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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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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 셈인가?"

김민웅의 세상읽기 〈232〉

<레미제라블(Les Miserable)>의 주인공 장발짱의 머리는 길었을까 짧았을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답은, 장발로 짱이니까 당연히 머리가 길었을 것이다? 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장발 짱'이 아니고, '장 발장(Jean Valjean)'입니다.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쳤다고 19년의 옥살이를 시키는 가혹한 전근대적 사회체제의 희생자의 인생유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공화정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던 혁명기의 프랑스라는 거대한 역사의 맥락과 함께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모두에 장발장의 머리길이를 문제 삼았던 것은 그냥 우스개 소리로 해본 것이 아니라, 더 밀고 나가보면 죄수의 머리길이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근대적 감옥체계가 굳건해지기 전까지, 죄수들은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오늘날 죄수의 머리를 깎고 죄수복을 입히고 수형번호로 부르는 것과 대조됩니다.
  
  머리카락을 손질해주지 않는 것은, 그렇게 되면 몰골도 봐 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더군다나 열악한 감옥시설에서 머리에 이가 들끓게 되어 그것으로도 죄수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감옥 안에 있던 장발장의 머리는 필시 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 감옥 밖으로 나오면 그는 자신이 죄수였던 것을 감출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의 탈옥으로도 그가 자신의 신분을 은폐할 수 있었던 까닭도 머리를 깎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근대로 넘어오면서 죄수는 머리가 삭발당하고 줄무늬의 죄수복이 입혀지고 수형번호가 매겨지면서 사회적 신분과 정체성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개성과 사회적 위상, 그리고 이름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번호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감옥 안에서의 권력질서를 파헤쳐나갑니다. 죄인들을 교정해나가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안에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권력의 고도의 억압체계이며 본래의 인간성을 말살시켜나가는 과정이라는 비판이었습니다. 근대 감옥은 그래서 사회적 범죄의 교정에 실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결국 근대사회의 권력이 가진 야만성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습니다.
  
  근대국가의 권력은 수형자의 머리를 깎아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을 박탈할 수 있고 인간을 번호로 취급할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국가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공화정의 성장이 만들어 낸 힘입니다.
  
  평택에서 국방부의 조처가 법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공화정이 살아 있다면, 법을 넘는 권력은 행사될 수 없을 것입니다. 농민의 권리가 함부로 박탈되는 자리는 감옥이 됩니다. 농민들의 목소리를 멸시하는 자리는 권력의 야만이 자행되는 자리입니다.
  
  풍요한 농지인 그 평택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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