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공 스토리는 1977년생 젊은 감독인 전재홍에 의해 완성됐다. 사람들 속 깊이 각인된 분단 현실을 그는 거친 화면 속에서 절묘한 코미디로 비틀어냈다. 배우를 포함해 모든 스태프들이 노 개런티로 만든 이 영화는 대자본에 휘둘리는 오늘날 충무로를 향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통일의 주도세력은 남한이라 믿는 대다수 한국인을 향해 이빨을 코미디로 숨긴 채 맹렬히 짖어대고 있다.
성악과 경영학을 동시에 공부했고, 한때 오페라 배우로 이름을 알렸던 전 감독은 미국 이민자의 거리에서 분단 현실을 차분히 관조했다. 이 점에서 북한산 담배 '풍산개'를 피워 무는 주인공(윤계상, 이하 풍산)은 전 감독의 페르소나라 칭할 만하다.
그런데, 실제 만난 전 감독은 영화가 보여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달랐다.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선 어릴 때 아픈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고, 파안대소로 자칫 심각해질 뻔한 인터뷰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이 사람이 과연 직접 영화 속 노래 <연꽃(Die Lotosblume)>'을 불렀고, 베테랑 스태프들을 이끌어 영화를 완성시킨 사람이 맞나? 발랄함이 카리스마의 한 원천이라면, 전 감독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결국, <풍산개>는 현실 고발자로서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은 '젊은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전 감독은 미술계의 거장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다). 서울에서 평양을 3시간 만에 주파하는 기이한 인물 풍산처럼, 전 감독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상업영화감독으로서 정체성을 뚜렷이 다지고, <에이리언> 시리즈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전 감독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동 프레시안 사옥에서 진행됐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이 점 주의 바랍니다. |
▲전재홍 감독. 흔히들 언급되는 '김기덕 사단'의 막내 감독이며, 가장 먼저 데뷔한 감독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최형락) |
분단 '판타지'에 갇힌 한국, 판타지를 뛰어넘는 풍산
프레시안 : 영화 얘기부터 해보죠. 왜 서울과 평양 간 거리를 3시간으로 설정했나요?
전재홍 : 휴전선 너머로 가본 적 없으니 저도 얼마나 걸리는지 몰라요. 걸어서 갈 거리로는 3시간이 딱 좋았어요. 예닐곱 시간이면 거리감이 너무 느껴지잖아요. 하하. 다만 이런 생각은 있었어요.
고속철도(KTX)를 타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하잖아요? 그러니 KTX만 타면 평양도 30분이면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서울과 평양이 굉장히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곳이 매우 멀다고 느낀다'는 걸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프레시안 : 흔히들 상상하는 탈북 루트는 중국을 경유하거나, 땅굴을 통하는 겁니다. 풍산도 이런 경로를 따르는 게 현실적일 텐데, 그는 장대를 이용해 철조망을 직접 넘습니다. 이렇게 비약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전재홍 : 한국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통일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다고 봐요. 그 중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그 휴전선을 바로 넘고 싶을 거예요. 중국을 경유해서 통일된 북한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하죠. 결국 풍산의 저 행동은 상징적 의미에요. 만약 풍산이 땅굴을 파서 양쪽을 넘나들거나, 철조망을 가위로 잘라서 첩보영화처럼 이동하는 건 영화에서 아무 의미가 없어요. 분단 현실의 장벽을 넘기 위해선 휴전선을 장대로 넘어야죠.
프레시안 : 풍산이 그 정도로 통일의 의지가 있는 인물인가요?
전재홍 : 그건 저도 잘 몰라요. 하하하.
프레시안 : 양쪽 정보원들이 집요하게 "너, 남이야, 북이야?"라고 풍산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풍산은 끝까지 한 마디도 안 하죠. 말을 하는 순간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되니 그의 입을 닫은 건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꼭 풍산을 경계인으로 남겨둬야 했을까요?
전재홍 : 풍산은 경계인이 아니에요. 통일의 상징이죠. 전 풍산을 남도 북도 아닌,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했어요. 그러면 굳이 언어로 그의 정체성을 규정할 필요가 없죠.
프레시안 : 이민자 엘리트 출신 감독(전 감독은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이 통일 영화를 찍게 된 계기가 뭘까요?
