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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이 건드린 건? '그래도 나아가야만 한다'는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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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이 건드린 건? '그래도 나아가야만 한다'는 공약!

[모 피디의 그게 모!] '한예슬의 난'이 남긴 것 : <2> 제작사와 방송사

- 현직 피디가 말하는 '한예슬의 난'
<1> 스타 시스템

<2>이간질(제작사 & 방송사)

사회 생활,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나는 '이간질'이라 답하겠다. 나는 결코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고? 이간질은 소인배 따위나 하는 짓이라고? 선명하게 자기 이익을 얻겠다는 목표를 위해 거짓말로 이간질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에 말을 조금 비틀며 궁극적으로는 이간질이 되는 말을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인상 비평, 능력 평가, 소문 전달, 억울함 토로, 단죄와 비아냥…. 여기에 도덕적 확신과 권력을 갖고 험담을 나르기 시작한다면?

드라마 제작의 주체는 꽤나 복잡해졌다. 보통은 작가, 배우, 연출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투기도 하고 감동도 하며 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제발 그렇기만 하면, 창작에 대한 고민만을 주고받는 갈등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은 너무도 다른 입장들을 가진 사람끼리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래잡이 배를 상상해 볼까. 제작사, 방송사, 드라마국, 배우 소속사는 선주 개념으로 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들이다. 행여 내 배가 침몰할까, 행여 손해를 볼까, 내 돈인데, 고래를 잔뜩 잡아와야 하는데. 연출피디, 주연배우, 작가는 선장과 일등 항해사다. 최전선에서 고래를 잡는 기술자들은 이들이다. 이들이 운명의 키를 쥐고 있다. 조연배우와 각각의 스태프들은 배의 운명을 선장과 항해사들에게 맡기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원들이다. 이들이 모두 의기투합을 하게 되면 훌륭한 배를 띄워 거대한 고래를 잡겠지만, 가뜩이나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중에 이간질이 끼어들면 <스파이 명월>의 '한예슬의 난'에 버금가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배가 갈피를 못잡는 사이에 고래의 역습에 모두 침몰하고 말 것이다.

드라마제작에 투자 개념으로 많은 돈이 몰리고 성공작에만 수익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사행성이 짙어졌다. 먼저 제작사. 제작사는 방송 편성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러자면 믿음직한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주로 과거 성공작이 있는 스타 배우나 스타 작가가 된다. 좋은 기획안, 좋은 이야기, 좋은 대본이 먼저 아니냐고? 원칙적으로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카드는 투자자들과 광고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여야 한다. 그들은 무엇이 성공할만큼 좋은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자신이 없다. 사실 누군들 이야기만으로 성패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다만 산업적 관점에서 위험 부담을 줄이는 일은 성공의 관성을 믿는 일이다. 성공한 작가, 배우라면 그 성공을 이어가 줄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작사는 무리한 계약금을 끌어서라도 스타 작가와 스타 배우와 계약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송국에 편성을 받는다.

가만, 그런데 왜 이 일을 방송국이 직접하지 않느냐고? 이는 방송법과 관련이 있다. 제작의 주체를 확대하고 방송국의 권력 독점을 막겠다는 취지로 방송법에서는 외주제작 의무비율을 둔다. 그리고 외주 제작사를 장려하기 위해 비대칭 규제를 두었다. 외주제작사는 간접광고나 협찬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 돈을 벌 루트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방송국의 경우는 실질적으로 프로그램 앞 뒤로 붙는 광고가 수입원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방송국은 예산 사용이 자유롭지 않다. 간단히 말해 방송법 상 외주 제작사가 방송국보다 고액의 제작비를 대는데 더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드는 장르인 드라마는 거의가 외주 제작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방송국은 회당 정해진 액수의 제작비(경우마다 다르지만, 실 제작비의 70% 정도라고 뭉뚱그려 말해 볼 수 있다.)를 제작사에 지급하고 광고료를 수입원으로 한다. 제작사는 그 빈자리를 간접광고, 협찬, 해외판매, OST 판매 같은 저작권 사업으로 능력껏 메운 후, 넘치게 만들어 수익으로 챙겨가면 되는 구조다.

