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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원 더준다는 말에 사표 쓴 그는…"

[기고] "정규직 0%인 현대 모비스는 기업에겐 꿈의 공장"

"정규직 되면 뭐가 좋나?"
"일이야 우리가 하는 일 똑같이 하는 거지."


자동차 공장에 다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다. 내일 정규직이 된데도 오늘 한 일을 내일 역시 하면 된다. 어차피 공장 일은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이 없다. 원래 하나였던 일이다. 구분되지 않았던, 구분될 필요 없던 일이다.

"그래서 정규직되면 안 좋나?"
"좋지. 일을 떠나서 뭐든지 다 차이가 나니까."

그가 말하는 '뭐든지'를 떠올린다. 이미 누구나 알듯 월급, 복지, 인격적 대우, 이 모든 것일 게다. 권리가 생길 것이다. 시간외근무인 잔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잔업 시간에 나오는 빵과 우유가 맛없다고 투덜거릴 수 있는 권리, 다음 달부터 나오지 말라는 해고 통보에 '왜?'라고 물을 수 있는 권리. 참 사소한 권리. 그러나 월급 받고 사는 처지에, 더구나 '불안정한' 월급으로 먹고사는 처지에 꿈도 못 꾸는 권리. 그러나 없으면 당장 내가 굶고 내 자식이 굶는 권리 말이다.

두 사람은 권리를 꿈꾼 대가로 해고됐다. 그들은 현대 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로 작년 11월 파업에 참가했다. 그리고 해고통보를 받았다. 노동자들이 25일간 공장을 멈추며 요구한 것은 정규직으로의 전환이었다.

ⓒ금속노조

정규직화는 "…당연한 거요."

다음날 현대 자동차 아산공장을 찾았다. 중년의 여자가 노동조합 퇴근 선전전 뒷줄에 섰다. 조합원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나를 보고 기자냐면서 피하는 여자를 붙잡아 묻는다. 정규직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자는 한참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당연한 거요."

당연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지시를 받고 같은 작업을 한다. 같은 노동자일 줄 알았다. 그런데 고용한 사람이 다르단다. 누구는 원청이고 누구는 하청이란다. 그게 세상일이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작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행했다며 "사내하청 노동자일지라도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원청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즉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판결 이행을 요구했다. 회사는 판결을 따르지 않았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25일간 파업이 진행됐다. 회사는 끝내 정규직 전환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104명 해고, 1091명 징계, 162억 손해배상 청구 등 최대 규모의 징계로 답했다.

"10만 원 더준다는 말에 사표 쓴 그는 7번째 해고자"

공장 안은 잠잠해졌다.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라는 꿈같은 요구가 아닌, 쥐 죽은 듯이 고용되어 있기를 택해야 했다. 포스코 공장에서 선전전을 할 때다. 최저임금도 못 미친 노동조건에는 눈 감던 포스코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에는 눈을 떼지 않았다. 해고자가 속출하고 회사의 감시에 6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100여 명으로 줄었다. 통근버스가 오가는 길목에서 선전전을 했다. 피켓과 현수막이 늘어선다. 대형 통근버스 안 사람들은 현수막에 눈을 주지 않는다. 버스는 빠르게 공장 안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간혹 버스에 탄 승객들이 커튼을 열고 현수막을 내려다볼 때가 있다. 무수한 현수막이 있다.

<포스코는 석면 사문석 사용을 중단하라>
<불법파견 정규직화 법원판결 이행하라>

그러나 그들은 유독 한 현수막에 눈을 준다.
<최저임금 위반문제 해결하자>

돈이다. 몇 푼의 돈이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으로부터 푼돈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말했다.

"연세가 60이 다 되신 분이 한날을 오셔가지고 또 '나가' 그런대요. 하청 업체를 여섯 군데를 옮겨 다니고 이번에 일곱 번째 해고된 거야. 해고되는 게 돈이 되는지 사표 쓰는 게 돈이 되는지 나를 보고 계산을 해달래요. 내가 이 아저씨한테 얘기했던 게 아저씨 이번에 잘리면 7번째고 가을에 며느리도 봤다는데 언제까지 하청만 전전하고 살 거냐고. 이번에는 당당하게 싸우다 해고되라, 그래도 돈 차이 별로 안 난다, 이랬어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가 무슨 삘을 받았나 봐. '그래 알았다' 그러고 주먹까지 쥐고 가셨어요. 그랬던 아저씨가 며칠 만에 만났는데 피해 당기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결국 사표를 썼대요. 왜 그러냐 했더니 사표 쓰니까 10만 원 많더라, 그러는 거예요. 이게 하청 노동자들입니다."

