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외교통상부 당국자에 따르면 제미니호의 선주인 싱가포르 선사는 11월 29일(현지시간) 제미니호에 타고있던 선원 25명 전원의 협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해적들은 24시간 안에 배를 떠나기로 약속했고, 다음날 오전 3시경 소말리아 호비오항에 정박해있던 제미니호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선사 측의 확인 결과 한국인 선장 박모(56) 씨를 비롯한 한국인 선원 4명은 배에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해적들이 선사와의 협상을 깨고 한국인 선원만 내륙으로 데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선원을 제외한 인도네시아인 13명, 중국인 5명, 미얀마인 3명 등 21명은 제미니호를 출항시켜 안전지대로 이동하고 있는 상태다.
제미니호는 지난 4월 30일 케냐 몸바사 남동쪽 193마일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한국 정부는 그 동안 '해적과 정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에 따라 싱가포르 선사에 협상을 맡겨 왔지만 해적들은 한국인 선원에 대한 협상에서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생포된 해적 5명의 석방과 사살당한 해적 8명의 보상금을 요구해 왔다.
이번에 해적들이 합의를 깨고 한국인 선원만 데려감으로써 피랍 사태 해결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앞으로도 선사가 주도적으로 협상한다는 원칙 아래 한국인 선원이 풀려날 때까지 선사 측과 긴밀히 공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한국인 선원 억류에 대해 생포당한 해적을 미끼로 돈을 더 받아내려는 전략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인질이 배가 아닌 소말리아 내륙으로 끌려가면 이들의 생사 및 건강상태를 직접 파악하기 힘들어지고 협상이 더 힘들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싱가포르 선사는 제미니호가 풀려나기 전 망원렌즈 관측을 통해 선원들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해적들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차원을 넘어 생포된 해적들의 석방을 강하게 요구하면 싱가포르 선사가 관여하기 힘든 정치적인 사안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장 박 씨 등이 피랍당한 기간은 이날을 기해 216일째로 접어들어 기존 기록인 삼호드림호의 217일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아덴만의 여명 작전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의 보복 위협에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장기 억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21일 한국 해군은 청해부대 구축함 최영함(4500톤급)을 투입해 해적에게 납치당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해적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해 한국으로 이송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아덴만의 여명 작전'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당시 언론들은 이 대통령이 담화 직후 '태극기만 보면 해적들이 겁을 먹겠다'라는 기자들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앞으론 그럴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3개월 뒤 제미니호가 피랍되고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인 선원에 대한 '별도의 조건'을 내걸었지만 정부는 '해적과의 협상 불가론'을 명분으로 싱가포르 선사와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관련 대통령담화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