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1>"목숨 내걸고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도 못 주는 국가라면…" ☞<2>"병역을 '보편적 의무'로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바로…" |
이미 조윤호님, 박가분님이 '군인 최저임금'과 관련한 두 편의 글을 써주셨다. 나는 두 글에서 이미 예고된 바와 같이 현역병을 대한민국 헌법(이하 헌법이라고 한다), 법률 및 판례에 비추어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공익근무요원, 전/의경 등은 비록 유사하나 일부 다른 법적 쟁점이 있어 편의상 현역병으로 한정한다). 이 글은 현역병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된 서울행정법원 2010. 9. 16. 선고 2010구합21716 사건(이하 이 사건 판결이라 한다)에 대한 평석(판례에 대한 일종의 비평)의 형식을 취할 것이다.
군인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하나의 법적 쟁점이며,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된 만큼 최대한 관련 근거들을 상세하게 다루어보려 한다. 따라서 이 글이 헌법, 법률 및 판례를 가능한 원문 그대로 소개해 글이 길어진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이하에서 노동자 대신 법률용어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 또한 양해해 주기 바란다).
대법원은 "군인중의 사병은 헌법과 병역법 기타 법령에 근거하여 국가의 국토방위사무에 종사하는 자로서 그 노무의 내용이 단순한 기계적, 육체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할 것이니 이를 공무원이라고 볼 것이고 따라서 사병의 횡령소위에 대하여 본조를 적용한 것은 정당하다(대법원 1969.9.23. 선고 69도1214 판결)"라고 판결하여 현역병이 공무원임을 명백히 하였고, 한편, 대법원은 "구 근로기준법(1997. 3. 13. 법률 제5309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86조는 업무상 재해로 인한 보상을 받을 권리는 퇴직으로 인하여 변경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공무원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같은 법 제14조 소정의 근로자이어서 공무원연금법 등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공무원에 대하여도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원칙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야 하므로(대법원 1998. 8. 21. 선고 98두9714 판결)"라고 판결하여 공무원을 근로자라고 인정하였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결 중 하나가 바뀌지 않은 한 3단 논법에 의해 군인중의 사병은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모두 근로자이니 결국 군인중의 사병은 근로자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 판결은 현역병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는바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은 2011. 10. 9.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판결이 많으면 사회가 불안해진다"라고 말하였다. 위 각 대법원 판결은 예외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이 사건 판결은 위 각 판례에 배치된다 할 것이므로, 상급심에서 뒤집히길 기대한다).
이 사건 판결은 현역병에 대해 고용보험법을 적용할지 여부를 다툰 사건으로,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이진만)는 "① 헌법 제39조 제1항은 모든 국민에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국가는 병역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병역의무자에게 구체적인 현역병 복무의무를 부과하고, 징집된 현역병 입영대상자는 입영하여 복무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역병의 복무는 헌법상 부과된 병역의무 이행행위로서 기본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한 행위가 아니므로, 이를 고용보험법이나 근로기준법이 상정하고 있는 근로행위라고 볼 수 없다(군인보수법 등 관계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군복무에 대한 대가로서 급여가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병의 군복무행위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② 고용보험법의 입법취지는 헌법 제32조 제1항에 규정된 근로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인데, 현역병의 복무행위는 헌법 제39조 제1항에서 부과된 병역의무의 이행행위일 뿐, 헌법 제32조에 규정된 근로의 권리에 따른 근로행위라 볼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보면, 현역병 복무자들이 복무기간의 종료 후 실업 또는 실직으로 인한 생활의 안정을 보장받지 못할 처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역병 복무자를 고용보험법의 보호대상인 근로자에 포섭시킬 수는 없다"라고 판결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0. 9. 16. 선고 2010구합21716 사건). 비록 ①, ②로 나누었으나 법원은 기본적으로 현역병의 복무는 의무이행행위이기 때문에 근로의 권리에 따른 근로행위가 아니고, 따라서 현역병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하였던 것이다. 위 논리는 매우 중요한 전제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의무이행행위는 근로의 권리에 따른 근로행위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장교로 임용되기 전인 군장학생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쟁점인 사건에서 "군인사법 제62조에 의한 군장학생의 경우 장교로 임용되기 전에는 피고와의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없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을 위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이, 원고가 반드시 장교로 임용된다고 볼 수 없고, 또 원고가 7년 동안의 의무복무를 조건으로 학사과정 대학장학생에 지원하여 합격하고 그에 따라 피고가 원고에게 대학 4년 동안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지급하였다고 하더라도 아직 원ㆍ피고 사이에 근로계약이 성립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 원고의 일실수입청구를 배척한 것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7.9.6. 선고 2005다39808 판결)"라고 판결하였다. 