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걷고싶은 거리, 밀려난 그들 ☞①막창집 주인 이씨는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②"홍대 앞에는 왜 '부비부비' 클럽만 남게 됐나" ☞③"돈 냄새와 정욕에 질식한 예술의 거리" ('종로→명동→신촌→홍대→?'…청년문화 잔혹사) |
지난 15일 저녁 7시 30분. 열 명을 간신히 넘긴 사람들이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한 빌딩 지하로 향했다. 지난 2004년부터 7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라이브클럽 '살롱바다비'가 있는 곳이다. 이날 무대에는 인디음악인 네 팀이 올랐다. 마지막을 장식한 일렉트로닉 앙클렛의 이승환(기타) 씨가 공연 말미에 예사롭지 않은 말을 던졌다. "살롱바다비 같은 클럽이 홍대에 계속 뿌리내려야 한다."
이날 살롱바다비에 들어온 유료관객은 6명. 하루 수입 전액이 7만8000원이다. 시작 당시 월 50만 원이던 임대료는 140만 원으로 뛰었다. 그 사이 계약기간은 2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었다. 매년 임대료가 오르고 있다. "얼마 전 건물주가 빌딩 외장을 다시 칠했어요. 임대료가 또 오를까봐 겁부터 나더라고요. 문 닫는 것 고민 중이에요." 살롱바다비 대표를 맡고 있는 '우중독보행' 씨는 클럽 사정을 알아주는 음악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음악 공연 외에도 시낭송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이곳은 이미 2007년에도 경영난을 심각하게 겪었었다.
▲15일 살롱바다비 공연의 첫 순서를 맡은 '데빌 이 소 마르코'를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관객의 상당수는 이날 무대에 오르는 뮤지션들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걷고 싶은 거리? 굽고 싶은 거리!
홍대 앞은 한국에서 드물게 자생적 청년문화 기반이 남아 있는 곳이다. 미대생들의 작업실이 자리한 곳에 음악애호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식인들이 밀집하며 지역 문화가 피어났다. 갤러리와 라이브 클럽, 댄스 클럽, 출판사가 공존했고 시인과 펑크족, 힙하퍼(hip-hoper)와 행위예술가가 같은 길을 오갔다.
이곳의 문화적 특수성이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보이자, 2000년대 초반부터 자본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철길을 낀 선술집들이 자리했던 곳은 2002년 잘 정돈된 '걷고 싶은 거리'로 변화했다. 외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홍대 인근 서교동이 하루 유동인구 30만 명에 달하는 상권으로 성장하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상가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예쁘장한 맛집과 고깃집들이 대거 늘어섰고, 이어서는 큰 덩치의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이곳을 비집고 들어왔다. '홍대 문화'를 일군 주역들은 떨어져나갔다. 사람들은 걷고 싶은 거리를 '(고기) 굽고 싶은 거리'로 바꿔 불렀다.
"갤러리가 돈이 안 되잖아요. 라이브클럽도 마찬가지에요. 자기 색깔을 갖고 자기 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홍대 문화 정체성을 꽃피웠는데, 이게 관광지역으로 소개되니 자본이 몰려든 겁니다. 정작 이곳을 일군 사람들은 밀려난 지 오래예요."
"홍대 앞은 이제 끝났어요"
우중독보행 대표는 홍대 상업화가 이미 '예술 공동화'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홍대 신(scene)'을 일군 주역들의 공통된 지적이기도 하다. 수익을 내기 힘든 갤러리가 사라졌고, 미술가들의 작업실은 홍대 외지에 새 둥지를 텄다. 스팽글, 피드백, 발전소, 언더그라운드 등 상당수 클럽이 문을 닫았다. 마스터플랜이 사라지면서 힙합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 최근에는 쌈지 부도의 여파로 쌤(ssam)마저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음악인 상당수가 망원동, 상수동 등 인근 지역은 물론, 일산, 은평구 등지로 이동했다.
서교로에 자리한 클럽 주(ZOO)는 대관료로 버티고 있다. 관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곳 무대에 서는 밴드의 절반 가량은 단 한 명의 유료관객도 동원하지 못한다. "클럽 운영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 못하겠어요. 클럽 문화가 점점 더 알려지는 것 같긴 한데, 오는 사람들만 오니까…." 김진옥 ZOO 대표는 말했다.
클럽 대부분의 사정이 어려우니 신진 밴드들은 공연료를 받지 못한다. 그 중 '뜬' 극히 일부는 자신이 오르던 클럽을 떠난다. 클럽주는 그들을 잡지 못한다. "이미 홍대는 끝났어요. 지금 홍대 현실을 보면 '뮤지션이 소작농, 클럽주는 마름'이고 건물주만 돈 버는 지주죠. 새로운 로컬 신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이승환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본 밀물, 문화 썰물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된 지 10년. 홍대 앞은 대자본과 기존 문화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장소다. 보다 정확히는 자본이 문화를 밀어내는 과도기적 상황에 가깝다. 크라잉 넛으로 인디음악 폭발을 견인한 김웅 드럭레코드 대표는 오늘날 홍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옛날 신촌이나 미국 소호거리를 보는 것 같아요. 부동산이 장난치니까, 요새 들어오는 가게들 권리금에 거품이 상당하다고 하더라고요. 문화거리로 알려진 곳이 사실은 외지인들,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헤게모니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지역 거주민들을 위한 문화는 사라지는 중이에요."
