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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과연 북한을 심판할 능력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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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과연 북한을 심판할 능력이 있는가?"

[한반도평화아카데미] <7강>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평화포럼, 인제대학교,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는 제2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일곱 번째 강의가 25일 서울 중구 저동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종석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이사는 이날 "북핵·평화협정, 대타결을 위하여: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대외정책이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변화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제재와 압박 수단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이 '심판자'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에 달려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북핵 포기와 체제 보장을 맞교환하는 9.19 성명에 북한이 아직까지 이행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아울러 북핵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이 해결되어야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관점을 버리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과 북핵 폐기가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 후 남북의 정당과 시민사회가 결합한 남북연합이 추진되어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바뀌는 현상을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고 이 전 장관은 덧붙였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2013년 체제와 한반도 평화전략'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2기 아카데미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인제대학원대학교에서 총 8차례 진행된다. 마지막 여덟 번째 강의는 11월 1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가 "2013년 체제, 한반도평화전략"이라는 주제로 진행한다.

강의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한반도평화포럼 홈페이지(☞바로가기)를 방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02-707-0615)하면 된다. 한반도평화포럼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는 연구자, 종교·시민사회 관계자, 전직 공직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제1기 한반도평화아카데미는 지난해 10~11월 5회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미국과 한국이 지켜보는 동안 북핵 능력만 강화됐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자료사진
북핵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쉬운 해답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이는 게 우리에게 이익인지를 판단해 보면 대타협도 가능하다. 북핵 문제와 평화체제를 말하려면 당위성이 아니라 그동안 핵문제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따져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판단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정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2007년 상황과 2009년 상황으로 나눠서 보자.

2007년을 보면 북한은 핵 포기 의사를 천명했지만 한편으로는 핵 보유 필요성도 가지고 있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사담 후세인이 핵무기가 있었다면 미국의 침공이 쉽게 이뤄졌을 리 없다. 결국 김정일은 핵무기가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핵을 보유해야겠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재래식 무기 경쟁에서 남한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남북의 경제적 차이는 공식적으로 16배가 넘는다. 북한의 물가를 고려한 실질적 1인당 국민소득을 따져보면 남쪽이 50배 정도다. 국내총소득으로 따져보면 남한 인구가 북한의 2배이니 100대 1이 된다.

남한의 국방비 지출이 국내총생산 대비 2.8%인데 이는 북한의 전체 GDP의 2.8배를 국방비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남한에서 북한군에 대한 억지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북측 입장에서도 재래식 무기 경쟁에서 남한과 미국을 이길 수 없으니 핵 보유론으로 가게 된다.

인류 평화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핵을 포기할 리 없다.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위험을 생각하면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정도가 되면 찬성하겠는가. 체제 안전이 보장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는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최소한 외부세력의 침입에 대비해 핵을 가져야 한다는 북한의 논리는 취약해진다.

그리고 북한은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자원이 없는 상황이다. 철광석 등 지하자원은 있지만 캐낼 수 있는 동력과 시설이 없고 수송 인프라도 부족하다. 외부적으로 시장경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북은 원전을 만들어서 값싸게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명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우리가 에너지를 지원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이다.

이게 2009년 이전까지 상황이었다.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이 있었다. 이후 북한에 핵 포기 의사를 물어보면 예전만큼 명료하지 않다. 반면 북이 핵을 보유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최근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나토(NATO) 공군기들이 공격에 가담했다. 이 또한 김정일에게 핵 없이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핵 포기 유인 역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2007년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특기할 사항은 북의 핵능력이 강화된 점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대외정책에서 일방주의를 추구해 동맹관계를 깨트렸다는 비난까지 받을 정도였지만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일어난지 불과 4개월 만에 2.13 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에는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를 통과시킨 것 하나뿐이다. 이마저도 중국과 북한이 경제협력을 시작해 효력을 상실했다.