▲<스파이 명월>의 이른바 '한예슬 사태'는 외주제작으로 인해 복잡하게 꼬인 드라마 제작 현실 위에서 일어났다. ⓒ뉴시스
여기서 방송국과 제작사의 입장 차이가 생긴다. 방송국은 일정액만 지출하면 되기에 일단 배가 떠나면 제작 현실 자체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제작사는 그 일정액을 넘어서는 실비를 모두 지출해야 한다. 제작사는 이미 캐스팅 단계에서 거액의 돈을 썼다.(세간에 떠도는 한예슬과 에릭 2명의 회당 출연료만으로도, 이미 방송국에서 받을 회별 예산의 반 이상일 확률이 높다.) 스타 배우는 방송사 제작사 입장에 모두 좋으니까. 광고주를 유치하기에도 투자자를 유치하기에도, 또 시청자를 설득하기에도 모두 좋은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실비를 줄일 차례다. 실비를 줄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촬영일을 줄이는 것이다. 수익의 원천 지점이니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길들여야 하는 사람은?

여기에 연출 피디가 등장한다. 연출 피디는 방송국에서 파견되는 형태를 취할 때가 많다. 피디의 연출료는 방송국 월급으로 해결되므로 제작사는 연출료를 아낄 수 있다. 게다가 어차피 대본이 급박하게 나오는 중반부 이후는 연출이 이야기의 성패에 기여하게 되는 부분이 작아지므로, 굳이 비싼 프리랜서 연출과 계약할 동인이 적기도 하다. 이미 배우와 작가에 돈을 너무 많이 썼다. 제작사는 이 연출이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고 시청률이 높게 나오게끔(!) 찍어주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연출은? 대개 감독이란 자기 작품을 하는 순간을 위해 일평생을 저당잡혀온 사람들이다. 또 영상물의 경우, 궁극적인 작가의 역할은 감독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본 설계에서부터 디테일의 결정까지, 그리고 모든 공정의 OK사인을 내기까지 그 영상물의 최종적 작가이자 최초의 시청자이다. 선주가 누구든 간에, 배와 바다, 그리고 선원들과 호흡하여 고래를 잡는 리듬은 오롯이 선장만이 알고 조율할 수 있다. 선장은 한 달을 묵묵히 쫓아야 큰 바다에서 흰고래를 잡아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원래는 배(대본)를 설계하고 선원을 모집(캐스팅)하는 단계에서부터 선장이 조율해야 고래잡이에 최적화된 배를 띄울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모르는 선주가 선장의 경고를 듣지 않고 엉망으로 설계된 배에 속 빈 강정 선원들을 모집하여 선장을 붙잡아 태우고 일주일 만에 흰고래를 잡아오라고 한다면? 아니 최소한의 일관성을 갖출 수 있는 이야기라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이름 석 자를 걸고 커리어에 남길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번 사태에 있었던 드라마 연출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신인 연출이라는 부분이다. 드라마 신인 연출은 신인 배우가 아니다. 신인 배우는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으로서의 불안함과 신선함이 있다. 그러나 드라마 연출의 경우, 거칠게 일반화하여 7년 여의 조연출 생활과 그 이후 3년 여의 공동 연출을 통해야 큰 프로젝트의 메인 연출자리를 맡게 된다. 한 마디로 드라마 판에서 잔뼈가 굵을 만큼 굵고 젊음의 신선함도 남아 있고 물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가 드라마피디의 메인 연출 데뷔 전후다. 다만 주변을 좌지우지할 권력이 없을 뿐이다. 신인 연출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부분은 방송계 사람으로서는 '아, 권력과 권위가 모자랐구나'라는 말로 들린다. 제작사에서는 업계 내의 지위가 아직 약하다는 이유로, 방송국에서는 조직에서의 지위가 아직 낮다는 이유로, 현장에서는 스타 배우의 대중적 영향력에 비교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물의 궁극적인 작가이자 책임자라는 점에서 신인 연출은 업계의 밥이다.

