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담(鶴潭) 스님의 글(학담, 2003)
원효가 살았던 시기는 삼국[고구려ㆍ백제ㆍ신라]이 각기 자기 중심의 통일을 주장하며 참혹하게 싸웠던 시절이며, 당[당 나라]이 자기 지배권을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침략하고 삼국의 전쟁에 개입하던 시기였다.(35쪽)
삼국이 찢기고 갈리워 싸우는 파국의 역사를 그 어느 것도 무너뜨리지 않고 보다 크고 넓은 통일의 세계로 고양시켜야 할 역사의 당위 앞에 원효의 사상적 관심이 천태 법화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의 회통(會通)과 화쟁(和諍)의 세계관에 관심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37쪽)
보다 큰 긍정과 화해의 지평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효의 화쟁의 논리는 분열의 역사 앞에 내건 통일[중립화 통일]의 철학이다.(38쪽)
원효는 모순의 참된 통일이란 둘을 융통하되 하나가 아니다[融二而不一]라고 하니, 이는 통일이란 대립물의 닫혀진 실체성의 부정이지만 대립물의 자기 자립성을 새로운 통일장 안에 해소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통일이란 하나의 장(場) 안에서 대립물이 해소되지 않지만 대립물 사이의 적대적 모순이 사라짐[不一而融二]이므로 비로소 이것과 저것은 자기자립성을 무너뜨림이 없이 스스로를 이것 아닌 이것, 저것 아닌 저것으로 살려내 조화와 화해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336쪽)
원효의[금강삼매경론]의 해석에서 보인 바처럼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거나 빼앗지 않고 스스로를 자기부정해서 새로운 화해와 조화의 관계로 자기긍정하는 통일의 논리야말로 아무도 지는 자가 없고 아무도 빼앗김이 없이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통일론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됨은 아무도 자기의 연기적(緣起的) 자립성을 무너뜨림이 없이 자기실현자가 되는 하나됨인 것이니, 원효가 보인 바 모두 살려냄의 통일론이 오늘의 분단 역사 안에서도 절실히 요구된다.(336쪽)
분단된 두 체제의 하나됨으로의 지양은 분단체제의 폐쇄적 실체성은 깨뜨리되 분단체제의 연기적 자립성은 살려내며, 분단을 영속적 분단이게 하는 온갖 허위의식과 왜곡된 사회제도는 깨뜨리되 분단 안에서 이룩한 온갖 사상 문화적 성과와 사회 경제적 업적들은 보다 큰 하나됨 안에서 세워져야 한다.(334쪽)
불교의 연기론은 브라만교의 일원적 세계관과 다원주의자들의 실재론적 세계관을 모두 부정하되 모두 살리는 화쟁의 사상이었으며, 불교 사상사 자체도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역사였다. 파사현정의 방법론 속에서 부정은 늘 보다 큰 긍정에로 살리기 위한 부정이지 부정을 위한 부정은 아니었으니, 중도의 길이야말로 모순으로 주어진 것의 절대성을 타파해서 모순의 양 측면을 크나큰 긍정의 땅에 모순 아닌 모순으로 세워주는 생명해탈의 길인 것이다. 중도적 화쟁과 번뇌의 보디(菩提, 覺)에로의 전환이라는 불교적 해탈관이 오늘 분단질서의 사상적 지침이 되어야 한다.(303쪽)
원효의 화쟁은 불교의 중도적 해탈관이 제시하는 실천방법론이 된다. 경에서 '중도(中道)'는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고 가운데 섬에도 걸리지 않고 넓고 큰 바다에 이르름'으로 비유된다. 이처럼 양변(兩邊)에도 떨어지지 않고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을 때[非邊而非中] 막힘과 걸림 없는 중도의 생명바다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원효는 생명의 중도실상을 보이기 위해 설정된 범주의 모순에 빠져 실상을 보지 못한 이들이나 이론의 대결을 융회하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화쟁의 방법론으로 모순으로 주어진 한 측면의 절대성을 깨뜨리되 그것의 상대성을 보다 큰 긍정의 땅에서 다시 살려내 다툼을 융회해낸다. 원효는 단순히 이론의 대립을 화쟁하는데 머문 이론가가 아니다. 그는 이론의 화쟁을 통해 현실역사의 투쟁을 화쟁하려 했으며, 갈등과 대결을 화쟁하여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려 하였다.(119쪽)
원효는 우리나라의 삼국과 중국, 일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국제전쟁의 시기에 다툼과 싸움을 그치게 하는 평화와 화쟁의 철학을 대중에게 설파한 스승이었다.(63쪽)
2. 원효의 '화쟁'과 중립화 통일
위와 같이 원효의 '화쟁'은 중도의 길을 걸으며 참된 통일을 이루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 '중도의 통일'에서 중립화 통일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분열의 역사를 아물게 하는 화쟁의 중립화 통일에 접근할 수 있다.
