하고 술먹고 난 다음날 해장국을 먹는 일을 '속을 푼다'라고 한다.

이렇게 '속'이란 글자의 뒤에 명사, 형용사, 동사를 가리지 않고 단어를 붙이는 것만으로 현재 살아가는 자신의 모양새나 상태를 온전하고 표현했으니 조상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어휘력에 감탄할 뿐이다.

그 속이 시원하고 그 속이 편한 상태….

속이 시원하다는 것은 해원(解寃)의 뜻이 담겨있다. 원통함이 없이 맺힌 한이 풀려가는 경지다. 속이 편하다는 것은 인체의 오장육부와 마음이 거리낌없이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동양의 모든 성현(聖賢)들이 다다르고자 했던 경지이기도 하다. 백성을 다스리는 최고의 경지요. 백성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법과 제도도 그런 상태를 지향했다. 만인의 행복을 나타내는 말로 '속시원하고 속이 편해요'이 이상 가는 말이 없다. '백성의 속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와 같으니 몸과 마음의 상태가 최선의 경지에 오른다는것과 같다.

요즘 나는 아주 속이 편하다.

▲ 하얀 접시위의 유혹 ⓒ안병권

일상에서 갓 건져 올린 내 몸이 아는 맛 때문에 온 몸의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기 때문이다.

일상이 단조롭고 입맛이 텁텁해지던 아주 추웠던 어느 날, 거무튀튀한(짙은 고동색) 깻잎장아찌가 보이길래 흰밥위에 무심코 한장 얹어 베어 물었다. 순간 입안에 퍼지는 그윽한 깻잎의 향기와 장아찌가 되어가면서 생겨난 감칠맛이 혀의 표면 미각돌기를 마구 두드리는게 아닌가?

"여보! 이거 누구네 집 깻잎인가요?" 그날 밥 두그릇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했다.

영덕 농부의 정성이 가득한 유기재배 무청씨래기
장모님이 보내주신 동치미
횡성 속실에서 보내준 유기농 깻잎장아찌
잘 익은 김장김치

우리집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물리지 않는 맛과 영양으로 내 속을 시원하게, 속을 편하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소화가 안되거나 더부룩하거나 불쾌한 잔 맛이 남는 경우가 없다. 왜 일까?

이들에겐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만드는 사람의 공력(功力)이 들어간다는 것이고 그만큼의 마음이 보태진다는 사실이다. 먹거리 자체로도 우리 몸의 엔돌핀을 돌게 하지만 준비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먹는 이의 막혔던 몸과 마음속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 미친듯한 존재감 ⓒ안병권

입이 궁금하거나 이것저것 신통치 않을 때 하얀 밥 위에 얹어진 깻잎 장아찌의 미친듯한 존재감.

입에 넣기도 전에 풍겨오는 깻잎의 향기, 아우르고 버무려져 또 다른 깊은맛으로 밥알을 적시는 장아찌의 국물은 다른 반찬 없이도 밥을 아주 맛있게 금방 먹어 치우는 밥도둑의 출현을 만천하에 알린다.

오장금 깻잎장아찌

▲ 청일관광농원의 안주인 오장금(오영자)여사. 곰취장아찌와 깻잎장아찌가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그의 손맛과 심성을 보고 오장금여사라 부른다. 좋은 재료로 모든 사람에게 약이 되는 먹거리를 만드는게 기본철학이다. 음식을 만드는 이의 도리를 다하는 아는 사람이다. ⓒ안병권

▲ 늦가을 들깨가 거의 여물고 깻잎이 노랗게 단풍이 들 무렵 수확을 한다. 이 시기가 되어야 깻잎장아찌가 제 맛을 낸다고 이해했으니 조상들의 지혜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횡성 운무산자락의 노지 깻밭에서 자연의 기운이 무르익어 간다.그 자리에 서면 그 자체로 기분 좋은 일이 된다. ⓒ안병권

▲ 차곡차곡 한장한장 따서 한다발씩 묶어 놓는다. ⓒ안병권

▲ 소금물에 염장을 한다. 소금은 전남 신안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사용한다. ⓒ안병권

