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지난 겨울의 홍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문제가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김여진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였고, 작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우리가 맛볼 수 있었다.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국은 아직은 길거리와 현장에서 영웅이 등장하는 나라이다. 조금 큰 눈으로 보면, 룸살롱과 골프장에서 중요한 것을 결정하는 한나라당에 맞서, 대중들이 길거리에서 무엇인가를 바꾼 그런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사람들이 지적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어딘지 밀실에서 뭔가 결정한다는 그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이런 흐름 속에서 2011년의 한국을 뒤흔든 세 개의 집회는 한진중공업, 반값등록금 그리고 강정마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연대의 양상과 규모는 다르지만, 세 가지 모두 나름대로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자체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에 사람들이 지지의 힘을 얻으면서 여기까지 온 사건들이다.
정치의 눈으로 보면, 세 가지 모두 정치적 사건이고, 경제의 눈으로 보면 또한 경제적 사건이기도 하다. 반값 등록금이 경제적 문제라는 건 당연한 것이고,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통제 없이 진행된 정리해고는 물론이고, 지역 제조업의 공동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정마을 사건 역시 한편으로는 군사기지냐, 평화도시냐, 그런 군사 문제 같지만 제주도 내에서 대해서 어떤 경제적 해법을 찾을 것인가, 생태적 경제냐 아니냐, 그런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서 아직은 사회경제적인 참여와 양상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서 두 사건의 전개과정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양상만 본다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국회의 권고안으로 인하여 해법에 한 발 더 나아간 상태이고, 강정마을은 점점 더 경찰력과 주민들의 힘이 물러서지 않고 점점 더 팽팽하게 부딪히는 양상이다.
물론 보수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양쪽 다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없던 문제를 일으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경험적으로 본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간다고 해도 그 지역 주민의 상당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 그곳에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지 주민들 혹은 지역 여론이 어떤지에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바로 경찰이다. 양상만을 놓고 본다면, 부산지역은 보수언론이 얘기하는 것보다는 희망버스에 대해서 우호적이었고,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강정마을의 경우는 지역 언론이 이 건에 대해서 비교적 냉담했다는 것이, 내가 몇 번에 걸쳐 제주 지역을 방문하면 느낀 점이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 자체에 대해서 아예 무관심한 것인지, 이렇게 좁혀서 질문을 하면 후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단 11%만 투표에 참가했던 제주도의 주민투표 이후로, 특별히 제주도 내의 여론이 더 많이 움직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런 현실적 상황이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이 공사를 강행하게 되는 여건을 형성하는 것 아닌가?
따져보면, 경제위기의 시대에 일자리의 문제가 개인들에게 보다 더 직접적인 설명력을 가지고 있고, 지역 기업이 철수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1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정마을의 경우는 그렇게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경제 이슈라기 보다는 생태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그리고 평화라는 장기적인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런 '외부세력'과 주민 등 직접적 이해당사자 사이에 지금의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정당 정치의 영역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양상은 좀 다를 수 있지만, 강정마을의 경우는 그렇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뭔가 하는 듯한 시늉만 낸 것 외에 민주당이 진짜로 뭔가 한 것 같지는 않다.
세계 자본주의가 지난 10년과는 다른 시스템을 찾기 위해서 지금 요동 중이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부자들과 토건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지난 10년과는 또 다른 사회적 합의와 원칙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도 좋든 싫든, 자신들의 삶을 지키고 최소한의 존엄성을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정권을 만들어냈던 한나라당 사람들이 기획하고 상상했던 그 세상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들이 부자감세와 토건으로 상징되는, 결국은 지역토호들과 손을 잡고 가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라면 다음 총선과 대선을 치루면서, 상대방 진영에 정치적 권한을 넘겨주게 될 확률도 매우 높다. 이제는 큰 고비를 넘겨서 해결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 한진중공업 사건 너머로 강정마을을 생각하면서, 차이점 하나를 여러분들과 같이 고민하고 싶어졌다.
지역간 연대, 계층간 연대, 이런 것들의 씨앗은 우리가 이미 지난 수 년 동안 보았다. 반값 등록금 투쟁을 보면서, 미흡하지만 세대간 연대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 수 있을지, 조금은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해법은 잘 모르겠지만, '지역내 연대'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그런 질문을 좀 해보고 싶다. 얕은 수준이나마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 문제와 관해서 이게 이루어졌고, 강정마을 문제에 대해서는 제주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좀 크게 본다면, 지역 자치, 지역 경제와 지방 토호 이런 문제들이 개입하는 문제지만, 연대라는 관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된 것 같다.
좁게 보면 강정마을의 문제고, 넓게 보면 제주도라는, 육지와는 조금은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 경제에 어떤 발전의 전망을 가질 것이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정권, 어떻게 수도권 집중을 막을 것인가만 고민을 했지, 지역 내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인가, 그런 질문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강정마을의 원활한 사회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또 그리고 점점 더 지역 차원에서 제기될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지역내 연대'라는 질문을 우리가 해봐야 할 것 같다. 환경운동의 경우, 지역 내의 포괄적 이해를 끌어내지 못하면, 그 때에는 그곳을 지켜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또 다른 개발 사업으로 무너지게 되는 경험이 많았다. 여러 가지 측면의 사회적 연대 중에서, 우리는 지역내 연대에 대해서는 너무 고민을 덜 하는 것 같다.
▲ 제주 강정 마을 앞바다에 펼쳐진 구럼비 바위. 이곳은 독특한 용암지대로 올레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해군은 지난 6일 폭약을 사용해 해안가 바위를 깨트리는 발파작업을 진행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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