자본은 묘한 구분력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클럽, 가게들일지라도 돈이 도는 곳과 몰리지 않는 곳이 구분된다. 돈이 움직이는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클럽500은 후자다. 이곳으로는 돈이 잘 흘러들지 않는다.
"문화는 돈이 안 돼요"
▲클럽500의 비눌 대표. 그는 90년대 중반 클럽문화가 퍼지기 시작하던 당시와 지금의 홍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됐다고 말한다. 이 차이를 만들어낸 근원은 자본이다. 일개 점포로서는 막기 힘든 변화다. ⓒ프레시안(최형락) |
"단순히 '부비부비'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시낭송, 바자회 등을 여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예술적 감수성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모이던 90년대 초 홍대 문화를 되살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보시면 알겠지만(주말 저녁임에도 불구, 2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돈이 안 돼요. 월세가 590만 원, 관리비가 60만 원이 나가요. 이대론 현상유지도 힘들어요. 조만간 '부비부비' 클럽 말곤 죄다 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중고품을 위탁판매하는 홍대 앞의 한 가게 대표는 홍대를 대표하던 곳들이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월세가 다섯 달치나 밀렸어요. 홍대 특유의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고자 했는데, 이곳을 채우는 사람들이 이미 완전히 바뀐 걸 제가 간과한 죄죠. 소나기 펀치를 맞고 쓰러진 상황"이라는 게 그의 표현이다.
뛰는 임대료
홍대 앞 예술인들이 자주 찾던 이리카페는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당인리발전소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교 365번지의 상징적 가게이던 '노 네임 노 샵'은 이미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났고, 술집 '바(Bar)다'의 주인 역시 바뀌었다.
지난해 상수동에 문을 열어 독립 잡지, 예술서적을 주로 유통하는 더북소사이어티는 1년 만에 가게를 옮기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서교동 집값이 뛰자 상당수 카페가 주택가이던 상수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에 따라 상수동 임대료마저 덩달아 뛰었기 때문이다.
"현재 임대료가 월 60만 원인데, 내년에는 20만 원가량 더 오를 예정이에요. 카페, 레스토랑이 홍대 부근에 들어오면서 땅값이 점점 더 올라요. 이러니 본래 홍대에 거주했던 예술인들은 밀려나고,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 상대로 장사하는 우리 같은 곳도 어려워지죠."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는 핸드폰 액세서리, 브랜드 의류 등을 취급하는 가게가 홍대 부근에 늘어나는 게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바뀐 주인공
홍대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월간 무가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은 오늘날 홍대 근처는 자본 권력의 상징이 됐다고 진단한다.
"지난 수년간 경기가 요동쳤는데도, 홍대는 끄덕도 안했어요. 강북에서 경기를 안 타는 유일한 지역입니다. 2002한일월드컵과 '클럽데이'가 맞물려 사람들이 홍대 앞으로 몰렸어요. 그때부터 외부자본의 '무차별 폭격'이 본격화됐죠. 이미 홍대는 초토화됐어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홍대 앞 놀이터 부근에 최근 들어서는 유명 의류브랜드의 대리점이다.
정 편집장은 "홍대 인근이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떠오르자, 의류 브랜드 업체 사이에서 홍대에 점포를 내는 경쟁이 시작됐다"며 "이곳 사람들은 브랜드 옷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데도, 의류 업체 사이에서는 '홍대에 들어올 규모를 갖춘 브랜드'라는 인지도 효과 때문에 이곳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이는 홍대 인근을 찾는 사람들의 성향이 뒤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홍대는 맛집으로 더 유명한 곳이 됐다. 대형 클럽 대부분은 고급화된 댄스 클럽이다.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큰 규모로 홍대 앞을 채우고 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커피숍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숍들 사이에서 싼 가격의 커피로 경쟁하는 카페 '호호미욜'의 대표는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오히려 자기 색깔을 지녔던 가게가 밀려나고, 특성 없는 브랜드 점포만 들어와요.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메우니까, 익숙한 이름의 가게로 사람들이 이동하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가격경쟁을 할 수밖에요. 아메리카노 투 숏에 얼음을 가득 넣어주고 3000원 받아요."
▲홍대 앞의 대표적 번화가인 주차장 길. 서울시의 도심 재개발에 저항하던 문화인들의 상징적 건물이었던 서교365번지가 아직 남아있는 가운데, 이미 대형 빌딩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 지역에서 밀려나는 이들은 새로운 둥지를 찾고 있다. 미술인들은 문래동, 성북동 등지에서 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생존 경쟁에 내몰린 라이브 클럽에서 살 자리를 찾지 못한 음악인 일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인근과 문래동에 새로운 라이브 클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대 부근이 그토록 융성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오랜 시간 그곳을 지켜온 미술인들의 문화가 있었다. 아직 새로운 공간에는 '시간'의 두께가 묻어나지 않는다.
김민규 일렉트릭 뮤즈 대표는 "이미 홍대 문화는 끝났다고 본다. 홍대 앞이 갖고 있던 '문화적 즐거움'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도 "다른 곳이 홍대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역시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의 전 지역이 재개발과 전세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새 둥지가 자리를 잡는 순간, 이들은 다시금 떠밀려날 것이다. 당장 이리카페가 들어선 발전소 부근은 이제 새로운 카페촌으로 뜨고 있다. 자연스레 임대료 역시 크게 뛴 상태다. 홍대 앞 상업화는, 설 자리를 잃은 한국 대안예술의 오늘을 상징한다.
(☞이어지는 기사 보기 : '종로→명동→신촌→홍대→?'…청년문화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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