반면 북한은 유엔 제재안이 나오니 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로 가겠다고 해서 지난해 농축 시설을 공개했다. 북핵 능력이 강화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기만 한 셈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절체절명의 문제였다면 미국과 한국은 왜 지켜보기만 했나. 노무현 정부는 보수언론으로부터 북핵 문제에 무능하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으면서 더 강박관념을 가지고 뭐라도 해보려 했는데 현재 오바마 정부나 이명박 정부는 '도발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말만 하고 있다. 그게 벌써 2년 6개월이다.

미국과 한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가시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북한은 우리의 제재범위를 벗어나 핵능력 강화를 위해 움직이게 된다. 다행인 점은 여전히 북한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서 핵 포기 의사를 완전히 거두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예 말을 안 하는 것보단 나은 상황이다.

"중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북핵 포기, 다만 수단이 바뀌었다"

그럼 중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자. 2007년과 2009년으로 시점을 나눈 이유는 사실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중국의 목표는 북핵 포기였다. 2009년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수단이 다를 뿐이다.

과거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중국은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다.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제재안에도 중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 이후 중국의 최고 외교안보지도자들이 모여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북핵 포기를 관철시키기 위해 압박하는데 동참하면서 북한의 붕괴까지 감당할 것인지 논의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정권교체까지 바라보고 있지만 중국은 북한 공산당 체제 유지가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북한은 중국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존재이지만 그런 점과, 중국이 북한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자식이 문제아라고 용돈을 안 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북한의 체제 유지는 중국에게 다른 모든 이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중동에서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다. 수십 년에 걸쳐 집권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혁명이었다. 중동 혁명을 바라로는 서방의 관점은 중국의 천안문에서도 재스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느냐로 귀결됐다. 중국 입장에서 재스민 혁명 하나로도 권위주의 공산당 독재에 대한 서방의 관심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북한 체제가 붕괴하면 북한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베이징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북한의 존재 자체가 이익이다. 2009년 여름부터 그런 생각이 분명해졌고,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회복하자라고 결정했다는 게 이후부터 행동으로 나타났다. 당시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격앙되어 있는 시절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평양을 방문해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다. 1990년대 세계 냉전 구조가 해체된 이후 북중관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경제협력협정이었다. 당시 분노한 이명박 정부 일각에서는 중국을 비판했지만 중국이 자신들은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했고 경제협력은 상거래, 원조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2009년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었다. 과거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중국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다자회담(6자회담)으로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2008년 경제위기 발발 후 중국이 경제위기 확산의 속도를 늦추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이른바 'G2'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됐다.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쉽게 억압할 수 있는 외교적 상대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래서 2009년 당시 북중 관계가 개선되는 것에 대해 쉽게 뭐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오바마 정부 역시 부시의 일방주의를 비판해온 터라 쉽게 제동을 걸지 못했다. 결국 중국은 대북 제제를 거부하지 않았으면서도 사실상 거부한 결과가 됐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제재 국면에 동참하고 있지만 북한을 흔들려는 의도를 반대하면서 국제사회에 건강한 파트너로 유도하는 게 목표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대미관계 역시 2007년까지는 협조 노선이었지만 지금은 비판적 협조 관계다.

▲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4일 평양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상무부총리(왼쪽)를 만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렇게 달라진 북중관계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이명박 정권이다. 얼마 전 방미했을 때도 중국에 문제가 있고 견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다. 혹은 중국이 천안함 사건에서 한국 측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누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 모른다. 다만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문제는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킬 의지가 있다는 판단과 침몰시켰다는 사실관계를 증명하는데 있다. '북이 그럴 수 있다'가 곧바로 '북이 그랬다'로 갈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이 우리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다. 중국 역시 북한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쪽이었는데 자신들을 북한 편이라고 몰아세우니 정말 북한 편이 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봐야 한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김정일이 민족을 사랑하는데 그럴 리 있겠냐'고 하겠지만 더 많은 이들은 북한이 무슨 능력으로 버블제트 기술을 갖고 천안함을 파괴시킬 수 있겠느냐고 한다. 내일모레 망할지 모른다고 하고 남한의 100분의 1 경제 규모의 나라가 그럴 수 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정보감시 기구들이 움직이는데 거기에 들어가서 버티다가 쏠 수 있겠냐, 그런 주장은 우리의 정보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이 싫어서 북한의 소행으로 보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의 수를 존중해야 하는데 이를 무조건 종북, 친북좌파로 몰고 가고 북한 소행이나 아니냐의 택일을 강요하는 게 현 집권세력이다. 매카시즘이 그렇게 몰아쳤다. 다른 국가들에도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면서 설득해야지 믿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겠나. 모든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는 우리 사회가 북풍몰이를 거부하고 합리성을 믿는 사회로 가는 증거로 보여서 희망적이었다.

