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15일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25일간의 점거파업을 이유로 104명 해고, 1091명 징계, 162억 손해배상 청구 등 최대 규모의 징계를 했다.
대법원 판결 1주년을 맞아 현대, 기아, 한국지엠, 쌍용, 현대하이스코 등 1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18일부터 5박 6일 간의 희망버스 전국투어에 나선다. 전국 10개 도시 12개 공장을 찾는 일정이다. 희망버스 전국투어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의 글을 잇따라 싣는다. <편집자>
몇 달 전, 한 취객이 경찰서 지구대에 흉기를 들고 들어와 난동을 피운 사건이 있었다. 당시 CCTV영상에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경찰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몇차례 더 뉴스에서 다루어졌고, 급기야 조현오 경찰청장은 '총기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조폭스러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총질이 하고 싶으면 군대에 말뚝 박지 그랬냐'라며 거센 비난이 일었지만 정작 그 취객이 왜 난동을 부렸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였고, 해고를 당한 화풀이를 하려고 경찰서를 습격한 것이었다.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용직인데 해고를 당했다? 화풀이를 하려고 경찰서를 습격한다? 아마도 그는 파견업체를 통해서 일당을 받으며 건설노동자로 일했을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의 맨 마지막에 있는 조그마한 건설업체가 파견업체에 그의 일당을 지불했을 테고, 그 일당의 20~30%는 파견업체사장의 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같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그가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라는 한마디 말로 해고를 통보 받는다. 파견업체 사장은 '일거리가 안 들어오는데 어쩌냐?'고 한다. 못 배운 그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건설업체에 찾아가니 '당신은 우리회사 직원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제서야 그는 깨닫는다.
'매일 나에게 일을 시키던 사람들이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는 갑작스런 해고에 분노했지만 분노의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나를 해고한 것인가? 내 사장은 누구인가? 누구에게 항의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범죄'는 앞뒤가 맞지 않는 '범죄적 현실'에서 시작된 것이다.
절망의 공장, 절망의 사회
▲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뉴시스 |
1년 전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뒤이어 한국지엠, 금호타이어에서 같은 판결이 이어졌다. 이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25일 간의 점거파업을 비롯해 수많은 투쟁을 벌였지만 현대차 자본은 지독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104명이 해고되고 1094명이 징계를 당했다. 불법행위의 당사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아직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으로 생활하는 고통, 수년간 성희롱을 당하고도 오히려 해고당하는 서러움,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했다가는 계약해지, 업체폐업을 통해서라도 해고당하는 것.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 수많은 차별과 분노를 '하청인생'이라 부른다. 그 하청인생을 끝장낼 수 있는 한줄기 빛과 같았던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절망'이었다.
하지만, 절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것만은 아니었다. 미친 듯이 인상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들이 산재사고로 죽고 다치다 결국에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외치다가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연행됐다.
그렇다면 차별받을 걱정 없고, 자녀학자금은 회사에서 지원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별일이 없었을까?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리해고로, 발레오공조코리아에서는 위장폐업으로, 유성기업에서는 직장폐쇄로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럴 때마다 용역깡패와 공권력은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짓밟았고, 이제 노조파괴컨설팅이 번듯한 사업으로 덩치를 키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1년의 한국사회는 절망을 찍어내는 커다란 공장이 되어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웃으며 만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명의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낯선 이름의 버스에 올랐다.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쩔어 허우적거리던 이들이 다시금 '희망'이라는 단어에 열광하고 즐기며, 웃으며 부산 한진중공업에 모였다.
물론, 그들의 1박2일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길은 조현오의 새로운 장난감으로 막혀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최루액에, 방패에 쓰러졌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또 다시 웃으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왜 희망버스에 올랐고 왜 그토록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고자 했을까?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3명의 죽음을 짊어지고, 이제는 그 자신의 죽음과 마주앉아 있는 김진숙이 보여주는 미소와 반갑게 흔들어주는 손.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리라는 약속과 승리의 다짐. 그것이 극한의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절망적인 현실과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붙잡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자신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도 찾고자 했던 희망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 희망이 우리들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 아홉 청년 표류기
'절망의 공장을 희망의 공장으로!'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언제나처럼 외치던 구호다.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최초의 완성차 외주하청 공장이자, 최초의 생산직 100% 비정규직 공장이다.
'절망의 공장'의 원조로 불리는 이곳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던 9명의 동희오토사내하청 조합원들은 3년간의 복직투쟁 끝에 전원복직에 합의하고 지난 6월 30일 1차로 3명의 조합원을 복직시켰다.
그들은 해고된 이후 막말로 '안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공장 앞에서는 출근투쟁을 했고, 노동부에 항의하고, 시청을 상대로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천막농성도 1년이 넘게 벌였다. 퇴직금 떼어먹은 바지사장은 집까지 찾아가서 받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기아차 본사로 향했고 115일간의 노숙투쟁으로 복직을 이루어냈다. 이들의 좌충우돌 3년간은 진짜 사장을 찾아 떠난 표류기와 같았다. 그들의 여정이 정몽구에 이르러서야 복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은 결국 정몽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규직 0명 공장, 이제 더 이상 '표류기'는 필요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기 위한 전국순회투쟁에 나선다. 7월 18일부터 5박 6일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들을 방문하며 전국적인 흐름을 모아나가는 한편, 동희오토의 뒤를 따라 '정규직 0명'으로 세워진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현실을 폭로하고 규탄할 것이다.
동희오토와 같은 '정규직 0명' 공장은 이미 제조업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 조선, 중공업, 철강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 비율은 늘어나고 있으며 신규공장들은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만 운영되는 실정이다.
현대모비스 8개 공장, 현대위아 3개 공장,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STX중공업, 현대하이스코 울산공장 등 대기업들이 정규직은 관리자들 뿐이고, 생산현장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정규직 0명'이라는 야만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희망버스는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출발하며 이러한 현실을 폭로할 것이다.
'정규직 0명 공장'을 '비정규직 0명 공장'으로 만드는 것은 한 번의 순회투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동희오토와 같은 표류의 시간은 필요치 않다.
그동안의 투쟁으로, 대법원의 판결로 누가 진짜 사장인지는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저들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이라는 미로 안에 갇혀서 어디에 화풀이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나약하지 않다.
원청회사가 바로 우리의 진짜 사용자라는 원칙을 잊지 않으며 진짜 사장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 정확하게 멱살을 잡을 것이다.
가자! 비정규직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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