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논쟁의 텍스트(Text)를 해석학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주화파ㆍ척화파의 '화(和)'에서 중립의 가치를 찾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이해는 어린아이의 옹알거림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햄릿'이나 '이성 비판'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거석들, 대리석, 음악적으로 채색된 음색, 몸짓, 단어, 문자, 행위들, 경제 규정이나 헌법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정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해석을 필요로 한다.(빌헬름 딜타이, 36)
남한산성 논쟁의 주역인 최명길과 김상헌의 몸짓, 말투, 음색, 일거수 일투족, 옹알거림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해석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의 격렬한 논쟁 속에 스며 있는 현실에 대한 이해의 차이, 세계관ㆍ이념의 차이, 논쟁을 위해 사용하는 한자 단어, 논쟁이 기록된『인조실록』의 문자는 해석학적 이해의 대상이 된다.
논쟁이 실려 있는『인조실록』이라는 텍스트의 진정한 이해를 위해 원작자의 상황과 작자의 정신으로 몰입해야하며, 최명길ㆍ김상헌의 역사인식을 다시 체험(追體驗)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해석학적인 추체험(追體驗)을 위해 김훈의 소설『남한산성』에 나오는 논쟁을 텍스트로 사용한다.
1. 소설『남한산성』의 이해
가다머(Gadamer)에게 이해란 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다 잘 이해하고 못하고 하는 차원이나 옳고 그름을 가리는 차원이 아니라, 이해가 나와 같이 하나로 융합하며 있는 존재론적 차원을 말한다. 다시 말해 이해란 죽어 있는 이론이 아닌,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생성적 차원을 지시한다. 주어져 있는 선입견, 전통, 선이해[先理解; 앞선 이해]를 계몽주의처럼 배제하기보다, 오히려 이와 더불어 하나로 융해하며 새로움으로 나아오는 것으로, 그 권위를 복권시키는 것이다. 마주하는 현실과 더불어 지평 융합(Horizontverschmelzung)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승된 지평과 더불어 마주하는 현실의 지평을 하나로 융합하는 지평 융합을 한다. 단순히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라, 단절된 지평이 아니라, 때로는 전승으로, 선입견으로, 권위로, 현실의 삶 안에 영향을 끼치는 이해를 해야 한다.(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178ㆍ179ㆍ187ㆍ189)
위와 같은 논리에 따라, 소설『남한산성』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남한산성 논쟁'의 역사를 추체험(追體驗)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역사'는 객관적 역사로서의 Historie가 아니라, 사건의 일어남으로서의 Geshichte이다. 가다머(Gadamer)가 말하는 역사는 사실적 객관적 역사가 아닌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역사, 즉 해석학적 역사이다.(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194)
이러한 해석학적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남한산성』(140~143쪽)이라는 텍스트를 사용하여 주화파-척화파의 '화(和)'를 분석한다.
2. 주화파-척화파의 '화(和)' 분석
인조 임금 앞에서 주화파와 척화파의 논쟁 즉 청나라 황제가 요구하는 항복문서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쟁이 벌어진다. 주화파는 또 갈라져 최명길의 제한적 항복론<청나라 황제를 황제로 칭하지 않고 '한(汗; 칸)'으로 칭해야한다는 주장>과 홍서봉ㆍ장유의 현실론(어차피 항복문서를 쓰면서 청나라 황제의 화를 돋울 이유가 있느냐)으로 나뉜다.
최명길이 '청나라 쪽에서 화친할 뜻이 있는 것 같으니 신하들을 남한산성 밖으로 내보내 청나라 진영과의 말길을 트자'고 임금에게 진언한다. 청나라와 말길을 트는 게 화(和)의 시작이라고 보는 주화파의 입장이 잘 나타나는 텍스트이다.
이에 김상헌은 "화친은 가당치 않사옵니다. 화친은 곧 투항일 것이옵니다. 화친으로 적을 대하는 형식을 삼더라도 지킴으로써 내실을 돋우고 싸움으로써 맞서야만 화친의 길도 열릴 것이며, 싸우고 지키지 않으면 화친할 길은 마침내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화(和), 전(戰), 수(守)는 다르지 않사옵니다."고 임금을 향해 역설하며 주화파의 논리를 반박한다.
