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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배의 참맛을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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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배의 참맛을 보는구나

[안병권의 고향보따리]<29> 경북 영천 안홍석 배

맨손의 마법사 맥가이버를 아시나요?

1980년대 중반부터 방영된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

대부분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슈퍼맨이나 600만불의 사나이, 베트맨 등 초능력을 가진 상상의 존재들이었지만 맥가이버는 보통사람이었다. 하물며 그는 온갖 강력한 신흥무기로 무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폭력보다는 빨간 작은 군용 칼을 지닌 채 주변의 간단한 도구와 과학적인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했으니 그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 속의 맥가이버는 인간미와 재능이 조화를 이룬 존재였다고 할 수 있겠다.


▲ 리처드 딘 앤더슨은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상을 잘 소화했고 지금도 내게는 아련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해결사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사물에 대한 이해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물리적, 화학적 원리를 성찰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우였다. ⓒ안병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0년 여름, 경북 영천에서 현대판 맥가이버, 고경면 창하리 용수농원 안홍석 대표를 만났다. 세상을 들여다 보고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방법이 달랐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나는 푹 빠져들고 말았다.

▲ 용수농원 안홍석 대표(63) ⓒ안병권

"저 새끼 저거 완전 사기꾼!"

어느 해인가, 농업인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던 안홍석씨의 귀에 "저 새끼 저거 완전 사기꾼!"이란 말이 들렸다. 그날 어린 배나무를 1년에 4~5m 키운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반응이다. 수강생 자리에서 대놓고 나온 비아냥이었지만 속으로 받아들이고 웃고 말았다. 엄지손가락 정도의 두께밖에 안되는 어린 배나무를 1년 만에 5m이상 올라가게 키우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했고, 나무의 입장에서 보더라고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보통의 상식에서 배나무는 1년에 1m~2m정도 자라는게 맞는 일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30년 동안 더덕을 키워온 이웃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린 더덕에 긴 나무막대를 꽂아 지주로 삼아 더덕이 타고 올라가게 하니 키가 훨씬 커지고 수확량도 많아진다고 했다. 글도 모르고 숫자도 모르는 아주머니였지만 자연의 지혜에서 얻은 관찰의 결과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흘려 들었지만 안홍석씨는 일리가 있겠다 싶어 배나무에다 적용하기 시작했다.
▲ 사진 한가운데 높이 솟은 나무가 1년 큰 나무다 ⓒ안병권

▲ 나무 밑둥 모습과 엄지손가락 굵기의 어린 배나무다. 이게 5m이상 한껏 커버린 것이다 ⓒ안병권

어린 배나무에 6m정도 되는 대나무를 세우 묶어 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실제 배나무가 5m이상 크는 것이었다. 지난 6월 농장을 방문한 나도 믿을 수 없어서 현장확인을 했다. 그랬더니 농장 한 켠에 정말로 그렇게 키가 커버린 1년생 나무가 있었다.

나무도 경쟁심리가 발동하여 크기도 한다. 자애로운 부모님 밑에서 크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무럭무럭 자라난다. 보호막이자 버팀목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곁에서 어떤 경우라도 보살펴주니 한껏 자라나는 것이다. 배나무도 마찬가지다. 버팀목이 함께하므로 물리적으로도 위로 더 커나가도 자신이 꺾여지지 않겠다라는 믿음도 들테고…

여하튼 배나무도 '생명 가득한 유기체'이니 만큼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대나무 지주에 의지하는 가운데 한껏 자라난 것이다. 시골 더덕아주머니의 삶의 지혜가 안대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다.

그 다음에는 영양생장(키 크는 과정)을 멈추게 하고 생식생장(열매 맺는 과정)이 관건이었다. 보통의 경우 배나무는 5m정도 크려면 5년 정도 걸리고 과실수확도 2년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용수농원은 1년생 나무에서도 수확을 한다.

스코링 농법

스코링이란 '스테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비계나 햄을 덮고 있는 비계층'을 말하거나 '파이껍질을 칼로 베어내는 것'이다. 나무의 주지(원가지)나 부주지에 3~5군데 혹은 그 이상을 적절한 깊이로 톱질해 자극을 주고 가지를 Y자 모양으로 유인하는 방법이다.

용수농원 현장은 배나무가 Y삼각형으로 가지 유인을 해서 무엇인가 정교하게 일들이 꼬매지고 있구나 싶은 느낌을 받았다. 보통의 배나무 밭에서는 보기 힘든 싱그런 터널을 지나는 비주얼이었고 컨셉이 묻어 나온다.
배나무마다 톱으로 상처를 낸 자국이 여러 개 보이길래 물었다.