한국이 그렇게 중국과 북한을 몰아붙였지만 북중관계는 전혀 다른 관계로 가고 있다. 과거엔 군사, 정치관계였고 경제는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원조 중심이였다. 하지만 올해 북중 사이에 2개의 경제특구 합의를 봤다. 나선 지역, 신의주 황금평 개발인데 이는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북중 경제지대 개발합작 연합지도위원회의 양국 위원장을 보면 중국은 우리의 산업자원부 장관 격인 상무부장이, 북한은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다. 북중이 경제협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중 협력에는 경제적 유인도 충분하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 수준으로 북한의 10배다. 그래서 중국 기업들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진출할 여지가 생겼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안하면 북이 손해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 2000년 이후 석유, 철, 금속 등 지하자원 가격이 국제 시장에서 많이 뛰었다. 북한의 무산철광 같은 경우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지금은 가치가 더 높아졌다. 함경남도 단천은 세계적인 철금속 지대다. 저도 통일부 장관 시절에 북측에 단천에 남북 경제공업 특구를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우리 정부에 앞서 자원외교에 나선 중국에 북한 역시 상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셈이다. 나진-선봉 지대 역시 중국의 만주 지역과 연안 지역을 연결하는 바닷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중국은 북한의 노동력과 노동시장, 물류 기지를 사용하는 대가로 북한 체제를 안정, 발전시킨다는 목표에 따라 경제특구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북한 사이에 경제적으로 구조적 연결성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 지난 6월 북한 황금평 특구 착공식 장면.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 말로는 '북핵 해결'이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져"

미국을 보자. 미국의 목표는 북핵 불용이다. 그 수단은 압박 및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북핵을 포기시키겠다는 언술은 확실했다. 그런데 의지는 불분명했다. 9.19 공동성명에서 북핵 포기의 조건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에너지 지원의 맞교환이었다. 하지만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단 며칠 후 미 재무부는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중심으로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하고 있다며 다시 제재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BDA 문제가 미국의 이해관계에 불가피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절박하다는 걸 강조했지만 부시의 일방주의 노선은 지속됐다. 오바마는 부시의 일방주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았지만 북한이 2009년 4월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제재 일변도로 돌아섰다. 이후에 북한과 대화를 해도 조건을 달았다. 지금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앞선 사전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한편으로 한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데, 그 대상이 노무현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소리를 듣고 불협화음을 빚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동맹을 중시하겠다는 오바마를 만나 북한과 대화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나와서 일이 꼬였다. 현재 워싱턴은 북한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 문제를 풀기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 정부가 나서서 그래도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따라오는 게 미국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다. 한미동맹 노선이 북핵 문제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말로는 해결 의지가 있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한 일을 보자. 지난해 1월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만나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다.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한 적도 없고 오히려 조건 없는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진정성을 보이라고 한다. 그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천안함 사태뿐이다.

또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공약을 해석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태가 터지니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6자회담 재개도 어렵다고 했다. 그런 모순에 대해 국민들이 정부에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결국 지금까지 북한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억지로 만든 게 남북 비핵화 회담과 이에 따른 북미대화다. 하지만 이는 이미지 정치고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는 6자회담에 나가기 위해 존재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있는 직함이고 지난 2003년 6자회담이 열린 이래 모든 6자회담 대표는 북한과 비핵화 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 정부는 '북한과 처음으로 비핵화 회담'을 했다며 국민을 속이고 있다.