남한의 중립화 추진세력은 '아무도 지는 자가 없고 아무도 빼앗김이 없이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중립화 통일론'을 정립하여 국민들의 공감을 얻은 뒤 북한에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효가 '화쟁'을 통하여 보인 것처럼 모두를 살려내는 생명해탈의 중립화 통일론에 남북한 사회가 동의하는 사상적 기반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원효의 화쟁 사상을 드러내는 '不一而融二'와 '非邊而非中'에서 중립화 통일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면 좋을 듯하다.
우선 '不一而融二'의 중립화 통일론이, 지금까지 남북한이 합의한 통일론(6ㆍ15 선언 등)의 사상적 지침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한 6ㆍ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不一而融二'의 중립화 통일 쪽으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양변(兩邊;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연방제안의 양변)에 떨어지지 않고 단순한 중도에 머물지 않으면서 막힘과 걸림 없는 '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론을 정립하면 좋겠다. '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론이, 남북한의 갈등과 대결을 화쟁하는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는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원효는 삼국(한반도)과 중국, 일본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국제전쟁의 시기에 다툼과 싸움을 그치게 하는 평화와 화쟁의 철학을 대중에게 설파했다. 이렇듯이 21세기의 중립화 통일론자들은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론을 남북한 대중들에게 설파하여 동의를 얻어낸 뒤 한반도 주변국가를 설득해야한다.
한국전쟁을 종결하지 못하여 휴전중인 한반도는 원효의 시대에 3국(고구려ㆍ백제ㆍ신라)이 분열했던 것과 달리 2국(남한ㆍ북한)이 분단되어 있다. 이 분단구조를 잘못 관리하면 한반도 주변국가들(중국ㆍ일본ㆍ미국)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제2의 국제전쟁(제2의 한국전쟁)이 동아시아로 번질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이 긴요하므로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협조해야한다고 설득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보증이 없이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한 점에 유의하여,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을 중국ㆍ일본ㆍ미국이 지지하도록 유도하면 좋겠다.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론은 6자회담의 화쟁에도 도움이 된다. 6자 회담의 '6元 방정식'을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론으로 해결하면 북한 핵문제의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다. 북한 핵문제의 해답을 얻게 된 6자회담이 한반도의 비핵, 영세중립화, 동북아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기구로 바뀌어 ARF(아세안 지역 포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2005년 9월 19일에 선언한 6자 회담의 공동성명(9. 19 선언)의 제4항(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였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에 따라 한반도의 비핵, 영세중립화, 동북아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논의가 가능하다. 이를 위한 사상적인 기반을[화엄경]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철학이 제공하면, 원효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원융회통(圓融會通)'이 가능한 세상의 전망이 동아시아에 펼쳐짐과 동시에 한반도가 영세중립국가로 나아가는 일주문에 들어설 것이다.(김용운, 2005)
원융회통이 가능한 동아시아의 정세를 조성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이루는 지름길은, 화쟁을 위한 소통에 있다. 남북한ㆍ6자회담 당사국 사이의 소통이 '不一而融二ㆍ非邊而非中'의 중립화 통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인용 자료>
* 학담[분단을 넘어 원융무애의 생명바다로 (Ⅰ)](서울, 큰수레, 2003)
* 김용운「중립화의 한ㆍ중ㆍ일 문명사적 배경」[평화 만들기(http://peacemaking.kr)]175호(200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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