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같은 책임을 가지고 있을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화제가 되는 정도이다. 그러한 화제도 전력업계가 자금제공을 한, 원전을 홍보하는 부교재에 관한 것이 중심으로 다카키 요시아키(高木義明) 문부과학성 대신이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말했을 뿐 그 이상의 추궁은 없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부교재의 사용 빈도가 낮은데, 여기에만 화제를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본문의 원전 관련 기술에 대한 확인은 정말 무성의하다. 사고 직후에는 언론도 교과서를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후에 기자들이 현장취재에 총동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2011년 중학교 교과서의 검정결과를 일제히 보도한 3월 31일 조간신문 기사에서 원전 문제 기술을 언급한 것은 <도쿄신문>과 <마이니치(毎日)신문> 뿐이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겨우 그날 석간에 뒤따라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원전에 대해서는 유용성과 위험성이 이미 병기되어 있어, 정정은 불필요하다고 보는 (교과서) 회사가 많다"고 보도했고 문제점을 추궁하는 자세는 전무했다. 다른 신문사도 거의 같았다.
3월 말 시점에서 각 회사의 새로운 교과서 내용을 파악한 것은 보도진이었다. 3월 중순 문부과학성 기자클럽에 각 사(社)의 백표지(검정신청)본과 수정표 등이 전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기자들이 제대로 확인했다면 지유샤(自由社)판 공민교과서에 일본이 '원자력발전에서는 안전성이 높은 기술을 확립'(173항)하고 있다고 가장 악질적으로 기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발행원인 지유샤가 도쿄전력 등에서 정치가나 언론사 간부의 접대여행을 하청 받아 혜택을 받고 있었다고 3월 24일에 발매된 <주간분슌(週刊文春)>(3월 31일자)에서 지적한 바로 직후였다. 지유샤는 이전부터 지유샤(*역자주: 출판사)에서 교과서 발행을 위한 지유샤(*역자주 : 교과서출판사)를 분리한 것처럼 등록하고 있지만, 회사명은 동일하며 관계가 밀접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러한 경위도 감안하여 지유샤판 최악의 기술을 언론이 문제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전력업계가 언론에 주는 뇌물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 일본 미야기(宮城)현 오나가와(女川) 원자력발전소 전경. ⓒ로이터=뉴시스 |
최악의 기술 그대로인 지유샤 교과서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한 후일담이 재미있다. 지유샤는 검정합격 후에 정정신청 절차를 진행하여 공민교과서에서 87개 곳을 수정했다. 그런데 그 수정한 부분에 원자력문제에 관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교과서 견본에는 이 최악의 기술이 그대로 남아있다. 언론이 문제시 했다면 이렇게 기술하면 안되겠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지유샤에 있어서는 언론측의 배려든 태만이든 결과적으로 방해를 받은 꼴이 된 것이다.
더욱이 지유샤는 견본에 다소의 홍보자료를 추가했을 뿐인 시판본(市販本)에는 아무도 모르게 이 최악의 기술을 삭제했다. 대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동반한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다시 심각한 문제를 내놓았습니다"라는 그야말로 너무도 지당한 최신의 사정(事情) 기술을 추가했다. 이것을 볼 때 독자에게는 기민하게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성실한 출판사라는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졸속이다. 이제는 에너지 문제를 넘어 후쿠시마 원전은 나라의 안전, 국제적 신뢰 문제에까지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원자력발전의 '안전신화'라는 정평이 난 기술이 지유샤판 공민교과서 견본에는 분명히 실려 있다. 학생이 사용하는 공급본에서는 수정된다 하더라도, 채택은 이 견본을 타사의 견본과 비교하여 실시한다. 게다가 전력회사와 유착한 지유샤의 체질이 있는 한, 어디까지 적정한 기술로 바뀔지 의문이다.
교과서 전시회에서는 엄격히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역자주 : 채택전인 6월에서 7월까지 문부과학성이 주최하여 일본 각 지역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견본 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회에서는 시민들이 의견을 투고할 수 있으며, 일단 지역 교육위원회에 보고된다.)
