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의대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2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간의 사정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이날 방송은 피해자의 뜻에 따라 음성변조 없이 이뤄졌다. 성추행 피해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방송된 것은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가해자 측이 퍼뜨린 악의적 헛소문 때문이다. 피해자 측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사실 관계를 분명히 하기로 결심한 것. 피해자는 이날 방송에서 "가해자들과 사귀는 관계였다든가 잠자리를 한다는 소문이 돈다"며 이런 소문을 가해자 측 변호사가 퍼뜨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가해자들이 학교와 병원에 피해자가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은 실제로 이런 내용이 담긴 설문지를 동료학생들에게 돌렸고, 약 60명이 응답했다. 설문 내용은 "피해자가 사생활이 문란했느냐, 아니냐"라며 묻는 방식이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2차 피해를 낳는다는 게 법률가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피해자는 이날 방송에서 가해자들이 돌린 설문지에 동료 학생들이 서명을 한 이유가 "가해자들이 구속되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고 이야기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설문조사가 6월 중순께 이뤄졌지만 자신은 두 달 뒤에야 알게됐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도 저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다. 전에 학교에 갔을 때 제가 인사를 해도 애들이 저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저는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제가 피해자인데 왜 남들이 저한테 이럴까 생각했는데 이런 설문지가 원인이 됐다고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가해학생 부모들이 교수들을 찾아가서 이 설문지를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해서 교수들도 그쪽 주장을 믿고 있다"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피해자는 "8월 19일 교수가 강의실에서 '가해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라고 얘기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 측이 설문지에 서명한 학생들의 학생증을 복사해 두는 치밀함까지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 가운데 하나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중 한 명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왔다. 사건 발생 직후, 해당 학생이 "미안하다. 후회하고 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피해자는 "나머지 두 명은 사진하고 타액 DNA가 나와서 확실한 물증이 있는데 부인하고 있는 학생의 경우에는 제가 기억하는 것과 진술 자료들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지 부인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는 가해자 측이 합의를 강요하기 위해 피해자의 집을 찾아오려 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피해자 가족은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 위험 때문에 불안해하고 상처를 받았다는 게다.
왜 남학생 세 명이 가는 여행에 여학생이 혼자 참가했느냐라는 세간의 쑥덕거림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대답했다. 피해자는 원래 자신 말고 다른 여학생이 같이 가는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하지만 출발 당일 날 차가 저희 집 앞에 왔는데 거기에 그 애(함께 가기로 한 다른 여학생)가 없어서 물어보니까 전날 다른 약속이 있다고 못 오게 됐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좀 당황하긴 했지만 6년 동안 정말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워낙 친했던 애들이고 자주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그냥 같이 가게 됐다"라며 "남자가 아니라 정말 친했던 친구들과 같이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주변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모아보면, 이번 사건에 대한 징계는 '출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가해 학생들이 곧 학교에 돌아올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피해자는 "그건 정말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저는 그들과 학교를 다닐 자신이 없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피해자는 "저는 3년 된 남자친구가 있고, 남자친구 역시 그런 소문 듣고 매우 속상해 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그런 악의적인 정말 근거 없는 소문들을 얘기하는 것조차 그리고 믿는 건 더더욱 상상을 할 수가 없다"라며 "그게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된 큰 이유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성범죄자는 의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인 최영희 민주당 의원도 출연했다. 이런 법안에 대해 의사협회가 자율조정에 맡겨달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최 의원은 "자율조정을 믿지 않는다. 국회를 보라"라고 말했다. 최근 국회가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킨 것을 가리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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