2007년 10.4 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종전선언까지 합의를 봤다. 저 역시 NSC 차장 시절 2005년 8월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와 임동옥 통일전선부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과 함께 몇 시간 동안 회담을 열어 남북 정상회담과 북핵 포기 문제를 논의했다. 임동옥 부장은 당시 핵 문제 때문에 자신이 김계관 당시 6자회담 대표를 만나서 얘기를 듣고 왔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인데 남북 비핵화 회담이 올해 처음 열렸다고 한다. 그렇게 말을 어지럽히면 안 된다.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북한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6자회담 재개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제재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나오겠다면 우리가 심판관을 할 수 있다. 레버리지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이 고통스럽나? 대북 제재는 이미 다 뚫렸다. 지난 여름 중국 장백에 가서 북한의 혜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렇게 전깃불이 오랫동안 켜 있는 것을 처음 봤다. 평양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수차례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대북제재의 효력이 상실되었는데 우리가 심판할 능력이 있나.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려고 하는 이유는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고 6자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져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불량국가로 낙인찍은 북한을 자신들이 도와준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북한에 대화를 촉구했을 것이다. 북한 역시 2012년 강성대국 실현과 체제안정을 위해 경제발전이 필요하다.

진정성을 보이라고 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수용 의사까지 보였는데 한국과 미국은 그 이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6자회담이 가동되면 북핵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무런 영향력도 없이 북한을 막고만 있으면 북한은 거리낌 없이 핵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6자회담에 나갈 의사만 있다고 읊조리면 된다. 우리는 꼼짝 못한다. 이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결국 한국의 대북관계는 통로를 잃었고 대중관계 역시 이견을 보이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는 북핵 문제가 진전이 안 되면 나서서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안 되고 있다.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신뢰구축과 평화협정은 함께 가야 한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짐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제재 압박 효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희망의 끈이 있다면 미국의 북핵 불용 노선과 북한도 말로나마 핵 포기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북핵 문제 해결에 유일한 공유 지점은 9.19 공동성명의 이행이 될 수밖에 없다.

9.19 공동성명의 틀에서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북핵이 해결되어야 평화체제가 온다는 관점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가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쪽으로 거꾸로 갈 필요가 있다. 즉,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계별로 보면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합의한 상태에서 핵 포기 대가로 미국이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교환하는 과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실행하기로 한 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별도포럼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후 북핵 불능화, 농축 우라늄 시설 동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우선 조치 및 북핵 최종 포기와 에너지 지원을 교환하는 '프로세스 A'와 정전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프로세스 B'가 함께 간다는 계획이다.

'프로세스 A'와 '프로세스 B'를 북핵 해결 단계 초반인 신뢰 구축 단계에서 같이 가야하는 이유는 관계 정상화 없이 평화체제도 힘들기 때문이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되는 시점에서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큰 틀에서 남북이 주체가 돼 체결하는 평화 협정에 북한과 미국의 불가침 협정이 부속사항으로 들어가고 이후 남북 경계선 관리나 군비 통제 등을 논의할 수 있다.

이 단계가 되면 우리는 과감하게 남북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초기의 남북연합은 정상회담부터 장관급 회담까지 각종 회담이 정례화되고 관리하는 상설 기구가 만들어지는 초보적 단계다. 이게 발전하면 좀 더 높은 단계의 결합이 이뤄지는 식으로 남북연합의 모습을 갖춰나가도록 해야 한다. 나중에 남북관계가 보다 높은 결합 단계에 가서야 추진한다고 하면 지난 수십년 동안 겪었던 적대와 갈등의 악순환 고리가 부활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했던 남북연합의 가장 낮은 형태에서 시작해 시민사회와 정당이 결합하고,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가 결합되는 방식의 남북연합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바뀌지 않으려면 정당과 시민사회의 결합이 필요하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는 다르다. 평화체제는 장기적인 과정이고 평화협정은 평화체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필수적인 단계다. 협정을 맺는다고 체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협정의 문제를 우리는 그동안 소극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군사적 압박이나 대북 제재로 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북한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평화체제 구축과 경제적 유인밖에 없다.

철조망을 뚫고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비전으로 봐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분단현실은 1953년 정전협정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러한 노력을 하루아침에 정치적으로 뒤집어버리는 세력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분단문제가 우리의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는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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