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양자 관계와 국제 정세에 대한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며 "평등과 상호 신뢰, 상호 지지에 기반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류 대변인은 양국이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 가격에 합의했다면서 에너지 협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틴의 방중 목적은 우선 경제로 풀이된다.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난 푸틴은 양국 관계가 '역사상 최고'라면서 경제협력을 한층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은 회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 뿐 아니라 공동 탐사와 개발에서도 협력해야 한다고 하는 등 에너지 분야에서의 더욱 긴밀히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간의 천연가스관 사업(PNG)에 대해 푸틴은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왔다"고 말해 논의의 진전을 암시했다. 가스관 사업은 양국 간 가격에 대한 입장이 달라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푸틴의 노림수는 단순히 경제협력만이 아니다. 푸틴은 러시아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넓혀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의 국가전략과도 부합한다. 러시아는 2012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극동 지방에서 주최하는 것을 계기로 아시아 지역에서의 역할을 넓혀 간다는 계획이다.
중국 <신화> 통신이 보도한 중러 공동 코뮈니케(공동성명)는 "양국은 유엔과 안보리가 국제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돼 있다. 통신은 코뮈니케의 내용에는 세계의 다극화를 진전시키고 국제관계를 더 민주적으로 만들 것, 국제법을 최우선으로 해 공정하고 이성적인 국제정치‧경제 질서를 확립할 것 등이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통신은 양국이 코뮈니케를 통해 에너지‧식량 안보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핵문제와 다른 지역 이슈들을 다루는 데에서도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대해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발전, 협력을 위한 중요한 대화의 장이라고 양국이 공히 평가했으며, 경제적 거버넌스와 국제 금융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G20을 통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같은 내용으로 볼 때 양국 간에는 유럽 재정위기와 '아랍의 봄' 사태 등 주요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긴밀한 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와 함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현재 국제정세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는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 왔다.
다음은 푸틴 총리 방중의 의미에 대한 러시아 문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고 있는 푸틴 러시아 총리. ⓒAP=연합뉴스 |
■ 박상남 한신대 교수
국내적으로는 대권 행보라는 의미를 갖는 푸틴의 이번 방중은 경제적으로 보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올라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대외전략 측면에서는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된 러시아의 국력을 보완해 미국을 견제할 동맹국으로서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와는 반대되는 측면도 있다. 중국의 부상이 인접 국가인 러시아에 꼭 좋은 일만은 아니며 견제할 필요도 있다. 러시아가 중국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자신에게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석유나 가스 수출은 경제적 효과도 있지만 자원 의존도를 높인다는 의미도 있다. 에너지와 첨단기술 등 포괄적 협력 강화도 중국의 대(對)러시아 의존도를 높이게 하기 위한 행보다.
그런데 러시아는 그동안 동아시아에서 소외됐고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의 영토분쟁중인 쿠릴열도를 방문한 것이나 이번 푸틴의 방중도 러시아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방법상으로는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파괴력이 있다고 본 것 같다.
러시아의 이같은 행보는 한국에 나쁠 게 없다. 중-러 대(對) 미-일 동맹이라는 보수적 시각에서 보면 대립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는 분명 중국을 견제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동아시아로 들어올수록 미중 간의 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완충적 세력을 얻게 되고, 외교적 옵션에 하나의 카드가 더 늘어날 것이다.
■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
서방 학자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도 갈등 요소도 있다. 극동 러시아 지방의 인구는 7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중국 동부지역은 1억 명이 넘는다. 극동 지역에서의 경제 성장,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이슈 때문에 러시아는 당분간 중국과 경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지나친 갈등은 관리하는 수준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 보면 러시아 극동 지역은 사회 인프라가 형편없는 수준이고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중국의 투자를 기대해야할 상황이다. 푸틴 방중의 제일 큰 목적도 가스관에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러시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논한 건 중국의 북한 지역에 대한 경제 협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중국의 가스 가격 절감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치 측면에서 러시아는 앞으로도 중국보다 앞서 나가는 포지션을 취할 것 같지 않다. 아직까지는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중국보다 가진 카드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일정한 신뢰를 획득하면서 중재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중국이 지역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되려고 하는 반면 러시아는 반대로 세계적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 이슈를 점검해야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세안(ASEAN)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자국의 위상을 높이고 극동 지역에 대한 투자를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결국 세계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경제적 경쟁을 벌이면서도 러중관계 협력은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 동안 북에 대한 태도가 압박하는 기조를 띄어왔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의 효용이 없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 및 중국과 경제협력을 하는 것에 대해 한국 쪽에서는 놓치고 있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