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김금자(가명) 씨는 지난 7월 회사에 제2노조가 들어서면서 도리어 임금이 깎였다. 제2노조와 사측이 상여금의 50%(3만7600원)를 삭감하기로 한 임금협상을 체결한 탓이다. 김 씨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온 협상안에 제2노조는 서명만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 씨의 사업장에서는 새로 생긴 기업별노조가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면서 독점교섭권을 얻었다. 반대로 김 씨가 속한 기존 노조인 전국톨게이트노동조합은 서울사업장에 대한 교섭권을 잃었다. 전국톨게이트노조 서울지부 소속인 그는 허탈한 심정으로 김포, 구리, 성남 등 노조 내 다른 지역 사업장에서 임금·단체협상이 체결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국톨게이트노조 서울지부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자 그동안 사측의 지원을 받아왔던 상조회가 제2노조를 만들었다"며 제2노조가 사실상 어용노조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회사의 강압과 회유를 못 이긴 조합원들이 상당수 노조를 탈퇴하고 상조회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전체 직원의 80%에 달하는 조합원을 확보했던 기존 노조는 차차 세를 잃었다.
전국톨게이트노조 관계자는 일례로 "회사는 비조합원들만 (차량이 적게 들어오는) 가장자리 요금소나 일이 쉬운 사무실에 배치했다"면서 "반면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조합원들은 힘든 요금소로 쫓겨났고, 노조를 탈퇴해야만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사고과 제도에서 조합원들을 교묘히 차별한 사례도 지적했다.
"톨게이트 모니터링 제도가 있어요. (회사가 보낸 사람이) 직접 톨게이트를 지나가면서 직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따르는지 평가하는 거죠. '어서 오십시오'가 30점, '안녕히 가십시오'가 25점, 잔액 교부가 또 몇 점. 이런 식이거든요. 그런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점수가 깎이면 각서나 시말서를 쓰게 하면서 비조합원은 봐줍니다."
사측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기존 노조 탈퇴를 유도하거나,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노총은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총회관에서 이 같은 사례를 공개하고, 이 중 5건을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대구에 있는 한 택시회사는 사납금이 밀린 택시운전기사 중에 기존 노조 조합원에게만 사납금을 내지 않으면 퇴사시키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제2노조 조합원들에게는 휴가와 사납금 수납액을 자유롭게 정하도록 허락했지만 기존 노조 조합원들에게는 한 달에 연차휴가를 1일만 쓰도록 강요했다. 신차 배차도 제2노조원에게만 했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 육가공업체 노조는 지난 7월 사측에 단체협약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사측은 대형 마트에 파견근무 중인 영업·판매직과 사무관리직 등 60여 명을 모아 제2노조를 설립하고 제2노조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기존노조의 노조지부장을 배송직에서 생산직으로 전환배치하고 퇴사를 강요해 회사를 그만두게 했고, 조합원들과 개별면담을 진행해 기존 노조에서 탈퇴할 것을 강요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새로 노조가 생긴 사업장 10군데 중에 4군데는 어용노조로 파악하고 있다"며 "택시업체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고용한 톨게이트업체 등 주로 열악한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측이 의도적으로 교섭권을 박탈해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자 지배개입에 의해 설립되는 사용자 노조를 철저히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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