▲ 염장해두었던 깻잎을 꺼내 밀폐된 저장고에 담는다. 간장육수를 부어 넣어 자박자박하게 만든다 ⓒ안병권

▲ 유기농 참깨를 볶아 얹는다. 또 다른 에너지가 장아찌에 결합하는 과정이다. ⓒ안병권

▲ 농장에서 뿌리농법으로 재배하고 하늘볕에 건조한 유기농실고추를 만들어 때깔을 내고 맛을 보탠다. 우리음식에서 실고추가 갖는 매력은 감출수가 없다. 장식이고 맛이기 때문이다. ⓒ안병권

▲ 오장금 여사 손맛에 의해 양념이 맛으로 진화한다. ⓒ안병권

▲ 노란깻잎이 숙성과정에서 우리몸에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색깔로 변하고 맛이 밴다. 흰쌀밥에 올리면 투명해 보이죠? ⓒ안병권

들깨

꿀풀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로 향약집성방에는 임자(荏子),혹은 수임자(水荏子)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고 양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므로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높다. 보통 채소밭의 한모퉁이에다 재배하고 콩이나 그 밖의 작물들과 혼작을 하기도 한다.

들깻잎에는 페릴라케톤(perillaketone), 페릴알데히드(perillaldehyde)등의 방향성분이 들어있어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깻잎쌈이나 깻잎부각, 깻잎김치, 깻잎장아찌 등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종자는 볶아서 가루를 내어 양념으로 쓰기도 하고 기름을 짜서 요리에 쓴다. 옛날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등잔불용으로 쓰기도 했다.

들기름의 마력은 깊고 은은하고 진중한 맛에 있다. 요리의 양념으로 맨 나중에 들어가는 부분(部分)에 불과하지만 결국에는 맛을 좌우한다. 가볍지 않고 묵직한 맛인데 물리지 않는다.

아주 꼬맹이때 들은 이야기 중 햇갈렸던 질문 2가지가 있다.

"참기름이 좋아? 들기름이 좋아?"가 그 하나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뻔히 알고도 당하는 짖궂은 이 질문이 나머지 하나다.

내 대답은 늘 "둘다 좋아" 였다. 정치적인(?) 고려 없이 정말 둘이 다 좋았다.
▲ 기억나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 ⓒ안병권

자그마한 몸집의 아줌마 농부가 자신의 들깨밭을 지나가다 파란하늘과 대비된 깻잎사귀를 보고 들깨향에 취하고 예쁜 몸짓에 취했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야! 이렇게 향기 좋은 깻잎에다 참깨열매가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속에서 감탄을 했다. 그러면 깻잎도 지금처럼 이용하고 열매는 열매대로 또 비싸게 팔수 있으니 일거양득이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농부는 반성을 했다.

조물주는 허투르게 세상을 운용하지 않는다. 누구나 어느 존재나 다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한몫을 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들깨는 들깨나름의 고유한 향기와 잎사귀로 한몫을 단단히 한다. 열매의 가격이 참깨의 가격에 못 미친다 하여도 그만큼의 역할을 톡톡히 하여 존재감을 갖는 것이다. 참깨의 열매는 비싸지만 잎이나 줄기가 소용이 없다. 다 자연이 안배한 역할이고 존재이거늘….

말맺음

청일농원 사람들이 보여주는 세가지 장면을 보면 오장금 깻잎장아찌의 맛 너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장면 하나 : 며느리등 토닥토닥
▲ 온 식구가 힘들게 일을 한 날이면 시아버지는 도시에서 시집온 며느리를 고생했다며 꼭 안아준다. 며느리 시집온지 8년째. 저렇게 등을 토닥토닥… ⓒ안병권

장면 둘 : 이어지는 뜻, 사람사는 세상



▲ 할아버지의 뜻이 손자에게로 이어진다. 3대가 모여 자연을 대하는 할아버지의 생각이 손자에게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안병권

▲ 오장금여사가 한손에 건강, 한손에 행복을 담아 보내드린다. 운무산의 정기가 가득담겨 있다. 여러분 모두에게 웃음 보약이 터지기를 바라며. ⓒ안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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