위 판례의 취지에 의하면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장교는 그가 임용이 된 때로부터는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위 판례를 "장교는 임용되면 의무복무를 해야 하지만 그 것이 의무이행행위는 아니다"라거나 "장교는 임용되면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하지만 이로 인한 행위가 근로행위는 아니고, 따라서 근로자는 아니다"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우므로, 임용된 장교의 복무행위는 의무이행행위이자 근로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장교의 복무행위는 의무이행행위이자 근로행위이지만 현역병의 복무행위는 의무이행행위이나 근로행위는 아니라고 볼 근거가 있는가? 장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면 헌법 제39조 제1항(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은 그 근거가 아님은 명백하다. 필자는 헌법 제39조 제1항, 병역법 제3조 제1항 전문(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의 각 규정이 장교와 병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각 의무의 대상을 모든 국민 내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이라 규정하고 있는 점, 병역법 제5조 제1항 제1호가 현역을 "징집이나 지원에 의하여 입영한 병(병)과 이 법 또는 「군인사법」에 따라 현역으로 임용된 장교(장교)ㆍ준사관(준사관)ㆍ부사관(부사관) 및 무관후보생(무관후보생)"이라고 규정하여 병과 군인사법에 따라 현역으로 임용된 장교를 둘 다 현역으로 나란히 분류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장교의 복무행위와 현역병의 복무행위를 달리 평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장교의 복무행위와 현역병의 복무행위를 달리 볼 수 없다면 대법원 판결과 서울행정법원 판결 중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는 하나의 행위가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는 행위에 해당함과 동시에 헌법상 의무이행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볼 것이냐의 문제로 헌법적 결단을 요하므로 헌법, 법률 및 현재 판례의 태도에 비추어 논의하려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위와 같은 경우가 헌법, 법률 및 대법원 판례 중 더 있는지 살펴보아, 더 발견된다면 대법원 판결과 같이 헌법적 결단을 하는 것이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의 말처럼 사법체제의 혼란을 줄인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경우가 있다.
헌법 제32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 제32조 제2항 전문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32조 제1항의 "근로"와 같은 조 제2항의 "근로"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니라면, 근로행위 자체가 헌법상 권리이자 의무의 성격을 갖는다 할 것이다.
또한,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국세기본법 제15조 전문은 "납세자가 그 의무를 이행할 때에는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국세기본법은 납세의 정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어 다음(Daum) 국어사전을 참조하면, 납세의 뜻은 "세금을 냄"이다. 즉, 납세는 세금을 낼 의무를 이행하는 행위, 의무이행행위이다. 한편, 세금을 내는 행위는 자신의 재산을 (강제로) 과세기관에게 주는 것인데, 이러한 "재산을 주는 행위"는 재산권 중 일부에 해당한다(재산권은 재산을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
이와 같이 납세는 재산권의 행사(내지 제한) 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오래 전부터 납세라는 의무이행행위를 규율하는 세법에 관하여 재산권 제한/침해 여부를 심사해왔는바, 이를 보아도 대법원, 헌법재판소가 납세라는 의무이행행위가 재산권 행사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할 것이다(대법원, 헌재가 세법이 재산권의 제한/침해 여부를 다룬 판례는 너무 많고 다양해 소개를 생략한다).
이와 같이 헌법,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근로(행위)나 납세(행위)에 대해 헌법상 권리행사의 성질과 헌법상 의무이행의 성질이 병존한다는 취지로 보고 있다 할 것인바, 이러한 병존적 성질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한국 사법부의 축적되어온 법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
요약하면, 대법원은 현역병을 공무원으로, 공무원을 근로자로 각 보고 있는바, 현역병은 당연히 근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현역병의 복무행위가 의무이행행위라는 이유로 근로행위가 아니라고 하나(A이기 때문에 B가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장교의 복무행위가 의무이행행위이자 근로행위로 본 바 있고(A이자 B이다), 대법원의 입장이 현역병에 대해 달라질 이유를 찾기 어렵다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이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요건에 관한 판례를 소개한다. 아래 판례의 각 요건 중 근로자 부분에 현역병을, 사용자 부분에 대한민국을 넣고 한번 현역병이 근로자에 해당할지 검토해주기 바란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위에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②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③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④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와, ⑤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⑥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⑦ 근로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⑧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07. 9. 7. 선고 2006도777 판결 등 참조, 문자 ① 부터 ⑧은 필자가 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현역병의 업무 내용을 대한민국이 정했는가(① 요건)?, 현역병의 근무시간과 장소를 대한민국이 정하고, 현역병은 이에 구속을 받는가(② 요건)?, 총기는 현역병의 소유인가, 대한민국의 소유인가(③ 요건)? 위 판례의 요건에 의할 때 현역병은 근로자인가? 병역의무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이해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현역병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