전재홍 : 제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중립국 오스트리아에서 살았어요. 그곳에서 북한 사람들을 많이 봤죠. 아무래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으니 정부쪽 사람도 많았고, 음악 공부하러 온 대학생도 있었고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 한국말이 들려서 돌아보면 북한 배지(김일성 휘장)를 단 사람이 보여요. 그런데 너무 이상한 거예요. 공적인 자리도 아니고, 그냥 길 가다 만난 사람한테 말 한 마디 못 건네요, 둘(남측이나 북측이나) 다. 제가 거기서 이라크 친구도 만나고 이란 친구도 만났는데, 북한 친구는 못 만나요.
자연스럽게 분단 현실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이게 결국 분단이죠. 같은 언어를 쓰는,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서로 경계하고 신기해하는…. 이 사람들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자기들끼리 농담 주고받더라고요. 그런데 우리에게 여전히 북한은 어릴 때 반공만화에서 나오는 괴물이 사는 곳이죠. 이런 경계를 자유롭게 뛰어넘는 인물(풍산)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이건 내가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풍산개> ⓒ김기덕 필름 제공 |
전재홍 : 전쟁 영화, 멋있죠. 그런데 그건 영웅들의 영화에요. 다 옛날이야기죠. 제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어요. 저에게 남북전쟁(6.25)은 흑백영화죠. 거리감이 너무 커요.
제게 다가온 분단의 현실은 연락 두절이에요. 60년을 헤어져 사는 형제가 편지 한 통 못 주고 받아요. 굉장히 비극적이죠. 왜 이웃 나라끼리 편지 한 통 못 주고 받나요? 하다못해 가족이 태평양 건너에 사는 저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하는데 말이에요. 얼마나 끔찍한 현실이에요? 이처럼 동시대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영화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시안 : 풍산은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네요? 우리가 처한 분단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양쪽을 연결하는 풍산이 현실에 가깝고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현실이 사실은 판타지일 수도 있는 거네요.
전재홍 : 이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에요. 다만 상업 영화인만큼 가볍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관객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나오면서 '그래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지'라는 생각을 한번 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싶었어요.
프레시안 : 그러면 일말의 기대라도 가질 수 있게, 마지막 신에서 풍산이 휴전선을 넘는 순간에 영화를 끝내도 됐을 법한데요. 굳이 풍산을 죽일 이유가 있었나요?
전재홍 : 할리우드식으로 인옥과 풍산이 멋지게 탈출해서 여유롭게 사는 결말을 낼 수도 있었겠죠. 풍산이 철조망을 무사히 뛰어넘은 후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남쪽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분단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죠. 풍산의 결정은 우리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풍산이 마지막 미션마저 완수하는 건, (현실에 비해) 너무 멋지잖아요?
▲ ⓒ김기덕 필름 |
펄펄 살아 숨 쉬는 캐릭터
프레시안 : 영화에서 흔히들 기대하는 남한, 북한의 고정된 인물상이 있어요. 북한에는 냉혹한 인물과 기죽은 조연이 나오고, 남한에는 좌충우돌하면서 성장하는 주인공과 감초역할하는 코믹 캐릭터가 나오는 식이죠. <풍산개>에서는 북한쪽 주요인물이 남한쪽 인물보다 감정이 더 살아 있어요. 인옥이 대표적이고, 망명한 고위간부도 자신의 질투심을 순수하게 드러내죠. 심지어 간첩 우두머리는 고고하게 클래식 음악까지 들어요. 이거, 나름 남북문제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들에겐 비판 받을 수도 있을 법한데요?
전재홍 : 국방부나 국정원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점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하하.
전 인물들 하나하나를 설정할 때, '이들이 분단 현실이 아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염두에 뒀어요. 북한 간첩들, 다 그들의 직업이잖아요? 자기 뜻과 관계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렇다면 이들이 분단국가에서 살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농부를 했을 수도, 작가를 했을 수도 있겠죠.
간첩 우두머리는 '프랑스 유학을 한 화가'로 설정했어요. 그림을 사랑하고 멋을 부릴 줄 알죠. 그래서 영화에서 그는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고, 클래식 음악을 즐겨요. 간첩이 아니었다면 미술 선생이 됐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멋진 청바지를 입고, 뾰족구두와 스카프를 걸치고, 파마머리를 하고 다니죠. 그런데 북한에서 청바지 입기 힘들다고 들었어요. 하하.
프레시안 : '파마머리는 김정일 흉내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돌던데요?
전재홍 : 크하하하! 아니에요. 풍산개는 정치적, 이념적 영화가 아니에요. 통일을 갈망하는 영화일 뿐이에요.
