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가 뭔지 아십니까. 지금의 한진중공업을 대한조선공사라고 부를 때, 할머니들이 녹이 슨 배 밑바닥을 쇠망치로 두드리는 그 소리가 바로 깡깡이입니다. 나는 할머니의 그 깡깡이 덕분에 보리밥이나마 먹을 수 있었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29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한 부산시민 대토론회'에서 발언에 나섰다. 그는 "한진중공업은 70년이 넘는 영도의 향토 기업이었다"며 "영도구민의 한 사람으로 평화와 상생의 희망 버스를 환영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고 노동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한진중공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습니까? 영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게 한진중공업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일하던 노동자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다 잘려나갔습니다. 밤 8시만 돼도 그 번화한 봉래동 거리와 남항동 시장통으로 사람이 안 다닙니다. 일 열심히 하고 저녁에 일 끝나면 쇠주도 한 잔 먹고…. 한진중공업에서 쇳소리, 용접소리가 나야 봉래동 시장이 장사가 잘될 거 아닙니까."
▲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시민이 부산역 광장 앞에 마련한 농성장. ⓒ프레시안(김윤나영) |
흑자 조선소에서 줄어드는 '쇳소리'
영도조선소가 축소되면 부산 경제가 타격을 입으리라는 우려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나왔다. 조선 산업 전문가인 허민영 박사(경제학)는 "이미 부산 지역에 조선 관련 매출액이 감소하고 있다"며 "산업 위축, 사업체 수 및 부가가치의 감소, 대량 실업 등이 부산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에 '쇳소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06년까지 70만 척이 넘었던 수주량은 필리핀에 조선소를 지은 2007년부터는 40만 척으로 급감했다. 2008년에는 22만 척으로 줄더니, 2009년 이후에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이 때문에 불과 2년 사이에 부산 노동자 3000여 명이 해고됐다.
이에 대해 허 박사는 "한진중공업은 필리핀에 수빅조선소를 지으면서 1조 원을 무리하게 투자했다"며 "경영상의 리스크를 떠안기 위해 영도조선소의 물량을 집중적으로 수빅조선소로 넘기고,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경영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허 박사는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지난 3년 동안 평균 영업이익이 3250억 원으로 아주 높았다"며 "경영진은 지난해 170억 원을 주식 배당할 정도로 경영상 여유가 넘치는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업이익률이 빅3 조선소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생산성이 높았던 한진중공업이 유독 2009년과 2010년에 수주 제로라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 힘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최성주 변호사도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 직전에 조남호 회장에게 29억 원을 배당했고, 노동자를 해고해 놓고 임원 급여는 1인당 평균 8220만 원을 인상했다"고 꼬집었다. 최 변호사는 "정리해고를 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았던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법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금 더 높은 다른 조선소도 배 수주하는데…"
노동자들도 흑자 기업이 왜 정리해고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노동자인 김병철 씨는 "회사는 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물량이 없어서, 일감이 없어서 정리해고 한다고 합니다. 왜 물량을 수주 안 하냐고 물으니 다른 데보다 단가가 높아서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우중공업, 현대중공업, STX는 우리보다 임금 높고 복지도 잘 돼 있습니다. 그럼 그 기업은 어떻게 적자도 안 보고 배를 수주하고 만들어낸단 말입니까?"
김 씨는 "사람들은 노사가 한 발씩 물러서서 타협하라고들 한다"면서도 "우린 벼랑 끝에 있다. 벼랑 끝에서 물러서라는 것은 떨어져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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