아니 연출은 방송사의 대표 주자이자 식구 아니냐고? 글쎄. 방송사는 성격이 너무나 다른 조직이 한데 묶여있는 곳이다. 피디와 기자는 조직문화부터 상극이다. 피디들도 드라마 예능 교양에 따라 가치관이나 일하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방송직군이라는 한 이름 아래 묶인다. 경영, 기술 직군 등, 방송사 전체를 통솔하는 입장에서 보면 드라마국은 가장 많은 돈을 쓰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오는, 계륵같은 부서일 뿐이다. 드라마국은 방송사에 대해 쓰는 돈 이상으로 광고를 벌어야 하는 책임을 진다. 드라마국 관리자의 일차적 업무는 좋은 드라마와 좋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돈 버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끄러운 스캔들 없이 방송이 잘 나가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결국 방송사, 드라마국, 현장 연출조차도 각각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것이다.

이번엔 소속사 입장. 스타는 반짝하는 한 철 장사다. 언제 어떻게 침몰할지 모른다. 점심시간 손님 회전율이 좋은 식당이 돈을 많이 벌듯, 소속사는 제 철에 스타 배우를 최대한 많이 돌려야 한다. 드라마는 삽시간에 해치울수록 좋다. 최대한 늦게 캐스팅되서 최대한 빨리 찍고 빠지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하다. 한 작품에 오래 매여있는 것은 기회비용으로 보면 바보짓이다. 스타 한 명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과 진땀을 투자했는가. 스타가 쉬운 존재던가. 매미처럼 땅 속에서 소속사가 오래도록 잠행했으면 한 철 울 때 좀 돌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스타성과 국민적 인지도를 최대한 확보하면서 빨리 치고 나올 수 있는 드라마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사실 스태프의 입장이라고 꼭 다르지는 않다. 살인적인 스케줄이 못할 짓이라고는 하지만, 일의 회전율이 빠르면 돈 벌기엔 좀 낫다. 어차피 많은 일수를 찍어 제작비가 초과되면 제일 먼저 떼이는 것이 스태프 임금 아닌가.

이렇게 생방송 드라마는 탄생한다. 이야기는 성공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못되니 스타의 이름값으로 편성과 투자가 결정이 되고, 결정이 되기까지 들어간 돈이 많으니 이제부터는 아끼기 위해 최대한 단시일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지옥같은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을 낳은 원인이다. 제작 주체를 다양화하기 위해 시작된 외주제작 의무 비율과 비대칭 규제는, 스타 배우와 작가의 몸값만을 천정부지로 올리는 구조적 원인이 되었으며,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 공력은 오히려 예전만 못해졌다. 한류가 빛 좋은 개살구이며 이 구조는 언젠가 폭발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는 그렇게 생겼다. 스타 배우, 스타 작가의 위상은 그래서 이중적이다. 그들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수혜자이자 가해자처럼 비친다. 그런데 이들은 직접 고래잡이 배에 승선하는 사람들이다. 악마 같은 생방송 스케줄에서 가장 크게 신음하고 가장 크게 역할을 해야하는 피해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이 '한예슬의 난'을 보는 관점을 복잡하게 만든 이유다.

핵심은 이간질이라고 했다. 성공할 때라면 샴페인을 터뜨리며 갈등을 덮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공포가 스며든다면? 과거에는 외주제작도 없었고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도 일정한 광고를 수주했기에 오히려 이야기에 있어서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누가 잘못했는가. 누가 양아치인가.