영화는 토탈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전 다큐멘터리를 찍는 피디(PD)가 아니고,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도 아니에요. 관객이 상상하기 힘든 일을 현실화시켜서 보여주고, 그들이 그 시간을 즐기게끔 하는 사람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좀 더 과감하게 상업적 코드를 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클래식 음악 대신 트로트나 아이돌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풍산개>를 보면서 혹시 자신도 모르게 이념적으로 영화를 재단하려 하지 않았나? 전 감독은 아직 냉전 이데올로기에 갇힌 한국 사회를 농담이라는 장대로 가볍게 뛰어넘는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산 인옥은 어떤 인물로 설정했나요?
전재홍 : 인옥은 부모가 숙청당한 고위 간부의 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때문에 허름한 곳에 숨어살았어요. 남쪽으로 망명한 고위간부가 인옥을 살려줘서 둘의 관계가 이어졌죠.
프레시안 : 풍산이 인옥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상징물인 불교 조각상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인옥이 특별히 종교적인 행동을 보이진 않는데요?
전재홍 : 인옥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부각시키자면 '절실함'에 대한 상징이 필요했어요. 전 그게 종교라고 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절실할 때 교회나 절에 가잖아요.
인옥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정감이 가는 캐릭터에요. 유일하게 이름을 준 이유이기도 합니다.
많은 남성 관객이 인옥이 휴전선을 넘을 때 즐거워하는 모습을 이해 못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인옥에게 그 상황은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일 겁니다. 아마 살면서 처음으로 소리를 질러봤을 거예요. 평생을 숨어 산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랬던 인옥도 남한으로 오면서 다시 어두워져요. 다만 인옥은 풍산을 만나면서 달라지죠. 그래서 점차 망명 남자에게 저항합니다. 결국 풍산과 인옥은 서로에게 구원자가 되고, 서로를 바꿔갑니다.
프레시안 : 그런 인옥의 배를 가를 필요가 있었나요? 김기덕 감독식 여성관이 이 영화에도 투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전재홍 : 인옥은 아주 똑똑한 인물입니다. 자신이 살아있으면 계속 이용당할 것이란 걸 알아요.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죠. 죽기 전에 인옥이 사람들을 응시하는 장면을 넣은 이유입니다. 이 신(scene)은 오히려 인옥의 강함을 표현한 거예요. 기존의 김기덕 영화와 달리, 인옥의 죽음은 사건을 이끄는 계기가 되죠.
죽은 후 시체로 발견된 장면에는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장면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풍산의 분노가 폭발하거든요. 인옥이 절벽에서 죽은 채 고운 시신만 남았다면 풍산의 감정이 분노로까지 연결되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 저는 굳이 인옥이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신, 간첩들이 인옥의 배를 가르는 신을 화면으로 연출하고 싶진 않았어요. 잔인한 장면이 없지만 관객들은 다 고통을 느끼잖아요? 오히려 센 비주얼은 관객의 고통을 깨죠. 사람들이 잔인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프레시안 : 인옥의 심리묘사가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담배 케이스를 챙기는 순간, 차 안에서 창밖에 있는 풍산을 응시하는 인옥의 시선 등은 여성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한다는 평가입니다.
전재홍 : 김기덕 감독께서 생각한 인옥은 영화의 인옥보다 독립적 느낌이 덜했어요. 김규리 씨(인옥)를 캐스팅하면서 제가 캐릭터를 좀 더 발전시켰죠. 이전 김기덕 필름의 영화에는 농담하는 여자 캐릭터가 없었어요. 그런데 인옥은 농담을 하고, 풍산에게 도망가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윤계상은 <풍산개>로 단박에 영화계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올랐다. 윤계상의 캐릭터는 한국적이면서, <증오> 등에서 표현된 무국적적 캐릭터와도 닮았다. ⓒ김기덕 필름 |
윤계상, 풍산개가 낳은 발견
프레시안 : <풍산개> 최고의 발견이 윤계상 씨라는 평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셨나요?
전재홍 : 제가 항상 주시한 배우였어요. <아름답다>를 찍고 난 후 다음 영화를 꼭 같이 하고 싶었죠. 굉장히 소름 돋는 배우입니다.
