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경제보다 정치가 중요한 동아시아, 금융 협력은 불가능한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경제보다 정치가 중요한 동아시아, 금융 협력은 불가능한가?

[해외시각] 경제 위기 속에 '기회'…만나고 또 만나야

1997년 동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친 지 14년이 지났다. 당시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일제히 폭락하면서 신용경색이 일어났고, 서방 금융기관들이 신규 차관을 꺼리면서 한국도 직격탄을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IMF가 한국에 금융 지원을 하며 요구한 구조조정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지형을 크게 바꿔놓았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뼈아픈 경험을 한 이들은 경제 위기에 대한 지역적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한·중·일이 2000년 5월 태국에서 만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가 대표적이다. 답을 국제기구에서만 찾지 말고 지역 국가 간 통화 스왑 등을 통해 대응해 나가자는 취지다. 지난해 3월에는 양자 간 협정이었던 CMI를 강화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협정(CMIM)이 발효됐다.

하지만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벤자민 코헨 교수(국제정치경제학)는 최근 발간된 <글로벌아시아> 여름호(☞바로 가기)에서 CMI·CMIM가 동아시아 국가 간의 우호를 다지는 상징적 의미로만 기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경제적 이슈와는 별개로 국가 간 갈등과 경쟁의식이 안보 불안으로 표출되면서 금융 협력을 강화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헨 교수는 이러한 안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금융 협력과 같은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독자적인 금융 환경을 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여기에만 기대는 것은 무리다. 위기는 시기를 정해놓고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각국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함께 모색되어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다음은 코헨 교수의 칼럼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동아시아에서는 안보가 금융보다 우선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금융과 안보 중 어느 것이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까? 오랜 시간 추진된 동아시아의 금융 협력은 현실에서 안보적 긴장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각국 정부가 협력해 일하는데 익숙해지고, 이해관계가 좀 더 긴밀하게 얽혀가면서 통화와 금융 문제에서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려는 잠정적인 조치들이 긴장된 지역 안보를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의 지역적 협력을 촉진하려는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역 내 정치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 부재한 가운데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성과와 한계

지금까지 동아시아의 금융 협력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과는 2000년 5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중국·일본·한국이 가세한 'ASEAN+3'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교훈 삼아 만든 CMI는 양자간 통화스왑협정(BASs) 네트워크를 만들어 상호 유동성 지원을 위한 기초를 닦았다. 협정이 제대로 작동했을 때 스왑 네트워크는 약 600억 달러의 기금을 확보했다. 나아가 지난해 초에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기금(CMIM) 체제가 출범했다. 기금 규모는 배가 뛴 1200억 달러로 어떤 단일 국가에 대해서도 필요할 때 대출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지역의 밀접한 통화 및 금융 관계를 위한 토대로서 이 메커니즘에 대한 상당한 기대가 있어 왔다. 특히 CMIM에서 공동 의사결정이라는 새로운 약속이 생겨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동의 기금 풀이 양자간 통화 스왑을 대체함으로써 대출 결정이 다수결에 의해 내려진다. 원칙적으로 지역 금융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은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금의 전체 규모는 양자간 통화스왑협정 네트워크보다 상당히 증가했지만, 잠재적 필요량에 비해서는 여전히 하찮은 수준이다. 게다가 시스템의 관리는 동아시아의 합의 전통에 바탕을 두는 방식이 계속될 것인데, 그것은 국가 주권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각국 정부는 각자의 뜻에 따라 통화와 환율 정책을 짜기 때문에 계속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지불 융자(payment financing)는 여전히 각국의 중앙은행이 소유한 국가 자금에 의존한다.

이처럼 전체적으로 볼 때 CMIM는 상징적인 가치에 불과하고, 최소한의 우호 정신이 있다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인상을 갖게 한다. 실질적인 파급효과는 크지 않았고, 등장한지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CMI나 CMIM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는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 지난 2월 '아세안(ASEAN)+3' 금융협력의 미래비전 국제 콘퍼런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진짜 문제는 '정치'

이 대단찮은 기록을 어떻게 설명할까? 대부분은 지역 경제 단위 사이의 구조적·제도적 차이점에 초점을 두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뛰어넘을 수 있는 장벽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정치에서 비롯된다. 국가간 위협 또는 충돌 등 안보적 긴장감 때문에 각국 정부는 가능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금융 지역주의(financial regionalism)를 이야기할 때는, 그 저변에 깔린 경쟁의식과 정치적 적대감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적대감, 곪아가고 있는 국경 분쟁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라든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거의 없다. 대만, 그리고 분단된 한반도에는 풀리지 않은 민감한 이슈가 있다. 아시아의 리더 자리를 차지하길 열망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경쟁의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매우 위태롭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주권을 제한하는 금융 개혁에 나서는 걸 주저한다.