연출이 나빴는가? 연출이 술취한 선장과도 같아, 제작사에서 마련한 천금같은 돈을 함부로 날려쓰며, 배우에게 권위적인 모습으로 함부로 대하며 작품을 망하게 하고 있는가?

배우가 나빴는가? 스타의식에 젖어 안하무인격의 행동으로 다같이 힘든, 다른 작품에 비교해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제작을 파국으로 몰았는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는가?

제작사가 나빴는가? 선장과 선원들을 몰아넣은 배가 사실은 엉망진창이었는가? 혹은 항해 자체에 간섭하여 '배가 산으로' 가게 했는가?

방송사가 나빴는가? 제작 현실에 대한 무관심의 측면에서는 늘 나쁘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행위자 노릇까지 했는가?

드라마국이 나빴는가? 드라마국은 마른 하늘에 방송 펑크라는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인가, 혹은 이 드라마의 시스템을 분열적으로 코디해 놓은 가해자인가?

소속사가 나빴는가? 배우의 과로를 조장했는가? 드라마 촬영도 버거운데 CF까지 몰아댄 것인가? 배우의 돌출행동을 막지 못했는가?

작가가 나빴는가? 배의 설계 자체가 나빠 이 파국의 근본 원인을 만든 것인가?

이 시나리오는 작품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한 작품을 놓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짤 수도 있다. 자, 당신이라면 어느 편에 서서 누구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고 누구에게 이야기할 것인가. 어떻게 이합집산, 합종연횡할 것인가. '책임'이라는 폭탄이 누구 손에서 터지게 하겠는가.

이렇게만 보면 드라마 제작은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하지만 파도를 가르며 헤엄치는 흰고래에 <모비딕>의 선장 에이협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 듯,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면이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등 없는 곳이 있겠는가. 그래서 드라마 업계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살인적인' 제작환경과 스트레스와 갈등 속에서도 꾸역꾸역 '한국적 벼락치기'로 대강 해결을 봐왔다.

그 미봉책을 가능하게 한 전제조건은 '그래도 방송은 나가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오로지 이 조건만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시청자에 대한 약속이라는 말이 이 업계에서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실제로 시청자들을 그토록 왕처럼 떠받들기 때문이 아니라 시청자들이야말로 최대공약수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를 생각할 때만이, 우리가 그저 고수익을 올리자고, 혹은 사람 하나 잡자고 이 갈등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재미있자는 것 아닌가. 감동적이자는 것 아닌가. 그러자면 아무리 스트레스와 갈등이 폭발할 지경이 되어도 편성 시간은 지키는 선에서 해야할 게 아닌가.

한예슬 씨가 이토록 비난의 타깃이 된 이유는 실제로 한예슬 씨가 다 잘못했다기 보다는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적인 마지노선인, '그래도 방송은 나가야 한다'는 공약을 깼기 때문이었다. 업계의 엄청난 갈등들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요술봉 뿅망치를 부숴버린 것이다.

시청자가 진실로 진실로 중요하다면, 드라마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로 가서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방송 펑크보다 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시청자도 제작진도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돈 보고 그냥 주절대는 것이다. 난파해 가는 배 위에서 서로 머리채를 틀어쥐고 싸우면서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바다로 나왔는가를 잊지 않아야 고래가 아니라 오징어 몇 마리라도 건지고 돌아갈 것 아닌가.

시청자에 대한 궁극적인 예의를 지키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 바다에 나간 선장과 항해사, 선원들이 늘 부서진 배에 위에서 태풍에 시달리다 돌아와야 하는 시스템. 이상하게 돈이 모이고 이상하게 돈이 분배되는 뭍의 논리.

그렇다면 도대체 이 악마의 시스템을, 한국 드라마제작의 게임의 규칙을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노동'의 관점에서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분석하는 일은 변화에 도움이 될까. 좀 더 사려깊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을 감싸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다음 연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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