전 가수 지오디(GOD) 시절의 윤계상을 모릅니다. 외국에 있었고, 클래식 음악을 들었으니까요. 한국에 와서 <비스티 보이즈>와 <집행자>로 배우 윤계상을 처음 접했죠. 풍산 그 자체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윤계상 씨 연기를 좋게 평가하는 걸 보면 정말 뿌듯해요. 제가 발견한 윤계상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보고 있잖아요. 이것도 원래 윤계상인데.
프레시안 : 윤계상 씨가 단박에 출연의사를 밝혔나요?
전재홍 : 처음 만났을 때는 '하고 싶은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답하더군요.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고도 했고요. '일단 만나자'고 했죠.
미팅 장소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데, 죽이고 싶었더라고요. 그 몸매가 망가진 몸매라니! 하하. (으아~남자가 봐도 반할 몸매던데, 너무하잖아요?) 그런데 출연 결정을 하고 한 달 동안 죽어라 만든 몸이긴 해요.
동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영화 한 편으로 '전재홍은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답답했어요. 다른 영화를 찍을 기회가 안 생기더라고요. '얘는 상업 영화는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윤계상 씨도 마찬가지였어요. '쟤는 그렇고 그런 역할밖에 못 한다'는 평가에 답답해하고 있었어요.
둘다 열등감 덩어리라는 점도 비슷하더군요. (윤계상 씨 실망인데요? 그 사람이 열등감 덩어리면….) 윤계상 씨가 항상 '부족하다'고 얘기해요. 첫 미팅 때도 부족하다고 설설 빼더군요. 그래서 '나도 부족해' 그랬죠 뭐. <풍산개>로 김기덕 필름이 살아난 것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배우 윤계상이 재조명되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아요.
프레시안 : 영화가 흥행하는 걸 보곤 뭐라고 하던가요?
전재홍 : 다음 영화에선 정말 제대로 보여주자, 이런 얘기 하죠. 그냥 덤덤해요.
프레시안 : 김규리 씨도 역시 처음부터 인옥으로 염두에 뒀었나요?
전재홍 : 규리 씨와는 시간이 안 맞았어요. 첫 영화도 같이 할 수 있었는데 못 했죠. 그런데 정말 규리 씨는 인옥에 딱 맞았어요. 규리 씨가 당시 다른 영화 촬영 중이어서 이미 어느 정도 분량을 찍은 다음에야 합류했거든요. 그런데 준비 기간 단 3일 만에 인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들어오더군요.
프레시안 : 저예산 영화치곤 출연진이 쟁쟁합니다. 조연배우들도 모두 비중 있는 연극배우들이고요.
▲전재홍은 젊은 감독이지만,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이뤘다. ⓒ프레시안(최형락) |
저예산으로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뽑기 위해선 모두 출중한 실력을 가져야 했어요. 유치원생을 데려다 대학 교육을 시킬 순 없잖아요. 특히 인옥의 경우, 풍산을 서포트해주면서도 풍산에 밀려선 안 되는 캐릭터였어요. 규리 씨가 잘 해냈죠.
프레시안 : 비용절감을 위해 특별한 준비가 있었나요?
전재홍 : 리딩(대본 읽기)을 참 많이 했어요. 모든 배우가 다 자기 대사를 외우고 들어갔죠.
팀별로 다 따로 리딩을 했어요. 하루는 북한팀, 하루는 남한팀을 만나서 리딩을 하고, 김종수 선배(망명 고위간부 역)와도 따로 하고, 룸살롱팀과도 따로 리딩을 잡았고요. 이후 다 준비된 다음에는 전체 리딩을 다시 하고요.
저예산 영화는 무조건 선?
프레시안 : 영화 소개에 '투자 풍산개 스탭'이라고 뜨죠. 전 스태프가 노개런티로 출연했고요.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야만 했을까요.
전재홍 : 김기덕 필름이 망했잖아요. 3년간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않았어요. 사무실도 없었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김기덕 감독께서 '시나리오 읽어봐라'고 툭 던져주시더라고요. <풍산개>였어요. '어, 이거 블록버스터급인데?'하는 생각 들더군요. (예산 얘긴 안하셨나요?) 예산은… 안 물어봤죠. 크하하. 두 번 읽고 하겠다고 했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고 만류했어요. <아름답다>를 2억 원으로 찍었는데, 같은 제작비로 어떻게 더 큰 스케일의 영화를 찍느냐는 거죠. 다행히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여서 가능했어요.
