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회사 대부분이 계열사와의 거래가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다, 재벌일가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회사기회유용과 지원성거래로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회사기회유용은 회사 대신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것을 뜻하고, 지원성거래란 총수일가가 계열사 지배력을 동원해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445억 투자해 2.2조 벌어
경제개혁연구소가 29개 기업집단의 85개 회사와 특수관계자 190명 중 회사기회유용 의심사례 48개사와 지원성거래 의심사례 42개사를 분석한 결과, 지배주주 일가는 1조3195억 원을 투자해 9조9588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부의 증식규모가 투자금액의 7.55배(투자수익률 755%)에 달한다.
조사대상기간은 회사기회유용이나 지원성거래가 발생한 때로부터 지난해 말까지다.
부가 가장 많이 증가한 이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나타났다. 445억 원이던 정 회장의 부는 2조1837억 원으로 늘어났다.
1000억 원 이상 부가 증가한 이는 모두 13명으로, 이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조사됐다. 최 회장은 101억 원을 투자해 2조439억 원의 이익을 올렸다. 수익률이 무려 2만182%에 달한다.
정 부회장과 최 회장은 글로비스와 SK C&C 상장차익으로 큰 부를 얻었다. 정 부회장의 경우 글로비스 상장차익으로만 1조8967억 원의 부가 늘어나, 수익률이 6만3382%에 달했다. 최 회장 역시 부의 증가액 대부분인 2조24억 원을 SK C&C 상장으로 벌어들엿다.
최창근 영풍그룹 대표이사(1만450%), 최창규 영풍정밀 대표이사(1만568%), 이재환 CJ제일제당 상무(1만9260%), 이수영 OCI그룹 회장(1만2877%) 등도 1만 %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총수일가의 수익률도 경이에 가까웠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차남 이해승 씨는 불과 600만 원을 투자해 70억 원을 벌어들여, 투자수익률이 무려 11만6854%에 달했다.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의 셋째 딸 장혜선 씨(5만1147%),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장남 장세준 씨와 차남 장세환 씨(각각 1만2702%, 1만2751%) 등도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기업 중에서는 현대차그룹 특수관계자들이 많은 돈을 번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 특수관계자들의 재산은 3조8020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 뒤를 SK그룹(2조5153억 원), 대림산업(8689억 원), GS그룹(5135억 원), 현대백화점그룹(3766억 원)이 이었다.
특수관계자 190명은 배당수익만으로 투자금액의 43%에 이르는 5675억 원을 얻었다. 이들 중 77명은 배당금만으로 투자금액 전액을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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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제도 있으나 실효성 '미비'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회사기회유용과 지원성거래를 통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는 결국 회사기회를 유용 당한 회사와 일감을 몰아준 회사의 소액주주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규율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 연구위원은 "세금부담 없는 상속 및 경영권 승계와 경영권 안정 욕구가 회사기회유용과 지원성거래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연일 재벌을 성토하고 나섰으나, 관련 법률과 제도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상법이 개정돼 내년 4월부터는 회사기회를 제3자가 가로채서는 안 된다. 개정된 상법 397조를 보면 "이 경우 이사회의 승인은 이사 3분의 2 이상의 수로써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국내 기업의 이사회가 총수의 지배 하에 놓인 상황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
관련 사례로, 지난해 6월 글로비스의 회사기회유용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정일선 현대BNG스틸 대표는 개인회사인 현대머터리얼을 설립했고, 현대BNG스틸 이사회는 화물운송과 해외 원재료 구매업무를 현대머터리얼에 맡기기로 승인했다.
채 연구위원은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지배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제도도 손질해야 한다는 평가다. 계열사 부당지원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이 거래로 손해를 본 회사만 제재를 받고, 이익을 본 회사는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9월, 공정위가 글로비스와 현대자동차 간 거래가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이뤄졌고 현저한 규모를 가진 부당지원행위로 판단했으나, 현대자동차 등에만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 글로비스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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