금융 협력은 그게 어떤 방식이건 주권 국가의 정책과 충돌하할 수밖에 없는 약속을 수반한다. 이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하나의 강대국이나 강국의 연합체가 있어서 참여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 하에서 공동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모든 참여국들이 주권의 희생을 감내하기에 충분한 관계와 약속이 광범위하게 존재해야 한다. 정부들 사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이 두 가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문제는 이같은 핵심적인 조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일관된 리더십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일본과 중국의 우호관계는 매우 약하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두 거인들은 공동으로 길을 선도하지 못한다. 두 나라는 서로를 믿지 못한다. 양국 모두에는 강력한 영향력과 특권을 양보해야 하는 집단적인 이니셔티브를 약속할 의지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 지역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간단히 말해 동아시아는 공동의 정체성이 부족하다. 지리적인 문제 외에도, 이 지역의 나라들을 한데 모아줄 어떤 게 없고, 반대로 그들을 분열케 하는 요소들은 많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이 남긴 유산뿐만 아니라 언어, 종교, 이데올로기, 사회 조직에 있어서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다. 각각의 정부는 다른 정부를 믿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는 인상 깊지 않던 금융 분야 결과물[CMI·CMIM]이 사실은 놀라운 수준인 것일까? 앞서 말한 요구 조건들은 그것이 부재했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은 우연히 생긴 게 절대 아니다.

변화를 끌어내는 건 '위기'

그러나 정치적 의지라는 건 고정 불변이 아니다. 태도는 바뀔 수 있다. 특히 전후 인과관계가 뒤짚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보적 긴장이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들을 망설이게 했지만, 미래엔 다를 수 있다. 금융 협력에 대한 조치들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협력의 이익을 줌으로써 지역적 문제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다. 각국의 정부는 안보 우려를 재평가할 수 있고, 추가적인 금융 이니셔티브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선순환'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실제로 CMI이나 CMIM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국가간 협력이 제도화할 때 사회화[금융 지역주의를 말함]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공통의 문제에 관한 공동의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늘어날 수록, 과거 다른 나라에 품었던 의심에 집착할 이유는 줄어든다. 신랄함과 두려움이 있던 자리는 점차 영향력이 지대한 계획[금융 협력 등]을 필요로 하는 상호 신뢰의 순환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회화가 동아시아에서 이뤄져 왔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금융 문제를 다루는 지역 내 회동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안 바뀌겠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고,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화는 단계적 과정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결정적일 것 같지 않다. 변화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방아쇠를 당겨에 한다. 1997~98년 아시아의 금융 위기나 오늘날의 세계 경제 침체 같이 예측 목할 위기는 그러한 방아쇠가 될 것이다.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이들은 위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긍정적 측면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뜻하는 중국의 단어 '위기(危机)'를 드는데, 이 단어는 위험(危)과 기회(机)를 뜻하는 글자로 이뤄져 있다.

위기는 비록 잠시일지라도 협력의 필요성을 높이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같은 것들의 제도화를 이끈다. 물론 그러한 이니셔티브는 광범위한 안보적 우려가 만들어 놓은 한계를 단번에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일정한 협력의 수준이 한 번 제도화되면 상호 신뢰 형성의 기초가 구축되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불신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며 금융 이니셔티브가 훨씬 더 튼튼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동학이 작동하는 것 같다. 10년 전 닥친 위기는 지역적 금융 협력이 이로울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하는데 분명한 역할을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2007~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은 분명 2010년 CMI의 다자화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추동력을 제공했다. 두 사례에서, 인지된 위기는 정부가 행동에 나서도록 재촉하기 충분할 정도로 심각했다.

이런 패턴이 다시 반복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 과정은 얼마나 빈번히 일어날지,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게다가 고통의 기간에도 금융 문제에 있어 어떤 새로운 약속이 맺어질지는 크게 보아 안보적 우려에 따라 뚜렷한 한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각국의 정부는 나름대로의 우선순위를 따를 것이다.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CMI/CMIM와 같은 이니셔티브들은 앞으로 있을 보다 깊은 협력으로 가는 장애물의 높이를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단속적이고 느리게 일어날 것이다. 동아시아 정치의 진정하고 근본적인 전환이 없다면 지역 금융에서의 성취는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