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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번 생사 확인…언니도 울고 나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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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번 생사 확인…언니도 울고 나도 울었습니다"

[현장] 김진숙 "어떤 사랑이 이리도 뜨거울 수 있을까"

이날도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전화 목소리만 전해져왔다. 31일 새벽 2시경, 300m 앞에 놓인 차벽을 앞에 두고서였다.

달라진 건 있었다. 지난 2차 희망버스 참가자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이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도 만날 수 없었던 애틋함'으로 기억됐다면, 이번에는 반가움이었다. (☞관련 기사 :결국 만나지 못한 '희망'과 '김진숙'…"또 갑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프레시안(최형락)

발언에 나선 김 지도위원은 가장 먼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떠올렸다. 그는 "지친 해고자 동생의 자전거에 끈을 묶어 달리던 비해고자 형의 사진을 봤다"며 "형은 동생이 얼마나 안쓰러웠으며, 동생은 형한테 얼마나 미안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곤봉에 찍혔던 그런 무서운 밤을 보내고 소환장을 받으면서도 다시 와주신 여러분 전 여러분들이 참 눈물겹다"고 했다. 김 지도위원은 "퇴거명령이 언제 집행될지 몰라 함께 모여 밤을 새우며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신 여러분이 고맙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은 "언제부터 우리는 같은 곳을 쳐다보며 같은 기도를 올리며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며 "어떤 마음이 이리도 간절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랑이 이리도 뜨거울 수 있느냐"고 했다. 또한 "절망이 희망을 이길 수 없듯이 돈에 대한 집착만으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은 생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아무 사심 없이 하나가 된 우리를 저들은 결코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희망버스에 대한 고마움은 김 지도위원에 이어 발언한 해고 노동자의 가족에서도 묻어났다. 한 해고 노동자의 아내는 "하루하루가 눈물과 웃음의 반복이지만, 여러분이 있어서 하루하루를 견뎠다"며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한진중공업 조합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조합원의 언니(아내) 집에 갔습니다. 저는 신랑과 만날 수도 있고 전화 통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위로는 (휴대전화) 배터리가 잘 안 올라갑니다. 이틀에 한 번 전화를 하고 영상통화로 형부의 생사를 확인합니다. 언니가 형부한테 (휴대전화의) 후레시를 켜보라고 합니다. 형부는 퉁퉁거리면서 '또 왜?' 하고 물으면서도 후레시를 깜박거립니다. 언니는 울면서 얘기합니다. '응. 건강 괜찮네. 이제 전화 끊을게. 밧데리 없으니까….' 나도 울고 언니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웃으면서 얘기했습니다. '우린 너만큼 어린 아이가 없으니 괜찮아. 우리 두 부부는 아이를 다 키웠으니까 하고 싶은 일 해도 돼.' 그렇게 하루는 눈물과 웃음의 반복이나 웃으면서 마무리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유성기업,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선배들이 '희망버스와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고, 한진중공업이 이겨야 우리가 이긴다'고 말한다"며 "우리는 이 투쟁을 꼭 이겨서 (다른 사업장에도) 새로운 시작을 열어가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동안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간간이 '힘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군데군데 눈시울을 붉히는 참가자도 보였다. 서울에서 온 한 참가자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진심에서 우러난다고 느꼈다"며 "희망버스가 오가면서 부산 시민도 많은 사실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2차 희망버스 때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평택에서 영도까지 걸어오셨습니다. 15명의 목숨을 제 손으로 묻은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3차 때는 우리 조합원들이 쌍용차에서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왔습니다. 지친 해고자 동생의 자전거에 끈을 묶어 달리던 비해고자 형의 사진을 봤습니다. 형은 동생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요. 동생은 형한테 얼마나 미안했을까요.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곤봉에 찍혔던 그런 무서운 밤을 보내고 무참한 낮을 보내고 소환장을 받으면서도 다시 와주신 여러분 전 여러분들이 참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같은 곳을 쳐다보며 같은 기도를 올리며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마음이 이리도 간절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랑이 이리도 뜨거울 수 있을까요. 그런 간절함이 있었기에 우린 당당했고 저들은 초조해했습니다.

200여 일이 되도록 눈길한번 주지 않던 부산시장이 사장이 조 사장이 마침내 집권당까지 나서 내려오라 요구했습니다. 여기까지 206일이 걸렸고 희망버스가 3번을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요구합니다. 나를 내려오게 하려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길 올라와 어떤 마음으로 206을 버텼는지 그걸 먼저 헤아려라 무엇이 나를 오늘까지 견디게 했고 무엇이 나를 내려오게 할 수 있는지를 진심으로 생각해보라.

절망이 희망을 이길 수 없듯이 돈에 대한 집착만으로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은 생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 사심 없이 하나가 된 우리를 저들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영세상인들 철거민들 비정규직과 해고된 노동자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여성들 등록금에 절망하는 학생들 짓밟히는 삶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버스가 없었습니다. 부정과 부패와 파괴와 야만을 향해 질주하는 이 절망의 버스에서 내릴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손으로 새로운 버스를 장만했습니다.

미래를 향해 희망으로 가는 버스, 우리 모두가 주인이고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버스, 희망버스 승객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길거리로 내몰린 우리 조합원들의 유일한 희망이고 간절한 기다림이었던 여러분, 평생을 일한 공장에서 내쫓고 그 노동자들을 서슴없이 외부세력이라 부르던 저들의 오만과 독선에 피멍이든 우리 조합원들을 지켜주신 여러분, 퇴거명령이 언제 집행될지 몰라 함께 모여 밤을 새우며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신 여러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머잖아 우리 모두 웃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여러분들과 함께 얼싸안을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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