이것이 하청 노동자다. 잘난 것 없는 인생들. 돈 몇만 원, 차비, 식비, 월세 얼마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생이다. 하청노동자는 일렬로 줄 세워 놓은 경쟁 속에 낙오된 몹쓸 인생이 아니다. 나날이 좁아지는 정규직의 문, 이길 수 없는 게임에서 비켜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이다.

"시급 2500원짜리 인생이 정규직 0% 공장에 소리친다"

ⓒ금속노조
정규직화라는 말은 그렇게 사그라질 줄 알았다.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머리를 들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꿈을 꾸어보기로 했다. '당연한' 꿈이다. 불법파견 판정이 난 지 1년, 7월 18일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기'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기운 내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들이 전국 각지 비정규직 사업장을 돌았다.

판결 1년 후, 회사는 여전히 완강하다. 동시에 불법파견 판결이 연이어 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금호타이어, 에스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았다. 제도권 법도 사내하청의 심각성에 눈감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곪고 곪았다.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똑같은 사람을 두고 다르게 대하니, 그것이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이니, 아물지 않고 곪을 수밖에 없다.

곪은 상처를 가지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머리를 쳐들었다. 그들은 알았다. 노동조합 초창기 자신들의 인생이 시급 2500원짜리였다는 것을. 다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했다. 비정규직은 시류라고 했다. 그러나 싸웠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싸웠다.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10년,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 정규직이 당연한 것임을 인정받았다. 그 깨달음으로 2011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말해오지 않았던,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소리친다. "모든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

정규직 100%의 공장을 만들기 위해, 7월 18일 비투위 희망버스는 현대 모비스에서 5박 6일 일정을 시작했다. 현대 모비스는 꿈의 공장이다. 다만 노동자가 꾸는 꿈이 아니다. 생산직이 100% 비정규직으로만 이루어진 현대 모비스는 기업이 꿈꾸는 공장이다. 현대 모비스만이 아니다. 현대 중공업은 정부로부터 몇천억 원대의 지원을 받아 군산 조선소를 세웠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지원된 금액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실상 비정규직으로 조선소를 채우고 있다. 지난 4년간 549명에 달하는 직원 중 겨우 48명만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기업과 정부는 손 모아 정규직 0% 공장을 만든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돈으로 저희들의 꿈을 다 꾸어버렸다. 비정규직이 꿀 수 있는 꿈 따위는 남아 있지 않게.

ⓒ금속노조

희망버스에서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의 한 노동자를 알게 됐다. 도정일을 했다는 그는 20년 동안 자동차 기름밥을 먹었다고 한다. 20년 내내 눈칫밥, 비정규직 밥이었다. 그는 이미 정년이라고 했다. 그의 나이에 이제 더 이상 정규직이 무슨 소용일까. 정규직화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꿈에 그리던, 내 아들 손자들한테 꿈을 심어주기 위한 거…."

그의 아들도 얼마 전까지 현대 모비스에 다녔다고 한다. 오랜 반복이다. 늙은 노동자의 바람은 자신의 자식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희망버스에서 늙은 노동자의 아들뻘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현대 울산 자동차 공장 노동자다. 이십대 초반 현대자동차에 들어간 그는 이것 말고 할 짓이 없겠나 큰소리치던 젊은이였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이 나이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일했다. 교대근무도 힘들어 죽겠는데 시급 이천 원도 짜증스러워 죽겠는데, 차별까지 하니 빈정이 상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아는 형을 따라 가입을 했다. 이미 8년 전 일이다. 8년을 회사와 끊임없이 싸웠다는 그에게 정규직화는 이겨보고 싶은 꿈이다.

"서럽잖아요. 어떤 것을 하더라도 저 현대 자동차를 이겨보자. 아쉬움만 남으면 부끄럽게 자식한테 비정규직 철폐는 못 이루더라도 그 많은 사람 중의 하나로써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희망버스는 100% 비정규직 공장 현대모비스에서 출발하여 아산·울산·전주 현대자동차 공장은 물론 금호타이어, STX조선, 현대 하이스코 등의 사업장을 방문하고 있다. 7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동의하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위의 글에 나온 노동자들은 모두 희망버스를 타고 만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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