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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독재 누락된 교과서는 박근혜에게 최대 이익"

[이태경의 고공비행] 누구를 위해 역사교과서는 개정되나?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퇴행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뀐데 이어 친일파 청산과 이승만·박정희의 독재정치가 사라지고 심지어 광주 5·18 민주화운동도 삭제될 예정이다. 이승만·박정희의 독재정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민주주의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었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연구모임인 교과서포럼이나 한국현대사학회 같은 단체들의 집요한 노력이 MB정부를 만나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뉴라이트 사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바라보는 한국현대사는 멋지고 조화롭다. 뉴라이트 학자들은 발전의 내적 동력을 잃은 채 쇠락해가던 조선이 일제가 이식한 근대적 제도, 법률, 정신, 물적 인프라로 인해 비로소 근대화되었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정체를 간파한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국체로 삼아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자유진영에 합류했기에 대한민국이 적화되지 않고 국가의 근간을 지킬 수 있었으며, 박정희가 반공과 사유재산권 보호를 중핵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한층 공고화하고 산업화를 추동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온 두 개의 축을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로 보는데 자유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반공과 반북 그리고 사유재산권 절대주의이며, 산업화의 속살은 물질적 풍요다. 이들의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어떤 나라 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나라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일제의 식민지배, 이승만의 전제적 통치, 유사파시즘에 가까운 박정희 유신체제에 동반된 국권강탈, 수탈, 학살,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의 파괴, 부정부패, 언론탄압, 불균등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성장 등과 같은 수다한 폐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벌어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완전한 복권은 박근혜의 상징자산을 크게 불려줄 것

뉴라이트 역사관에는 반공, 반북, 사유재산권 절대주의, 물질적 풍요, 경제성장, 우승열패의 신화만 있을 뿐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엄성이 없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없는 것이 또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안에는 한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믿음이 없다. 일제가 없었으면 조선은 영영 근대화될 수 없었고,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건국될 수 없었고 적화를 피할 수도 없었으며, 박정희가 없었으면 산업화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민족이나 시민의 주체적 역량을 부정하는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영웅사관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웅사관과 근친성이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은 뿌리가 깊고 힘이 세다. 이미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뉴라이트 역사관에 깊이 침윤돼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를 행복의 유일한 척도로 여기고, 영웅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경쟁을 숭배한다. 다행히도 근래들어 뉴라이트 역사관의 해악을 깨닫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의 중핵이라 할 난폭한 자유민주주의와 맹목적 경제성장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뉴라이트 학자들이 부쩍 교과서 개정을 통한 역사해석투쟁을 벌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특정 국가의 역사를 해석하는 지배적 관점이 그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질서를 규정짓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뉴라이트 학자들의 맹렬한 발호는 다소 의아하다. 하지만 내년이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고,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뉴라이트 학자들의 준동이 설명된다.

박근혜에게 자산이면서 부채이기도 한 그 아비 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산업화의 정초를 마련한 계몽군주로 복권시켜 박근혜에게 오롯이 역사적 자산으로만 남기겠다는 치밀한 정치적 복선이 뉴라이트 학자들에게 깔려있는 것이다. 설사 뉴라이트 학자들이 그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교과서 개정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교과서 개정의 최대 수혜자가 박근혜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깨끗이 세탁된 박정희를 통해 독재의 그늘마저 벗어버린 박근혜. 생각만해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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