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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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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Ⅰ

[한윤수의 '오랑캐꽃']<339>

베트남인 펑(가명)은 노래를 잘 부른다.
고향 마을에서는 공산당 창립기념일이나 청년축제나 어린이날 축하잔치에 단골로 뽑혀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말하자면 아마추어 가수이고 가수 지망생이다.

하지만 가수가 못 되고 한국에 노동자로 왔다.
그렇다고 가수의 꿈마저 접은 건 아니다.

그는 노래가 부르고 싶다.
그래서 입사한 지 사흘밖에 안된 핸드폰 자판 공장에서도 계속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작으면 너무 답답하니까 조금 크게 불러본다. 그러다가 곧 감정이 복받쳐 소리가 왕창 커진다. 과장님이 달려온다.
"임마, 너 미쳤어? 왜 소리를 질러?"

과장님한테 혼나고 사장님한테 미움 받고!
욕을 밥 먹듯 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이 미운 오리새끼가 덜컥 일을 저질렀다. 제 발로 베트남 여성들이 묵고 있는 여자기숙사로 찾아가서 밤 1시까지 노래를 부른 것이다.
한국 남성보다 더 흥분한 것은 베트남 남성들이었다.
"이 자식이 저 혼자 여자들을 갖고 놀아?"
베트남 반장은 별렀다.
"어디 두고 보자."

입사한 지 엿새째 되는 날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구정 무렵에는 특근이 계속된다. 연휴 때 쉬기 위하여 제품을 미리 생산해두는 것이다. 일요일인 1월 16일도 특근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날 펑에게는 특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아주 잘 나가는 가수, 담빈흥이 안산에 와서 공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는 담빈흥과 같이 노래 부르는 게 소원이었다. 소원을 못 이루더라도 일류 가수의 노래를 생음악으로 듣기만 해도 어디냐!

화성시 정남면에 있는 공장에서 수원 시내로 나가, 수원역에서 막 전철을 타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베트남 반장이었다.
"너 지금 어디 있냐?"
"수원역에요."
"오늘 특근하는 거 알았어, 몰랐어?"
"몰랐어요."
"몰랐다고? 말이 안 되잖아! 이 자식 안되겠네. 너 당장 그만 둬."
만일 이때 펑이 회사로 즉각 돌아갔으면 별 일 없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즉시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펑에게는 이것이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을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직장이동 기회 3번을 이미 다 써서 다른 회사에는 갈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반장의 태도가 너무 차가워서?
그건 아닐 것 같다. 차가워도 불법 되는 것보단 나으니까.
딴따라의 무책임?
그럴 수도 있다. 딴따라들 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데까당도 있는 거니까!

어쨌든 펑은 3시간 정도 수원에서 더 미적거리다가 오후 3시에야 회사에 들어갔다. 그 3시간 동안 뭐했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왕 수원 나온 거 친구하고 밥도 먹고 식재료도 사고 그랬어요."

반장도 과장님도 사장님도 일제히
"나가!"
라고 했다.

그는 이틀을 버티다가 회사를 나왔다.
만일 그때라도 즉시 발안으로 찾아왔으면 내가 손 써볼 기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탈한 지 나흘 후인 23일에야 발안으로 왔고, 오던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이라 회사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서는 이탈신고를 해버렸다.

나는 이탈신고를 철회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담당 과장이 말했다.
"웬만하면 인간이 불쌍해서 봐주려고도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이젠 안 됩니다. 계속 거짓말만 하거든요."
아무도 그를 감싸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베트남 사람들마저도!

그는 이제 불법체류자다. 단속에 걸리면 추방되는 신세!

하지만 나는 딴따라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토록이나 바라던 가수가 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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