프레시안 : <풍산개>의 성공이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재홍 : 이 영화는, 말하자면 케이투(K2) 무산소 등반이에요. 이미 올라가본,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만 가능한 길이죠. 정말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사방에 빌고 다녀야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저예산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우리가 독립영화 감독들, 영화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하면 기뻐요. 우리는 촬영 내내 '돈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있지만, 열정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보여주자'고 다짐했어요. 항상 거대 투자자에 의존하고, 그에 따라 거대자본에 휘둘리는 영화판에서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제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무작정 우리를 쫓아오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비록 저예산영화였지만 배우, 촬영, 음악, 조명 모두 최고였어요. 그래서 가능했어요.
▲윤계상(풍산), 김규리(인옥), 김종수(망명 고위간부) 등 쟁쟁한 출연진이 이 영화를 위해 모두 러닝 개런티로 출연했다. 촬영 전과 기간 동안에는 모든 스태프들에게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사 본문은 노개런티로 설명한다. ⓒ김기덕 필름 |
프레시안 : 영화계의 자본 의존도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요?
전재홍 : 자본의 힘이 워낙 크죠. 지금 웬만한 영화라도 하나 찍는데 30~50억 원은 필요해요. 이걸 어떻게 개인이 장만해요? 대자본에 의해 굴러갈 수밖에 없죠.
많은 저예산영화가 지금도 만들어지긴 합니다. 그러나 잘해봤자 극장 10군데 겨우 잡고, 관객 1만 명 들었다고 감동하는 게 현실입니다. <아름답다>를 찍고 나서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투자가 안 들어오니, 감독할 영화도 없었어요.
다만 저도 김기덕 필름에만 있어서 더 자세한 말을 할 입장은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변화가 와야 하지 않을까요?
프레시안 : <풍산개>의 길을 '감동적 열정'만으로 포장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노동한 대가를 스태프들이 받지 못했다면 노동착취 아닌가요?
전재홍 : 스태프들에게는 지금도 정말 고맙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모두가 무일푼에서 과감하게 영화에 매달렸으니까요.
다만 '노동착취'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번 돈은 모두 공정히 분배하기로 했어요. 조만간 정산이 되면 계약 내용에 따라 이익을 나눌 겁니다. 이들은 모두 <풍산개> 스태프인 동시에 투자자입니다.
▲전재홍을 설명할 때 김기덕과 장훈을 빼기는 어렵다. 아직은. ⓒ프레시안(최형락) |
김기덕과 전재홍
프레시안 : 성악을 공부하다 중도에 그만두고 영화감독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영화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나요?
전재홍 : 영화에의 열정은 항상 있었어요. 정확히 기억나는데, 스물아홉 살 때인 2004년 여름 (부모님이 계신) 뉴욕으로 돌아와서 '내 인생 마지막 도박'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성악을 그만두고 영화에 매달려보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어머니께서 대찬성하시더군요. '네가 드디어 너의 길을 가는구나'하고 말이죠. 하하하.
제 자신에게 1년만 투자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운 좋게도 그 1년 안에 김기덕 감독님을 운명적으로 만났죠.
프레시안 : 어떻게 만났나요?
전재홍 : 제가 칸(Cannes)으로 무작정 날아갔어요. (맙소사!) 제가 만든 디비디(DVD)를 배급사를 통해 김 감독님께 드렸죠.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하라'고 하셔서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미국생활 정리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사흘을 달라고 하곤 곧바로 비행기표 끊고 뉴욕에 갔어요. 저녁 9시쯤 되더군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싸곤 '엄마, 나 가요'하고 바로 한국으로 왔어요. 하하.
프레시안 : 이 전에는 영화를 따로 공부하진 않았나요?
전재홍 : 없어요. 김 감독님 밑에서 1년 반 배우고 <아름답다>로 데뷔했죠.
프레시안 : 자랑 아니에요?
전재홍 : 으하하. 아니에요.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찍어야 돼요. 제가 남들보다 뒤쳐졌는데, 계속 찍어야죠.
프레시안 : 도대체 김기덕 감독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요?
전재홍 : <빈집>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구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 스토리, 사운드, 미장센(mise en scene, 연출, 영화의 한 프레임에 표현되는 모든 요소) 모든 게 완벽했어요. 누구 밑에서 배우는 것보다 김 감독님한테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프레시안 : 김기덕 감독은 전재홍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전재홍 : 아버지 같은 분이죠. 그런데 촬영 현장에 단 한 차례도 안 오시더군요. 하하. 지난 3년간 '김기덕 필름'이라는 건물이 붕괴되는 와중에,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된 분입니다.