"이 흔적들은 무엇인가?"
"아! 예 스코링작업을 한 것인데요, 우리농장 기술의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수확량과 맛을 좋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본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자손을 남기는 일을 유전적으로, 본원적으로 제1순위로 삼고 살아간다. 모든 경우에 후손을 남기려는 의지를 보이게 되는데 배나 사과 같은 과일나무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먹이기 위하여 과실을 맺는게 아니고 자기들의 후손을 남기기 위하여 치열한 생명활동을 통해 열매를 맺고 씨를 맺는 것이다. 다만 우리 인간이 자신의 소용에 맞게 그 과실을 가로채는 것이다.

▲ 빨간 네모칸 안에 보이는 자국이 톱으로 스코링 작업을 한 것 ⓒ안병권

▲ 나무의 가지에 톱으로 상처를 내면 배나무는 긴급한 상황임을 직감하고 비상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안병권

즉 평상시 같으면 한가지에 한 두개 꽃눈을 틔울텐데 스코링이 진행되면 나무는 생체활성물질인 '사이토카이닌'을 적극적으로 분비하여 상처받은 가지로 보내 후손을 남기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되고 "이크! 큰일이다" 싶어 몇 배 이상의 꽃눈을 틔우게 된다.

죽어가는 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빨리 익어가고 당도도 높아지는 이치와 같다. 나무는 죽어가는 순간까지 후손을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생물촉진제'는 글자 그대로 생명을 자극 시켜주는 일단의 구성성분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용어다. 이것은 또한 유익한 식물반응을 촉진시키는 일단의 성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중 식물호르몬은 줄기의 신장, 뿌리의 발근, 그리고 조직의 분화를 포함하여 다양한 필수적인 세포와 조직의 기능을 조절하기 위하여 식물체내에서 합성된다. '사이토카이닌'은 세포분열, 형태형성(조직의 분화), 양분의 이동, 그리고 노화의 지연과 연관이 있는 호르몬이다.

이렇게 배나무 줄기에 톱으로 상처를 내 자극을 주는 스코링농법으로 가지를 유인하여 삼각형지주에 고정시켜주는 것이다. 단위면적당 일반 농장의 수확량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당도 또한 16브릭스 이상 간다(보통 12브릭스 내외).

스코링을 하지 않고 가지 유인을 하면 부러지기도 하고 수확량도 적고 다른 부작용들이 많이 발생한다.

발칙한(?) 아이디어

필자의 눈에 보인 안홍석대표의 맥가이버 컨셉은 여러가지 기구나 도구들에서 두드러졌다.

● 계단식 이동작업대


계단식 이동 작업대는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은 도구인데 배나무 작업의 모든 것을 평지에서 하듯 효율성을 높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사다리 가지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가 너무 비효율적이라 간단한 생각 끝에 만든 것이다.

● 맞춤형 경운기

▲ 키가 작은 미니 경운기. 짐칸에 싣는 컨테이너박스와 박스4개를 고정시켜주는 클립 ⓒ안병권

배나무 농장 사이를 오고 가는 이동성을 높이기 위하여 경운기의 짐칸 크기를 줄여 노란색 콘테이너 박스의 규격에 맞추어 적재하기 쉽게 했다. 미니경운기인데 배나무 사이를 오고 가는데 안성맞춤이다.

내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은 컨테이너박스 4개를 맨 위에서 서로 고정시켜주는 쇠로 만든 고리(?)였다. 경운기가 박스적재 규격에 맞춤이니 배를 가득담아 한껏 싣고 맨 위에서 고리로 4개씩 그냥 간단하게 고정시켜 줄로 묶어나 흔들리거나 하는 불편을 없앤 것이다.

● 편안한 제초기

▲ 예초기에다 폐차에서 뜯어낸 의자에 바퀴를 달고 유연한 연결 축을 만들어 연결한다. 아래사진은 차량 운전하듯 제초작업 하는 모습 ⓒ안병권

예초기에 바퀴 달린 의자를 연결하여 자가용처럼 앉아서 제초작업이 가능하게 만든 아이디어를 보면서 나는 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물의 이치를 이렇게 헤아려서 작업에 활용하다니 그의 발칙한 천재성에 경의를 표했다.

▲ 허리둘레에 완전군장한 도구들을 보니 야! 배농사 제대로 짓는구나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일일히 자신의 작업에 맞게 고치고 가공하고 덧붙이고 업그레이드 시킨 그 지혜로움에 그저 속으로 박수만 보낼 뿐이다. ⓒ안병권

내가 더 무얼 하겠는가? 파란색 손잡이 작은 톱도 원래는 훨씬 더 큰 톱인데 잘라내고 손질해서 작은 나무줄기에 사용이 편하도록 스스로 만든 것이다.