30년 전, '위험→불안' 수정 강요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는 1970년대까지는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기술이 확실히 실려 있었다. 주로 지리 교과서로, 후쿠이현(福井県)의 스루가(敦賀)연안이나 이바라기현(茨城県) 도카이촌(東海村)의 원전에 대해 다룬 부분이었다. 원전을 위험시하는 설명이 검정에서도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0년 6월 제1회 중(衆)·참(參)의원 동시선거라는 기책으로 자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획득하자 상황이 일변한다. 그때까지의 보수와 혁신세력이 막상막하였던 국회 정세 속에서 참고 있었던 문부과학성 출신인 자민당 강경파가 일제히 움직여, 문부과학성의 교과서검정을 드디어 오른쪽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현재 교과서 '편향' 공격이 시작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원자력발전은 제5후쿠류마루(福竜丸)사건(*역자주 :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이었던 제5후쿠류마루호가 1954년 3월 1일 비기니 환초에서 실시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방사능에 노출되어 선원 1명이 사망)으로 단번에 고양된 반핵운동에 대항하여 제기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핵심이었다. 일본측에서 원자력 도입의 중심이 된 쇼리키 마츠타로(正力松太郎)가 미국 CIA와 공조하여, 요미우리(読売)신문과 니혼테레비(日本テレビ)에 의한 여론공작을 펼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민당은 1981년 1월 당대회에서 원자력발전소 추진방침을 내걸고, '원전 반대운동은 분쇄'라고 했다('아사히신문' 81년 1월 18일).
문부과학성은 <요미우리신문>에서 비판할(1982년 4월 20일 조간) 정도로 너무나 자민당의원의 말대로 하는, 약하기로 유명한 관청이다. 당연히 자민당의 의향에 따르지 않으면 문부과학성 내 엘리트코스에는 들어갈 수 없다. 교과서검정과(당시)는 초등중등교육국의 중추부문이었다.
1980년 7월 과학기술청의 원자력추진업무에서 돌아온 교과서검정과 과장보좌와 과장은 이미 전년도에 검정이 종료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원자력발전 기술을 수정할 것을 일제히 각 교과서 회사에 요구했다. 은밀하게 진행하려 했지만, 정보가 빠져나가 국회 등에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교과서회사에서 자발적으로 신청한 것이라고 속였다. 이에 재미를 붙인 문부과학성은 1983년 5월에도 또 검정 후에 기술을 수정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교과서에서 원전은 '위험'하다는 표현이 '불안', '문제', '과제' 등으로 대폭 톤다운된지 30년. 일본 전체가 언론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통해 원자력발전의 '안전신화'에 물들여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각 교과서회사의 집필자들도 노력해왔다. 원자력발전 문제를 다루는 기술이 지리 교과서뿐만 아니라 공민 교과서에도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공민교과서에서는 일본서적(日本書籍, 후에 일본서적신사(日本書籍新社))판이 1999년 9월 이바라기현 도카이촌의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일어난 사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까지 기술했다.
이 사고에 대해서는, 그 후 공식보고서에서 교훈으로서 "'안전신화'를 버리고 위험성을 전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1999년 12월 24일 석간, 각지). 이것을 관계자들이 확실히 확인했다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서적판 공민 교과서는 원전 추진파가 가장 싫어하는 화제를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새역모'와 <산케이(産経)신문> 등이 눈엣가시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서적신사를 지키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역자주 : 일본서적신사는 2001년 우익의 교과서 공격으로 좌파교과서로 몰려 점차 채택률이 낮아져 도산하고 말았다.)
그만큼 당면해 있는 피해방지, 안전대책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30년 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전에 대해 왜곡된 기술을 한 교과서를 채택시켜서는 안된다. 또 채택 후에도 모든 교과서의 원전 관련 기술이 더욱 적정한 기술이 될 수 있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여야할 것이다.(번역: 아시아역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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