프레시안 : 이력이 독특합니다. 성악 하다 경영학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감독 하고 있고요. 20대를 어떻게 보내신 겁니까?
전재홍 : 그냥 하고 싶으니까 했어요. 맨하탄음대를 다니던 중이었는데, 빈시립음대에서 입학 공고가 뜨더라고요. 독일말도 할 줄 몰랐는데 그냥 무작정 '이때 아니면 언제 유럽에서 살아보나' 싶어서 지원했어요. 노래 부르라길래 불렀는데 덜컥 붙었죠. 동시에 웹스터대에도 경영학으로 지원했는데, 거기도 붙어버렸어요. 음대는 학비가 공짜라 부담이 없고, 미국 쪽도 보니 장학금 받으면서 다닐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다녔죠. (야, 이거 정말 자랑인데요?) 아,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이면 곤란한데, 하하.
그런데 결국 대학교 4학년이 되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음대를 포기했어요. 오페라하는데 굳이 졸업장이 필요할 것 같진 않더라고요.
경영학을 공부한 게 감독 생활에 도움이 많이 돼요. 일 하다 보니 잘했다 싶더라고요. 남들은 음대 아깝지 않느냐고 하는데, 더 좋은 일 하고 있으니 아깝지 않아요.
프레시안 : 정말 겁이 없으시네요. 무엇이 지금의 전재홍을 있게 했을까요?
전재홍 : 지금도 그런데, 어릴 때 말을 아주 심하게 더듬었어요. 유치원 다닐 때 왕따 당했죠. 아이들이 제게 다가오지 않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놀려댔어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죠. 돌도 몇 번 맞아봤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아파트 난간에 앉아 '죽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무섭네요) 인간이 공격적인 것 같아요. 하하.
그 시간이 제게 약이 됐죠. 이후 성악을 하면서 사람이 내게 모여드는 걸 경험했고, 보다 과감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기덕 필름이 낳은 상업영화 감독
프레시안 : <풍산개> 개봉 후 장훈 감독에게 연락을 하셨나요?
전재홍 : 시사회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연락 드렸는데, 바로 다음날이 <고지전> 제작발표회여서 못 오신다고 하더군요.
프레시안 : 공교롭게도 한때는 한솥밥을 먹던 두 감독의, 비슷한 소재를 가진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습니다.
전재홍 : 장훈 감독님의 행보에 대해 제가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다른 행보를 취했을 것 같긴 해요.
프레시안 : 장훈 감독의 <의형제>가 김기덕 감독의 칩거 원인이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입니까?
전재홍 : 그 일만 원인이었던 건 아니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김기덕 필름이 무너질 때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어쨌든 잘 됐으니, 과거에 얽매이고 싶진 않아요. 과거를 잊을 순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 중요하죠.
프레시안 : 차기작 계획 있나요?
▲전재홍 감독은 학비를 내지 않고,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꿈을 펼치는데 다양한 지원이 큰 힘이 된 셈이다. 왜 이 말을 하냐고? 그냥. 누군가 생각이 나서 말이지.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어떤 영화를 찍고 싶나요?
전재홍 : 제 꿈이 <에이리언> 시리즈를 하는 거예요. 감독들이 시리즈마다 자기 색깔을 넣어서 영화를 만들었잖아요? 저도 그걸 해보고 싶어요. <풍산개>도 사실 원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 색깔을 많이 넣은 작품이고요.
프레시안 : 의외네요.
전재홍 : 전 액션물 하고 싶어요. 이창동 감독님을 만나보니 작가주의 영화를 제가 하진 못하겠더라고요.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야 하는데, 전 아직 아니에요. 제가 아는 얘기를 제 나이에 맞게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 또래 배우를 찾는 이유고요. '임춘애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면 단박에 아는 제 또래와 같이 작업하는 게 좋아요. 제가 60살이 넘으면 그땐 역시 예순이 넘은 배우와 작업하겠죠.
프레시안 : '김기덕 사단'에 사람들이 흔히들 기대하는 바와는 조금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
전재홍 : 김기덕 감독님이 저에게 항상 '넌 제2의 김기덕이 아니고 전재홍이 돼야 해'라고 하세요. 감독님이 자신의 영화를 제가 카피하기도 원치 않으시고요. 감독님 밑에 있던 장철수 감독님, 장훈 감독님도 모두 자기 색깔을 내고 계시잖아요? 저도 제 색깔을 보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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