말길을 트자는 주화파의 '화(和)'는 잘못이므로, 싸우고(戰) 지키지(守) 않으면 화(和)의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말길을 먼저 트는 '말을 통한 和'보다 '戰-守를 통한 和의 길'이 있다고 김상헌이 막연하게 말한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戰의 능력', 즉 청나라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군사력이 남한산성 안에 있느냐이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로서 척화파의 이데올로기인 숭명배청(崇明拜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척화는 허무한 관념일 뿐이다.
그래서 주화파의 최명길이 '김상헌의 말은 말로써 옳으나 현실적인 힘(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므로 그 헤아림이 얕다'고 비판한다. 말은 되지만 실행력이 없으므로 허무한 말장난에 그친다는 반론이다. 임금이 있는 남한산성을 말려서 뿌리 뽑으려는 청나라 군대 앞에서, 척화파의 사대 모화주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척화-사대 모화주의는 사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조반정이 발생하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 집권하여 중립외교를 지속했다면 병자호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척화파의 허무한 관념론을 들을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절감하고 있는 최명길은 답답한 듯 "앉아서 말라죽을 날을 기다릴 수는 없사옵니다. 안이 피폐하면 내실을 도모할 수 없고, 내실이 없으면 어찌 나아가 싸울 수 있겠사옵니까. 싸울 자리에서 싸우고, 지킬 자리에서 지키고,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사리일진대..."라며 되받아친다. 아무런 군사력도 없이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읊조리며 사대 모화주의 타령만 하다가는 앉아서 말라죽고, 그렇게 되면 안이 피폐해져 내실을 도모할 수 없게 되어 오히려 싸울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싸울(戰) 능력이 검증된 자리에서 戰을 주장해야지 그러한 공간(자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냥 숭명배청(崇明拜淸)의 척화론을 주장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 즉 강화(和)를 추진할 공간(자리)에서 화(和)를 주장하는 主和가 守(나라를 지키는 길)라는 지적이다. 광해군이, 적대하는 후금ㆍ명나라를 상대로 등거리 중립외교를 펼치며 主和(화친)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주화론을 최명길이 펼쳤다.
광해군 중립외교의 감각을 이어받은 최명길이 척화론을 펼칠 자리(공간)가 없다고 비판하자 이내 김상헌의 반론이 뒤따른다; "이것 보시오, 이판[이조판서 최명길]. 싸울 수 없는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 전(戰)이고, 지킬 수 없는 자리에서 지키는 것이 수(守)이며, 화해할 수 없을 때 화해하는 것은 화(和)가 아니라 항(降)이오, 아시겠소?"
주화ㆍ척화 논쟁이 갈수록 불꽃 튀긴다. 지금은 오랑캐 청나라를 상대로 끝까지 싸워야할 때인데 화해하는 것은 和가 아니라 항복이라는 김상헌의 반론은 무책임한 말이다. 싸울 군사력이 전혀 없는데 명나라 숭배의 정신력만으로 싸우는 것도 戰이기는 하지만 패전(敗戰)의 지름길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목숨도 임금의 생명도 사직도 守하지 못한다. 바로 이 것(임금의 목숨과 사직의 안위)을 우려하는 최명길이 주화론을 펼치며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명길이 임금을 향하여 '김상헌의 척화론은 말일 뿐입니다. 김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생(生)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라고 진언한다. 백성의 목숨ㆍ민족의 생명ㆍ임금의 목숨ㆍ사직이 경각(頃刻)을 다투는 자리에서, 아무런 힘(군사력)도 없이 말로만 척화하자면, 이는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의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갇힌 성안에서 그런 척화의 말 길을 따라갈 시ㆍ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드디어 주화ㆍ 척화 논쟁이 생명론, 즉 백성ㆍ민족ㆍ임금의 생사론으로까지 확산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이어졌다면, 남한산성의 궁벽한 곳에서 이렇게 심각한 생사론을 거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용 자료>
*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지음, 손승남 옮김『해석학의 탄생(Die Entstehung der Hermeneutik)』(서울, 지만지고전천줄, 2008)
*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 Georg Gadamer) 지음, 박남희 옮김『과학시대의 이성(Vernunft im Zeitalter der Wissenschaft)』(서울, 책세상, 2009)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