유쾌한 현장, 기분 좋은 농업 그 한가운데를 서성거리며 나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밥 먹고 일하고 밥 먹고 일하고

대구에서 30년간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중 잘못 선 빚 보증으로 사업을 접고 현재의 창하리 농원으로 귀농했다. 사람이 밥 세끼 먹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 돈이 없어 밥 한끼로 겨우 때워야 했던 그 시절 1997년 전후의 몇 년간이 제일 어려운 고비였다.

▲ 대구에서 가전제품 대리점 경영하던 시절의 가족사진 ⓒ안병권

그의 입에 붙은 '밥 먹고 일하고'의 부지런함에다가 사물을 들여다 보는 눈치코치로 농업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아무래도 전자제품을 다뤘던 기술이 농업에 접목된게 아닌가 싶어요" 직접적인 연관은 안될지 몰라도 시스템의 구성, 앞과 뒤의 연결, 원인과 결과 예측 등을 살피는 안목이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저것 자신의 손으로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개량하듯 농사짓는 일도 같은 시선으로 열심으로 들여다 본 것으로 보인다.

용수농원은 3,000여 평이 조금 넘는 크지 않은 면적이고 배 품종도 화산, 원황, 만풍배가 재배면적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보통의 배 농장은 '신고'품종을 제일 많이 심는데 그니는 달랐다. 누구나 쉽게 재배하는 품종으로 경쟁하는 것보다 재배가 까다로워 꺼리는 품종을 선택하고 대신 품종의 특성을 잘 이해하여 맛있는 고품질의 배로 경쟁하고 싶었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고, 몇 년 전부터 배 값이 사과보다 못한 가격으로 떨어졌지만 용수농원배는 제값을 톡톡히 받는다. 또 배즙은 미국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는 모 공판장에서는 뒤로 돈을 더 주는 경우도 있다. 다른 농장배들과의 형평성문제도 있어서 일단 최고시세로 쳐주고 넘어서는 가치는 다른 방법으로 용수농원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다.

용수농장에는 세계각국의 농업관계자들이 자주 찾아온다. 미국, 호주, 중국, 일본 등지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홍석씨의 배 재배기술을 배우려고 찾아온다. 그런데 안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100가지 기술이 있다면 자신이 오히려 99가지 정도를 그들로부터 배우고 자신이 가르쳐 주는 것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세계각국의 장점을 체크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예를 들면 당도를 높이는 기술도 각국의 농부들로부터 그들이 농사짓는 장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안대표 노력의 결실

2007년도 농림부 신지식농업인 221호에 선정되고 농림수산식품부는 현장교수로 임명하고, 선도농가 실습장 및 교육관을 농장내에 설치하여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여러 과수농가들이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

▲ 농원의 사계절 ⓒ안병권

▲ 정부에서 지어준 교육관과 배가공장 전경이다 ⓒ안병권

중국한의학계의 자문을 받아 대구한의대학교와 공동으로 배즙도 만들었다. 배즙에다 오미자, 도라지, 생강, 올리고당을 첨가하여 맛과 영양을 최고조로 올린 작품이다.

궁리 [窮理]하는 생활

나는 농업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회에 젖곤 한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있고, 그들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한 최근 시점의 결과를 오롯이 간접경험(공유) 한다는 기쁨이 있어서다.

맥가이버의 문제해결방식
실사구시(實事求是), 조선시대 실학파들의 삶
농업, 과학, 경영,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해 낸 다산 정약용선생의 삶의 방식
한국 최고(最古)의 어류학서(魚類學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통해 드러난 정약전 선생의 바다와 바다생물에 대한 성찰….


내가 감동받고 책을 읽은 시점시점, 생활의 기준으로 삼으려 했던 존경하는 사람들의 면면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되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궁리 [窮理]'다.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통사람의 방식대로 그냥 주어진 상황 그대로 바라 보는게 아니라 세밀하게 살피고 기록하고 개선점을 헤아린다. 모든 일의 전후좌우를 살피고 다른 것과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이루어질 것을 예측한다.
즉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복합적인 시스템으로 헤아리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세상을 보고 사물을 이해한 순간 세상은 그만큼 유쾌해지고 편리해지고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경북 영천 용수농원을 다녀오고 공부하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궁리하는 농부 안홍석', '지혜로운 안홍석'이었다.

그에게서 '궁리하는 삶'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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